* 이것은 영화분석법에 대한 글이 아닙니다.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체계화 하고, 이를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한 포스트입니다. 글과 그림은 계속 수정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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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영화의 무엇을 볼 것인가?
어떤 부분을 비교하며 분석하고 평가할 것인가. 선택은 다양하다.
가장 쉬운 접근은 인물에 집중하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관찰하고, 그의 행동과 말을 수집해 그를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 쉬운 경우도 있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영화에는 단순한 인물부터 모순투성이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까지 온갖 인간상이 충돌하며 점화한다. 마치 내 주변 사람이라도 되는 양 영화 속 인물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은 가장 보편적이며 일반적인 접근법 중 하나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 많은 영화 리뷰들 중 상당수는 ‘인물평가’에 치우쳐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그를 어떤 범주에 넣어야 합당한가 하는 결정으로 채워 진다. 영화 속에서 착한 사람은 누구인지, 누가 악역인지. 사람들은 그런 걸 구분하길 좋아하고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영화 내부의 세계(환경)에 주목하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SF나 무협, 공포물과 같은 장르가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무협은 수련을 통해 기(氣)를 운용할 수 있으며, 그 결과를 과장한 세계 위에서 구축된 장르다.
비과학, 초과학의 이론이 실재하는 것으로 가정된 세계관에서 대단히 많은 영화들이 고유의 세계를 구축한다. 현실 세계와 극명하게 다른 세계관에서 출발하고 있는 영화들로부터 그 세계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 보는 것으로 훈련을 시작한다면, 현실과 유사한 세계관에서도 미세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느와르나 스릴러물에도 고유한 세계관과 각자의 규칙이 존재한다. 물론 인물은 고유의 정체성을 갖추고 있으며, 그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그를 둘러싼 세계일 수 있다. 영화 내부의 세계를 분석하는 작업은 영화를 독립된 ‘게임’이라 가정하고, 그 게임의 규칙을 알아내는 것과 유사하다. 이긴 사람이 모든 상금을 차지하는 게임인지. 누가 먼저 목적지에 도달하는가를 놓고 경쟁을 하는 게임인지. 혹은 숨겨 진 보물을 누가 더 많이 찾는가로 우승자를 정하는지. 게임 설명서가 없는 상태에서 게임에 참여한 후 스스로 그 게임의 규칙을 알아내는 것과 같은 방식의 해석을 영화에 적용할 수 있다.
세계를 관찰하는 현미경 렌즈를 높은 배율로 변경하면, 평범한 영화 안에서도 그 영화 내부의 세계를 분리해 관찰할 수 있다. 인물의 가정 환경이나 성장 배경을 유추한다거나, 그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의 관계. 시대적 배경 등. 인간보다 인간의 외부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그림 1]부터 [그림 6]까지다.
[그림 1]은 다시 [그림 7]로 변형이 가능하다.
(설령 논픽션이라 하더라도) 영화의 모든 인물은 가상의 존재다. 다큐멘터리에도 카메라의 시점과 편집은 존재한다. 영화 속 인물은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다. 하물며 픽션은 더하다. 영화의 인물은 시나리오 작가와, 그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와 감독에 의해 창조된 인물이다. 그래서 인물을 만든 사람과 연결시켜 분석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감독은 왜 이 인물을 이러한 형태로 만들었을까? 그리고 왜 그가 이러한 결정을 내리도록 했을까?’ 질문과 함께 영화를 지켜 보는 것이다.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인물을 관찰하는 방법이 [그림 8]에 해당한다.
이것은 ‘작가론’이나 ‘감독론’과 같은 분석법으로 확장된다.
누가 왜 인물을 만들었으며, 이렇게 행동하도록 조종하는가 라는 관점의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주인공들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라든가,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의 주인공인 ‘브루스 웨인(다크나이트-배트맨)’과 ‘코브(인셉션)’의 유사성과 차이는?”과 같은 주제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림 4]는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영화에서 세계(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은 영화 내부의 세계와 영화 외부(즉 현실 세계)의 세계로 나뉠 수 있다.
