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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미래의 시간

by 늙은소 2004. 6. 19.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다.
인간이 있기 이전의 창조신화에서부터, 신이나 영웅의 이야기 등 그것은 과거를 다루고 있었다.
중세를 지나 근대로 넘어오기까지 서사문학이나 기사문학 등은과거나 저 세상의 이야기였다.
(로맨스 소설이 등장하며 그나마 현재를 다루게 된 게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 미래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앞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할 지, 어떠한 기계와 기술이 등장할지.. 그러한 환경 속의 인간은 어떠한 형태로 적응해나갈지.. 그런 것들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미래의 이야기가 없었던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시간'이 지금처럼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들의 시간개념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까?

시간이 인간을 '지배'한 것은 우리가 미래에 관한 fiction을 창조할 무렵쯤은 아닐런지...

...

최근 읽은 몇 권의 책 중, 흥미롭게 읽었던 'Next : the future just happened'의 후반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1995년 컴퓨터 과학자 대니 힐리스는 '밀레니엄 시계'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와이어드>에 기고했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초고속 컴퓨터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는 늘 보다 더 빠른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속도에 집착하는 환경 속에 있었다.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침 그는 유럽을 여행하던 중 옥스퍼드 대학의 뉴 칼리지에서 하나의 영감을 얻었다. 대학 건물의 천장을 받치고 있던 참나무 기둥이 지어진 지 500여 년 정도가 지났을 때 교체하게 되었는데 1386년 그 건물을 지을 때, 그런 일을 이미 예상하고 기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참나무를 함께 심어두었다는 사실이었다.

힐리스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첨단의 기술을 연구하는 자신들이 가까운 미래는 예측하지만 그 미래의 한계는 기껏해야 몇 십년 정도일 뿐이었다. 그는 마침내 만년 동안 작동하는 시계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정작 밀레니엄시계는 만년 동안 작동할 수 있는 기술의 집약이 되기 보다는, 만년 동안 '인류'의 권력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의 일종이 되고 만다.

책에서는 힐리스의 기념사업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그 변화과정을 소개하고 있을 뿐 그에 대한 가치판단은 뒤로 미루고 있다.

...

만년 동안 무엇을 남기고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개념에서부터 시작한 밀레니엄시계 기념사업은 처음에 만년간 시계를 작동하게 할 에너지원과 기술력에 촛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그 어떤 기술이나 에너지도 인류보다 힘의 우위에 있을 수는 없었다. 즉 밀레니엄 시계가 만년 간 움직이게 하는 것을 방해할 가장 큰 악재는 인류이기 때문에, 밀레니엄 시계는 스스로 권력체가 되어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구'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결국 대니 힐리스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받은 영감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시간'을 지배하는 또 다른 형태의 권력적 기념물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가 내다 본 것은 만 년 뒤의 미래가 아니라, 초고속 컴퓨터를 만드는 연구실을 지배하는 현실의 권력체계는 아니었을지...

...

우리는 미래에 압도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 미래란 기껏해야 몇 십년에 불과하다.

영화나 s/f소설 등에 몇 백 년 뒤의 세상이 간혹 나오긴 하지만, 그것은 그저 보다 더 먼 미래처럼 보이기 위해 조작된 숫자에 불과하다. 미래처럼 보이도록 만든 몇 가지 기술과 아이디어들은 기껏해야 우주여행과 우주선, 시간여행과 공중부양운송수단, 인공지능 컴퓨터와 사이보그들 정도..
이것들은 철저하게 과학기술와 기계 진화(?)론에 의존한 산물이다.

미래를 대표하는 사물을 구체화시켜주는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매체는 바로 영화와 같은 시각매체이다. 특수효과로 무장한 sf영화가 text로 읽고 상상하는 것을 능가하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를 압도하는 미래는 기술과 기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칫 그렇게 보이도록 가치가 전도되어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두려워 하는 것은 미래가 어떤 모습인가가 아니라, 미래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역학관계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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