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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80629

by 늙은소 2018. 6. 29.

정신없이 바쁜 6월이 지나가고 있다. 아직 주말에 해야 할 일 하나가 더 남아있지만 일단 오늘은 쉬기로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 

일하는 동안 힘들고 지치면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 집 구경을 하며 각오를 다졌다. 5년 쯤 뒤 이사를 할까 하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세를 주고 여기보다 집값이 싼곳으로 이사를 가는 게 현재의 막연한 계획이다. 직업 특성 상 특정 지역에 거주할 필요가 없고, 여기저기 다니는 편이 아니라 대중교통 상황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녀를 키우는 게 아니므로 집 주변 학군도 따질 이유가 없다. 그저 깨끗하고 너무 오래되지 않은 그러면서도 비싸지 않은 집이면 되는데 부동산 사이트에서는 이런 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없다는 게 아니라 해당 조건에 대한 검색이 제공되지 않는다. (주어진 조건에 해당되는 집이 어느 지역에 있는지 알고 싶은데, 부동산 사이트는 '어느 지역인가'가 먼저고 그 안에서 이 지역에 이런 조건들의 집이 있다고 보여주는 식이다) 


주로 아파트를 보긴 하는데 '시' 단위로 들어가야 아파트가 나오지 군 단위에서는 내가 생각한 집을 찾을 수 없었다. 각 도별로 시 단위를 들어가보면 생각보다 비싼 집들이 많은데, 대체로 혁신도시니 학군이 어쩌고 호수가 보이는 전망이 어쩌고 남향이 어쩌고. 이런 조건들이 나열되어 있다. 내게는 필요 없는 옵션들이다. 

경기도 뿐 아니라 강원, 충청, 전라, 경상도까지 틈 날 때마다 들어가서 여기저기 찾아보는데 마땅한 곳이 많지 않았다. 물론 돈이 많다면야 어디든 상관없겠지만 예산이 빠듯하니 문제. 

...

도면과 사진 뿐이지만 이런저런 집들을 구경하다보면 늘 불만인 게 모든 주택은 다인가족 중심이라는 점이다. 방이 여럿인 건 상관 없지만 욕실이 여럿인 건 혼자 사는 삶에 여러모로 공간 낭비로 보인다. 내가 갖고 싶은 건 하나의 큰 욕실인데 이런 건 대형 아파트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자취하며 지하 단칸방부터 원룸, 오피스텔을 전전하며 살아온 지 15년이 넘었더니 욕조가 너무 그립다) 그렇다고 독신자를 위한 아파트를 찾아보면 이건 또 집이 너무 작아 눈에 차질 않는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그리 크지는 않은데 대신 복층 구조여서 매우 알차게 공간을 활용하고 있는 중이다. 

복층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과 다르게 나는 복층을 선호하는 편이었고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 복층 구조인 집에서 꽤 알뜰하게 복층을 활용해왔다. 아파트 중에도 탑층에 복층을 둔 경우가 많던데 이런 집들은 가격이 높은데다 최소 30평 후반 이상인 경우에만 복층이 나오지 그 이하는 복층을 만들지 않는 모양이라 역시 리스트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알게 된 게 타운하우스였다. 

...

'전원주택'과 차별화를 하겠다며 나온 단어인 모양인데, 아무튼 타운하우스로 검색을 하면 꽤 만족스러운 집들을 구경할 수 있어 한 동안 경기도 일대의 타운하우스들을 구경하며 휴식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탐이 나는 집도 여럿 있었고, 그 중에서도 스킵플로어형 구조인 집은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생각한 예산보다 두 배나 높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한 참이나 사진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보통 전원주택, 혹은 타운하우스라고 하면 대지가 넓고 텃밭이 제공되며 넓은 마당이 딸린 주택을 말한다. 그러나 스킵플로어는 집의 중앙에 계단이 있고 0.5 단위로 층을 나눠 공간을 활용하기 때문에 좁은 면적에서도 넓은 전용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여러모로 딱 내 취향인데... 이 집이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면적이 좁으니 토지값은 적게 들었을 지 몰라도 집을 짓는 건축비가 만만치 않을테니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인터넷으로 집 구경을 하다가 정말 마음에 든 몇몇 집에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저 집을 사서 이사를 가면 어떨까? 

다락방은 무슨 용도로 활용하면 좋을까? 이 많은 책들을 어디에 두면 좋을까? 방 하나는 옷방으로 만들까? 나눠져 있는 욕실 두 개를 하나로 합치고 큰 욕조를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 꿈에 부풀어 상상을 하다가 현실적인 문제들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과연 내가 저 집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까?


보기엔 예쁜 저 목조 테라스는 장마철에 어떻게 되려나? 몇 년이 지나면 나무가 썩고 뒤틀리지 않을까? 나무판자들 틈 사이에 모래며 흙먼지며 엄청 들어갈 것 같은데 저걸 어떻게 청소하지? 테라스에 있는 식탁은 강풍이 불 때 날아가지 않을까? 못질로 고정을 해둬야 하나 아니면 매번 접어서 창고 안으로 넣었다가 뺐다가를 반복해야 하는 건지? 상상만 해도 너무 번거로운 거다. 태풍이라도 찾아오면 주변 숲에서 날아온 물건들에 창문이 깨지지 않으려나 늘 긴장상태로 살아야 할 것만 같다.

폭설이 내리면 지붕과 테라스 뿐 아니라 집 앞 마당에 쌓인 눈도 치워야 할텐데.. 뿐만 아니라 타운하우스 단지 거주자들이 단지로 들어오는 진입로의 눈들까지 각자 나눠서 치울 게 너무 뻔해 보였다. 

지역사회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해당 단지 사람들과는 어쨌든 소통을 하지 않고 사는 건 불가능해 보이고. 그런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상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같은 곳에는 관리사무실이 있고 경비원도 고용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지만 타운하우스는 그정도의 규모는 또 아니니까 결국 거주자 커뮤니티의 역할이 크지 않을까? 

타운하우스에서의 삶을 시뮬레이션 하다보니 역으로 아파트의 장점이 떠올랐다.

하다못해 택배라든가 재활용 쓰레기 수거라든가 하는 문제들도 거주자의 규모나 교통 환경 등에 영향을 받을테니 막상 교통이 좋지 못한 곳에서 살면 생각하지 못한 문제들을 맞닥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밖에 나가지 않는게 다가 아니라 외부인들이 찾아오기 힘들다는 것도 생각보다 곤란할 수 있다는 것.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예쁜 집들은 아파트와 달리 그럴싸한 이야기를 여럿 떠오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상상력을 자극한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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