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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Mozart Sonata in C Major K. 330

by 늙은소 2017. 10. 8.

하루에 한 시간, 혹은 그 이상. 피아노를 치고 있다.

모짜르트 소나타 두 곡, 하이든 소나타 두 곡, 베토벤 소나타 하나. 이렇게 5곡을 반복 연습하고 있다.

3주 전부터 매일 같은 곡들을 치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서 모짜르트 소나타 330번은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있다.

모두 8살에서 9살 무렵 쳤던 곡들이다. (330번은 C Major인 만큼 상당히 쉬운 곡이다)

 

그 때는 그 곡을 내가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제대로 치고 있다고 여겼다.

8살의 기준으로 본다면 지금도 완곡을 치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돌아보니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었다. 나는 하나도 제대로 치고 있지 않았고 소리는 지저분하여 들어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시작부터 잘못되었고, 처음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내 피아노 실력은 형편없었다.

 

그래서 매일 같은 곡을 반복 연주하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점검해나가기 시작했다.

 

첫번째 문제. 어떤 손가락을 사용할 것인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악보는 8살때 보던 그 악보로, 각 곡마다 그 곡을 언제 시작했는지 날짜까지 적혀 있는 책이다. (책 뒷면을 보니 정가가 2700원으로 나와 있다. 세상에 피아노 악보가 이렇게 비쌌다니...35년 전에 2700원이면 대체 얼마야)

상당히 쉬운 소나타들이어서 어떤 손가락을 사용하면 좋을지 번호로 알려주는 부분이 많은데 나는 그걸 제대로 지키지 않았었다. 어린 시절 습관이었다. 그 때에도 나는 악보를 꼼꼼히 보지 않았고(음감이 있어서 곡을 빨리 외웠다) 악보에 나와 있는 여러 기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컸다. 이런 식으로 피아노를 쳐도 딱히 실수하지 않았고 곡을 빨리 외울 수 있는 탓에 남들보다 진도를 빠르게 나갈 수 있었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체르니 40을 들어갔었다) 그 때에는.. 빨리 다른 곡을 배우고 싶었다. 쉽게 익힌 만큼 쉽게 질렸고 늘 새로운 것을 찾아다녔다.

 

35년만에 치는데도 손가락은 그 때의 움직임을 기억해냈고, 나는 8살이었던 때와 같은 동작으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부분을 연주하는데 이 손가락을 사용하는 건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 

35년 전 기억을 소환하는데 일주일을 보내고 난 다음, 악보에 나와 있는 손가락 번호를 참고해 움직임을 조금씩 수정해나가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악보를 머리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몸이 기억하고 있는 거라 익숙하지 않은 다른 손가락을 사용하자 연주 중간에 브레이크가 걸리는데 그러고나면 그 다음을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어떤 손가락으로 어느 음을 누를 것인지 결정하고, 수정된 파트를 반복하며 몸이 이것을 기억하도록 훈련을 해나가고 있는데.. 새로운 문제를 만나게 되었다.

그건 내 손가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른손 3번 손가락만 따로 구부리지 못한다. 손등을 바닥에 붙인 상태로 나머지 네 손가락을 펴고 3번 손가락을 구부리기 시작하면 바닥에서 3cm 정도 높이까지 들 수 있을 뿐이다. 거기서 조금 더 구부리기 시작하면 4번 손가락이 딸려 올라가면서 함께 구부러진다. 4번 손가락은 그것 보다는 조금 나은데 역시 끝까지 접지는 못해서 두 번째 마디가 80도 정도로 꺾어진 다음에는 3번과 5번 손가락이 같이 구부러진다. 3번과 4번 손가락을 동시에 접으면 확실하게 접히지만 4번과 5번을 동시에 접는 것은 또 전혀 불가능하고, 다섯 손가락을 모두 접은 상태에서 하나만 펴는 경우에도 1번과 2번, 5번만 가능할 뿐. 3번과 4번은 하나씩도, 또 두개씩 펴는 것도 모두 불가능하다.

왼손은 조금 나은 편이어서 단독으로 펴지 못하는 손가락은 4번 하나 뿐이다. 하나씩 접는 경우에는 3번이 조금 어려운데, 오른손에 비해서는 많이 나은 편으로 120도 정도는 접을 수 있다. (F로 시작하는 손가락 욕도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 손가락이 펴지질 않아서 ㅎㅎ)

그러니까 쉽게 말해 피아노를 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젠장.

 

악보에 있는 숫자에 맞춰 손가락을 움직이려 했더니 몇몇 부분에서 손가락이 엉키기 시작했다. 3번과 4번을 사용해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을 오가야 하는데 3번을 움직이면 4번까지 같이 접히고 어느 순간에 이르면 어느 손가락이 3번이고 4번인지 신경이 구분을 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어릴때 왜 악보와 다른 손가락을 사용했는지. 4번과 5번을 사용할 때면 나도 모르게 손목을 비틀어 연주했던 것도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 치고 있는 곡들을 1년 동안 매일 연습하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기대를 낮춰야 할 듯.

 

그런데 일주일 쯤 전, 지금 연습 중인 모짜르트 소나타 330번 연주영상을 하나 보게 되었다. 호로비츠의 연주였다.

듣기만 했지 호로비츠의 연주 영상은(그것도 근접 촬영한) 처음 본 것이었는데, 이 사람은 손가락을 거의 구부리지 않고 편 상태로 연주를 하는 것이다. 보통 처음 피아노를 배우게 되면 계란을 잡는 것처럼 손을 동그랗게 만들어 손가락 끝으로 건반을 누르는 자세를 익히게 된다. 어릴 때 손가락을 구부리지 않고 펴서 누르는 편이라 혼나는 일이 많았고, 학원을 옮겼을 때 내 손의 모양을 지적하며 제대로 된 곳에서 배운 적이 없는 모양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손의 높이를 낮추고 손가락을 펴서 연주하다니...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싶으면서도 오른손 손가락 문제를 어쩌면 조금은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3번과 4번을 구부린 상태로 트릴을 연주하는 건 어려운데 이 손가락을 조금 펴서 트릴을 하면 약간은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내친 김에 호로비츠가 연주하는 방식으로 양 손을 높이를 낮추고, 손가락을 조금 더 펴서 건반에 밀착시키며 연주를 해보기로 했다. 손과 건반이 떨어져 있는 시간이 짧아 소리를 조금 더 깊게 낼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정확도가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눈을 감은 상태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눈을 완전히 가린 상태로 곡을 연주하면 건반을 보면서 칠 때보다 오히려 더 정확하게 건반을 누르게 된다.

지금 내가 어떤 손가락을 사용했는지 좀 더 집중해서 생각하게 되고, 이 손가락 대신 다른 손가락으로 교체를 해봐야겠다든가, 이 부분은 박자에 문제가 있다든가... 음의 세기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더 명확하게 들을 수도 있다.

내가 자토이치도 아니고... 뭐 하자는 건가 싶긴 한데. 이것 만큼 효과 좋은 훈련이 없는 듯 하다.

 

어릴 때는 그럴싸한, 유명한 곡을 연주하는 것에 흥미가 있어 내 수준에 맞지 않는 곡을 해보겠다며 폼을 잡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8살 때 치던 소나타 하나라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쳐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매일 쉬지 않고 하루에 한 시간씩 1년을 하면 그게 가능할까? 3년? 아니면 5년? 한 곡을 계속 붙잡고 늘어지면 어떤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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