이것을 [그림 9]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영화 내부의 세계는 앞서 말한 내용에 해당된다. ‘이 세계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으며, 게임의 규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 영화 외부(현실 세계)의 세계와 영화와의 관계를 바라보는 방법은 조금 어려울 수 있다. 일단 현실 세계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세계 + 현실’ 이 둘을 인식하고 있어야 ‘이 영화는 현실의 무엇을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 졌을까?’ 혹은 ‘이 영화에서 현실의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비교적 수월한 영화는 ‘정치’와 ‘전쟁’, 그리고 ‘시대극’이다. ‘시대극’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역사관’이 삽입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역사관’은 ‘역사를 바라보는 현재의 눈’이 된다. ‘전쟁’영화는 더욱 쉽다. 싸움이라는 것에는 싸움에 참여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 싸움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싸움을 누가 시작했는가, 피해자와 가해자는 누구인가와 같은 질문이 뒤따른다. 전쟁 영화에는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답이(그 영화만의) 마련되어 있다. 그것을 찾아보는 것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숨은그림찾기 놀이를 진행하게 되면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또는 현재의 무언가를 반영하고 있다는 전제를 세울 수도 있다. 14세기 십자군 전쟁을 다룬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여러 편 제작되는 이유를 현재의 중동 정세와 연결시킨다거나, ‘다크나이트’의 흥행이 미국 대선 결과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와 같은 가설을 세워보는 것이다.
다른 선택도 있다. 과거의 작품을 해석할 때, 그 작품이 제작된 시대의 기준으로 작품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지금 시대의 기준으로 과거의 작품을 해석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작품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민케인]을 1941년의 시대적, 기술적 배경 안에서 평가할 때와 2012년인 지금 바라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통해 1968년의 무언가를 찾아낼 수도 있지만, 2012년의 무언가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이제 이 4가지 방법을 하나로 결합하도록 한다.
4가지 요소를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하면 [그림 11]로 나타낼 수 있다.
영화를 읽는 방법은 위의 그림에서 하나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두 개 이상의 영역이 겹쳐지는 공간에서 발생한다. 인간과 사회가 분리될 수 없고, 과거와 현재 역시 분리 되어 있지 않다. 단 하나의 시각으로만 영화를 해석하는 건 오히려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림 11]에 하나를 더 추가해 본다. 바로 관객인 당신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재미있다고 하는데 난 재미가 없는 영화. 모두가 신파극이라며 비난할 때, 차마 반론을 재기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추억이 겹치는 통에 눈물을 쏟을 수 밖에 없던 기억. 영화를 통해 당신은 다른 사람과 뚜렷이 구별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당신’이기 때문에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영화에서 찾아보는 거다. 조금 더 나아가면 영화를 보던 중 떠오른 생각과 기억, 영화와 관련된 일화를 중심으로 글을 써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당신의 기억이나 경험, 취향, 기호, 온갖 특수성이 당신에게 이 영화를 다르게 보이도록 만들 것이다. 바로 그 차이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영화에서 우리는 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편적인 해석이라는 것을 도출할 수도 있다.
개인의 특수성을 고려한 심리학이 아닌 집단의 심리학, 혹은 인류의 보편적인 원형에 접근하려는 시도. 역사 이전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어져 온 신화와 이야기, 상징들의 힘에 기대어 영화를 해석하려는 시도들. 이러한 접근은 영화를 해체하고, 그 구조를 단순한 몇 가지 범주로 묶는 방식으로 영화를 이해하려는 태도와 맞닿게 된다.
그러나 [그림 14]에는 정작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지금까지 나온 관점들은 영화가 아닌 대상에도 적용 가능한 기준들이었다. 이것은 문학비평에 적용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문학으로서의 영화'에 국한된 키워드들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림 15]에 사운드, 미술, 시각효과, 편집, 카메라 시점과 같은 영화의 Style과 형식을 결정하는 요소들을 추가해야만 하다.
