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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누가 음악을 작곡하는가?

by 늙은소 2004. 6. 14.
* 다시 '괴델, 에셔, 바흐'다

...

컴퓨터에 의해서 작곡된 음악의 경우만큼 저자와 메타-저자 사이의 차이에 대한 문제가 첨예화된 적이 없다. 작곡 행위를 할 때 프로그램은 여러 개의 독자성 층위들을 동원한다. 벨 연구소의 맥스 매튜스는 컴퓨터에게 작곡을 하도록 명령했고, 그 결과물로 인해 "메타-저자"의 문제가 거론되었다.

그는 "조니의 개선"과 "영국군 척탄병" 이라는 두 개의 악보를 입력하고는, 컴퓨터에게 '척탄병'에서 '조니'로 연결되는 곡을 만들도록 했다.

이것은 그의 기록이다.

- 그것은 꺼림칙한 음악적 체험이기는 하지만,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특히 리듬이 전환될 때 그러하다. "영국군척탄병"은 바장조로 된 2/4박자이며, "조니"는 6/8박자였다. 2/4박자에서 6/8박자로 넘어가는 변화는 분명히 식별할 수 있지만 실제 연주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바장조에서 마단조로 음계가 바뀌는 부분에서도 상당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는데 이것 역시 일반적인 작곡자에 의해서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

중략

이러한 결과물을 놓고 사람들은 '컴퓨터가 작곡을 했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결코 자신의 결과물을 '생각하여' 만들어낸 게 아니다.
컴퓨터를 통해 만들어진 곡의 배후에 있는 추진력은 인간의 지능이며, 컴퓨터는 인간이 고안한 착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동원되었다.


- 괴델, 에셔, 바흐 (인공지능의 역사)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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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연구가 20세기 중반의 과학자들의 기대에 못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지던 분야(음악이나 미술 등)에 미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종류의 소프트웨어가 쓰이고 있다.

MIT Media Lab.에서 발표한 어느 작곡 프로그램은(소니사의 CD-ROM을 위해 개발되었음) 4각형 안에 있는 여러개의 공이 서로 만나거나 벽에 닿을 때마다 특정 음을 내도록 설계되었다. (공은 서로 다은 음을 내며, 일반적인 물리학적 체계에 따라 운동한다)

그렇다면 이 음악은 컴퓨터가 작곡한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착상(혹은 설계)을 한 사람에게 공을 돌려야 하는가? 만약 내가 플래쉬 액션 스크립을 써서 지금 이와 유사한 작품을 만든다면 그것은 누구에게 저작권을 주어야 하는가? (이미 만들어 봤지~)

포토샵을 한 번 생각해보자. 과거 손으로 직접 물감 등을 이용해 포스터 등을 제작하던 때, 유명한 디자이너나 화가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색감이나 표현형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컴퓨터의 도움으로 우리는 '마티스의 색'을 추출하여 '마티스처럼 보이도록' 사진을 변조할 수 있으며, 엔디워홀이 마릴린 먼로를 재구성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몇 분 만에 내 얼굴을 조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컴퓨터가 만든 것인가? 그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람의 것인가? 혹은 그 프로그램의 여러 기능들 중 일부인 특수효과를 만들어낸 사람의 것인가? 아니면 엔디워홀인가? 혹은 나인가?

...

1980년대 우리나라의 보통 가정에 세탁기와 전자렌지, 식기세척기 등이 보급되면서 이런 식의 부부싸움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신이 집에서 하는 일이 뭐 있어? 빨래는 세탁기가 하지, 설겆이는 세척기가 하지, 국도 전자렌지에 데우면 그만인데... 당신은 아무 것도 안하잖아!'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기술이 일반의 삶에 도입되는 과도기에 늘 있어왔다. (빨래방망이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도 남편들은 아내에게 '빨래는 방망이가 다 해준다'라 말했을 것이다!)

빨래와 같은 육체노동은 확실히 기계의 도움으로 수고가 덜어질 지 모르나, 작곡이나 디자인, 회화와 같은 정신노동은 기계 도입의 과도기 이후 수고로움이 덜어짐과 동시에 보다 더 다양한 표현과 시도가 가능해졌다. - 카메라가 보급되며 움직이는 물체의 순간포착이 가능해지며 사고 영역이 보다 확장된 것처럼 - 아마도 'interactive'가 그 대표적인게 아닌가 싶다.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혹은 적어도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나오기 전까지는 '메타-저자'는 인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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