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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현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하여

by 늙은소 2004. 10. 2.

오늘날 우리는 어떤 것도 다른 것과 떨어져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점점 더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건이나 현상은 복잡한 세계(complex universe)라는 퍼즐의 엄청나게 많은 다른 조직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들에 의해 생겨나고 또 상호작용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모든 것에 연결되어 있는 좁은 세상(small world)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히 상이한 학문 분야에 속한 모든 과학자들이 모든 복잡성은 엄격한 구조(architecture)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일제히 발견하게 되면서, 우리는 거대한 혁명이 진행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우리는 비로소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 A. L. 바라바시 _ '링크' 중 -

...
아직 발견하지 못한 영역 어딘가에 진리가 있으리라는 믿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다. 신이 사라진 자리, 절대 선善은 살해되었고 그 자리에 공식과 그래프의 매끈한 곡선들로 이루어진 지식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물과 운동, 거시와 미시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단순한 아름다움이 수식화 되어 등장하리라는 기대, 그것으로 이해되지 못하던 무수한 것을 분해 재조립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 과학과 철학, 사상과 현상 모든 것이 이해 가능의 영역으로 유입되리라는 희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밝히자면 나의 탈출 속도는 그들의 구심력에 미치지 못하기 일쑤이다. 좌표는 작용권 언저리를 배회하듯 순환한다. 나는 사로잡혀 있으며, 그 한계 안에서.. 무관해 보이던, 그러나 맞닿아 있는 사실들의 아름다움에 종종 사로잡히곤 한다.

대학에 들어와 처음으로 보고서를 제출하게 되었을 때 일이다. 철학과 개설 교양수업이었다.
전반기에 데카르트, 후반기에 니체를 다루었던 그 수업에서 처음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담아 글을 쓰게 되었다. 태어나서 글이라고 불리울 만한 것을 쓴 것이 그 때가 처음이다.

보고서는 희곡의 형식을 차용하였다. 데카르트와 나, 철학교수 세 사람이 무대에서 데카르트 철학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었다. 보고서는 3막으로 이루어졌고, 1막에서는 대학에서의 철학교육과 보고서라는 형식이 무엇을 대답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철학교수에게 질의하는 나의 대화로 이루어졌다. 강의와 보고서, 시험이라는 소통 방식의 일방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등장한다.

2막에서는 데카르트를 무대로 불러와 그의 철학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세 사람 모두 이것이 희곡의 형식을 채택한 보고서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데카르트는 데카르트가 아니며, 데카르트를 나름대로 해석한 '나'의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철학교수 또한 철학교수가 될 수 없었다. 자의적인 해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들의 대화가 어떻게 진리를 발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라는의문이 모두에게서 제기되었다. 이는 스스로 질문함으로써 진리에 다가가고자 한 데카르트의 방법론을 비판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2막의 역할이었다.
이것은 메타텍스트적인 구성으로, 형식과 구성이 글의 내용을 다시 한 번 함축적으로드러내기 위해서채택되었다. (물론 메타텍스트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은 몇 년 뒤의 일이다)

3막에서는 철학사 전반에 흐르는 두 개의 흐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개의 대립되는 사상이 서로를 견제하고 보완하며 변화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모습은 철학사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형태가 '이중나선구조'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단순한 함수로 표현 가능한 형태가 사상의 거대한 흐름에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다. 단순한 구조, 특히 생명체의 극소 단위에서 추상적인 개념과 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거대한 진리가 그 안에 숨어있으리라는 기대를 더욱 강화시켰다. 보고서 제출 후, 이러한 나의 생각과 방법이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것이었음을 선생님께 듣게 되었고, 조금 김 새는(- -;;) 기분이기도 하였으나, 이후 디자인 작업이나 관심을 두게 된 영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물을 해체하고 조립하는 것에 늘 흥미를 느낀다. 그 안에 나의 Identity가 속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이 도덕에까지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으나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닜는 게 사실이다. 사물과 현상, 세계를 향한 시선과 이해의 방식, 중요한 선택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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