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읽기

로스트 라이언즈 : 누가 사자를 쏘았는가

by 늙은소 2007. 11. 25.
로스트 라이언즈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

출연 톰 크루즈,메릴 스트립,로버트 레드포드

개봉 2007.11.08 미국, 91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선동하는 것은 쉽다. 기승전결에 따라 내용을 구성하되 감정이 고조될 수 있도록 강약을 조절하며, 웅변조의 말투로 곳곳에 자극적인 내용을 섞어 이야기하면 된다. 굳이 알 필요 없는 정보를 제시하거나,비난해야 할 상대의 입장 따위는 중요치 않다. 청중의 입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바를 집어냄으로써 듣는 이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끔 유도한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편인가요?',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 하는 것이 어려울 때는 없나요?' 누구에게나 일부 포함되어 있는 요소를 그 사람의 특질인양 이야기함으로써 상대의 몰입을 유도하는 전략. 고수는 여기에 충격요법을 추가하는 전략을 취한다. 조만간 큰 위험을 겪을 것이라든가, 당신들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등의 자극. 이런 충격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할 여지를 주지 않음으로써, 내가 하는 말을 의심하거나 회의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게 만든다.




정치성을 띠고 있는 영화의 상당수는 선동가의 연설과 닮아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적당히 생략하고 노골적으로 편집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물론 선동가가 불필요한 존재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기에는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으며, 그들을 하나하나 설득할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적당한 선에서 대중을 선동해야하는 모순이 민주주의에는 존재한다. 그 결과 선동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그 힘을 기반으로 권력을 생산한 다음 리더십을 발휘해 정책을 입안, 수행해나가는 것이 정치인들의주요 역할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제 사람들이 설득되는 것 보다 차라리 선동되기를 바란다는 사실이다.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또 그 내용을 이해해야하는 설득 보다는, 짧은 시간 안에선동되는 것이 손쉬운 까닭이다. 대중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의 사람들도, 그리고 이끌려가는 사람들도 모두 바쁘다며 적당히 생략한 채, 선동가가 대신 나서줄 것을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이다.


9.11이후 할리우드의 정치영화는 선동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이 좋은 예이다. 그는 까발리기 식의 자극적인 소재와 조롱, 유머를 통해 사람들을 선동하였고, 그 효과는 매우 유효했다. 이후의 영화들 역시 진지함의 정도가 다를 뿐 메시지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를 취했다. 이라크 전쟁이 올바르지 않았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것이 무언인가 돌아보게 하는 영화들. 또한 적으로 간주해오던 이슬람권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는 영화들이 여러 편 제작, 상영되었다.미국 내 반이슬람 여론이 확산되고, 전쟁을 지지하는 세력이 강한 힘을 발휘하였을 때,선동가적 영화들의 역할은 분명 중요하였다. 그러나 선동이 필요한 시기는 이제 지나갔고,냉정해져야 할 시기가 찾아왔음에도 아직 할리우드는 선동가들로 가득차 있는 듯 소란스럽기만 하다.

[로스트 라이언즈]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지금까지 등장하였던 다른 영화들의 메시지를 반복할 뿐이며, 자기반성의 깊이가 깊지 못하고 '참여할 것을 촉구'하는 수준에서 멈춰있다.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은 6명의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각 집단을 대표하게 하였다. 언론계와 정치계, 지성인과 일반 대중, 참전군인 등 각자 자신이 대표하는 집단의 입장을 대변함으로써이라크전쟁의 어리석은 측면과 무관심한 대중을 비판하려 한다. 그들은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9.11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식의 질문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자국민의 희생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짐 지워야 하는 강박관념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정치인과, 자본에 휘둘리는 언론, 강경하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지성계와 무관심한 대중을 비난함으로써 자기만족적인 허위의식을 드러낸다.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부시가 정권을 잡지 않았더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라크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미국인이 죽지만 않으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인가?




중동지역의 갈등에는 모두가 책임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등장하기까지 미국, 영국, 러시아 등이 일조한 역사가 있으며, 이스라엘 주변의 긴장상태 역시 모든 국가가 원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공범자로서의 과거가 존재한다. 석유를 둘러싼 갈등은 중동국가들 간의 평화가 찾아온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석유는 결국 고갈될 것이고, 가격은 치솟을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원칙에 따르자면 석유 가격은 지금 수준보다 더 높아야 옳다. 높아진 가격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하고, 모두 함께 해결방안을 강구해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이 마땅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중동의 국가 수뇌부들은 전 세계인이 합심하여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물론 석유를수입하는 국가들의 수뇌부도 자신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에너지 위기 상황을덮으려 한다)그들은 석유 가격을 적당한 선에서 낮춰 판매함으로써 우리가 에너지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지지 않도록, 위기에 대처하지 않도록 만들고 있다. 미국 정치 역시 전쟁을 주도 하는가 아닌가로 판단할 수 없는 복잡함이 있다.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지목되어 왔던 에탄올 문제는 남아도는 옥수수 산업과 맞물려 커다란 이슈가 되곤 하는데, 경제성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옥수수 산업을 축소하는데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문제는 개인들의 이익을 위해 방치되고 있다. 문제가 표면화 되었을 때(테러나 전쟁과 같은), 응급처치식으로 수습하는 지금의 방식은장기화됨에 따라모두를 공범자로 만들 것이다.


문제는 복잡하다. 아프가니스탄의 문제는 인접국인 파키스탄과 연결되고, 파키스탄은 갈등관계에 있는 인도에 영향을 끼친다. 인도는 중국에, 중국은 러시아에, 그리고 북한, 일본까지.. 전화와 인터넷이 지구의 모든 국가를 가깝게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국가들 간의 갈등이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고 있다. (그들이 친구여서가 아니라, 적이기 때문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선동하는 영화는 충분히 많다. 그들의 선동에 따라 전쟁을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선동가의 연설에 눈물 흘리고, 참회하고, 성금을 내는 것은 얼마나 손쉬운 일인가. 다음 선거에 다른 정당을 찍고, 전쟁에 반대하고, 전쟁을 일으킨 자들을 감옥에 가두는 것 역시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러나 평화는 결코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우리가 처한 현실이 치를 떨 만큼 복잡하게 엉켜 있으며, 그 때문에 일부의 희생 없이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하라는 메시지는 공허하다.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깨닫는 것도, 참여하는 것도 아닌.. 자표자기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뒤엉켜버린 관계과 갈등을 직면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버티는 것이 아니겠는가.


...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한 영화들을 몇 편 보았기에 나름 기대를 하였건만, 이번 영화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왜 더 파고들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왜 표면적인 질문만 던지는 것인가. 왜 사태를 단순한 것으로, 선과 악의 구분으로 보려 하는 것인가. 
9.11과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지는 몇 년 간의 미국에서 등장한 영화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냉정함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상적인 휴머니즘에 빠지거나 문제를 단순한 형태로 제시함으로써 특정 집단에게 죄를 물으려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중동 문제는 특정 국가나 민족에게 죄를 물을 수 없을 정도로 장기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모두가 죄인이 되고 말았다.


응급처치식 문제 해결의 치명적인 단점은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하는 것에 있는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모두가 공범자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허물 때문에 상대의 허물을 묻지 못하는, 그래서 암묵적 동의 하게 모두가파국을 향해 치닫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