카메라 시점을 삭제한 채 [클로버필드]를 말할 수 없고, 미술적 평가를 논외로 한 채 ‘타셈 싱’ 감독의 영화를 평가 할 수 없다. 만약 [도그빌]이 지금과 같은 디자인 세트에서 촬영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의 울림을 줄 수 있었을까? 여주인공 그레이스(니콜 키드먼)는 도그빌에서 부당한 폭력과 착취를 당한다. 감옥처럼 공간이 축소된 도그빌은, 모든 건물의 벽을 없앤 후 그 자리에 주차장 안내선 같은 경계만을 표시하고 있어, 폭력의 현장을 마을 주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처리한다. 물론 배우들은 마치 벽이 존재하는 양 연기하며, 그레이스가 목에 쇠사슬을 한 채 끌려 다니는 모습을 매 순간 목격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연극을 영화화한 것이긴 하지만) [도그빌]에서 이러한 시각적 장치는 인물이나 이야기 못지 않게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무대의 디자인은 관객에게 ‘폭력의 현장을 목격하고 있는가, 목격하지 못하는 것인가, 혹은 보지 못한 척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또 다른 예로 [E.T.]는 어떨까? [E.T.]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스필버그’가 아닌 ‘크로넨버그’가 감독을 했다면 이것은 전혀 다른 결과물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크로넨버그였다면 소년과 외계인 사이의 우정이 아닌, 동성애적 코드라든가 성적 메타포로 해석될 수 있는 공포물을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혹은 E.T.의 디자인을 [에이리언]을 디자인한 ‘기거(Hans Rudolf Giger)’가 담당했다면 감독과 배우 등 모든 요소가 동일하다 하더라도 다른 장르의 영화처럼 다가오지 않았겠는가. Style을 구축하기 위해 어떤 요소들을 끌어 와 사용하고 있는지, 이를 중심으로 영화를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것이 [그림 16]다.

어떤 영화는 미술관에서 미디어 아트 전시물을 감상하는 것에 더 가까운 관람 태도를 관객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 제작 기술과 미술 음악 등 관련 예술 분야에 대한 지식과 감성, 경험을 요구하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으며, 자신이 느낀 것을 다시 언어로 분석하고 표현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예술 영화를 관객이 외면하는 이유 중에는 관객이 예술을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영화의 감각을 개념으로 정의할 방법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일 수 있다. 무언가를 느꼈지만 그것을 뭐라 불러야 할 지 모르기 때문에 명명되지 못한 감성과 경험이 영화에는 존재한다. 자신이 경험한 감성을 명명할 수 없기 때문에 관객은 그 경험을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그리하여 남는 것은 등장인물과 이야기 같은 언어로 표현 가능한 세계에 대한 기억뿐이다.

영화 산업에서 해당 영화가 차지하는 위치나 영향력, 산업적 가치를 논하는 관객도 존재한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영화는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심리적 태도를 지닌 관객도 있으며, 반대로 다른 사람의 의견에 쉽게 동조하여 대중적으로 성공한 영화를 우호적으로 감상하는 태도를 지닌 관객도 존재한다. 그 외에도 영화 내용과 별개로 기술적 성취 여부를 평가하려 한다거나, 제작 뒷이야기를 찾아보는 것도 영화를 읽는 방법 중 하나에 속한다.
MBC TV 프로그램 중 하나인 [나는 가수다]는, 순위 제를 통해 누군가를 탈락시킨다는 시스템으로 인해 공연을 보다 극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더구나 해당 가수가 노래를 하기 전에 인터뷰한 장면을 삽입하여, 개인적인 사정이라든가 인간적인 호소를 할 수 있도록 편집을 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가수에게 보다 감정 이입을 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도 그런 배경이 존재한다. 영화를 찍은 직후 주연 배우가 자살을 했다든가. 남녀 배우가 사랑에 빠졌다든가 하는 뒷이야기들. 한국인이 헐리우드에 진출하여 주연을 맡은 영화라든가, 내가 살고 있는 익숙한 동네에서 촬영한 영화와 같은 특수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관객과 전혀 다른 심리적 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 메시지에 주목하는 태도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에 '존재 가치'를 요구한다. 도덕적 교훈과 윤리적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즐기기 위한 목적에 충실하지 않은 영화는 무가치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극장을 나오며 시간과 돈을 낭비했다며 불만을 토해 내는 관객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이 영화는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라는 기준으로 영화를 평가하는 것는 영화를 읽는 주요한 방법 중 하나다. 이때 이 가치라는 것은 영화가 지닌 목적, 지향하는 바, 철학과 연결되어 있다. 오락물로서의 가치라든가 윤리성에 대한 질문은, '영화가 지향하는 바, 목적'이 무엇인가에 선행되지 않는다.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이 영화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