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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기록

20031023-꿈의 기록

by 늙은소 2017. 9. 1.

용산 전자상가에 가는 방법은 이미 여러 경로를 알고 있었다.

1호선 용산역에서 내려 역사 내부와 전자상가를 이어주는 공중다리를 따라가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4호선 신용산역을 이용한 다음 이곳에서 선인상가까지 연결된 지하통로를 지나는 방법도 있다.
망우동을 떠나온 이후, 한강 이남의 여러 곳을 일년 주기로 이사하며 일 년에 몇 번씩 컴퓨터 부품이나 소모품들을 사기 위해 용산을 방문하곤 했다. 망우동에서 살 때에는 1호선을 이용해 용산 전자상가를 방문하곤 했는데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는 줄곧 4호선을 이용하고 있다
.
그러나 이것도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제법 큰 돈을 들여 컴퓨터를 조립한 이후 직접 부품을 구매하는 일도 뜸해졌고, 소모품들은 인터넷으로 구매하거나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구매하는 일이 잦아졌다.

 

3년 만이어서 그런가. 용산 역에서 내려 통로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어쩐지 전자상가로 가는 입구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역을 나왔을 때 지하통로를 제대로 찾아들어가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길을 헤매게 될 것인데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체력이 약한 편이라 시작부터 힘을 뺐다가는 사야할 물건을 제대로 구매하지 못할 수 도 있는 일이라 마음이 조급해졌다.
몇 초 간 눈을 찌푸린 끝에 통로를 찾아냈다.

굴다리 모양의 입구 앞쪽으로 허름한 분식집 몇 개와 싸구려 영화 DVD와 공CD 같은 것을 파는 가게 몇이 보였다.

그 너머로 전자상가로 이어진 지하통로 입구가 보였다.


 
이 곳을 지날때마다 통로 입구에 있는 가게들에 대하여 생각한다.

여기서 파는 물건은 모두 전자상가에서 구할 수 있으며, 그곳이 더 가격이 저렴한 것도 분명했다. 100미터만 걸어가면 싸고 다양한 물건을 선택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전자상가가 펼쳐져 있는데, 전자상가 입구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곳을 찾는 사람 그런 손님을 상대로 장사를 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가게의 주인들이 늘 궁금했다.

동대문시장 같은 곳에서도 그랬다. 지하철을 나가기만 해도 건물 전층이 모두 옷가게인데 지하철 상가에서 비싼 가격을 주고 옷이나 신발을 사는 사람은 어떤 이들인지... 늘 그런게 궁금했다.


이곳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손님들의 상당수는 전자상가에서 물건을 구매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품 몇 가지를 빠트린 경우가 많지 않을까 나름 추측을 해 본다. 100여 만원이 넘는 장비를 구매하고 난 다음이라면 몇 만원이나 몇 천원 하는 케이블 몇 개공씨디 정도는 가격 차이가 나더라도 여기서 구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들이 지불하는 건 왔던 길을 돌아가는 수고로움과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의 비용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교환하는 가치는 이것이 다일까?
 
용산 전자상가에 방문할 때마다 나는 자신의 구매행동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용산에서는 정가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고, 제품 정보와 가격 정보를 누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를 두고 손님과 손님이, 또 손님과 점원 사이에 경쟁이 펼쳐지는 일이 많았다. 구매하려는 제품의 가격을 가게마다 비교해가며 물건을 구매할 것. 그리하여 가장 싼 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하는 것. 승리는 그런 사람들의 몫이었다. 

 

이런 유형의 전투에 능한 친구들은 내가 용산에서 무언가를 사들고 올 때마다 얼마에 샀는지 물어봤고, 가격을 들은 다음 보란듯이 내 앞에서 혀를 찼다. 그건 **만원에 구할 수 있는 건데... 그 돈을 주고 샀냐며 나를 패배자 취급했던 것이다.

역시 여자라 바가자를 씌운 거라며 어리석은 소비자 취급을 참 많이도 받았다.

 

용산 전자상가란 그런 곳이었다.

 

 

규칙이 이렇다보니 지하통로 입구의 가게를 두고 '어리석은 구매자를 위한 낚시터'라고 부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서 물건을 산다는 건 그가 어리석고 칠칠치 못한 소비자라는 걸 의미한다동대문 종합상가를 눈 앞에 두고 동대문역 지하상가에서 물건을 산다든가, 바가지를 씌울 것이 뻔한 관광지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졸업식장 입구에서 꽃다발을 구매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결국 입구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 교환되는 것은 되돌아가는 수고로움이나 시간낭비가 아니라, 어리석은 구매자라는 타이틀일 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과 함께 지하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
 
바로 몇 시간 전 용산에 다녀오는 것을 망설이며 거실 바닥에 누워있었다.

 

어딘가 문이 열려있었는지 집 밖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비가 오는 건가 싶어 창문을 열어보니 옆 집 베란다에서 화분에 물을 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옆집이 이렇게나 가까웠던가 싶을 정도로 눈 앞의 광경이 낯설었다. 화분으로 쏟아져내리는 물줄기의 모습뿐 아니라, 물을 주고 있는 50대 사내의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옷차림까지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다. 베란다의 간격은 50cm가 채 안될 정도여서 다리를 살짝 들기만 해도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잠이 덜 깬 탓에 조금 귀찮아진 나는 설마 저 사람들이 여길 넘어오기야 하겠느냐며 다시 자리로 돌아와 누워버렸다.
 
차가운 맨 바닥에 머리를 댄 상태로 옆으로 누워있는데 벽이 점차 투명해지더니 유리로 된 미닫이 문이 벽 사이에서 나타났다. 투명해진 벽과 문을 통해 옆 집 내부가 보인다나와 마찬가지로 그곳에도 누군가 옆으로 누워 나를 바라보고 있다. 마주보고 누운 사람 외에도 두어 명의 사람들이 거실을 오가는 게 보인다. 사생할 침해가 심각하다는 생각을 하며 옆 집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 사람들이 미닫이 문을 열고 내 집을 드나들기 시작한다그 상황을 속수무책인 상태로 지켜보다가 결국 옆 집을 찾아가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
 
거실에서 만난 주인 아주머니는 바쁘다며 나를 상대해주지 않는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 이 방 저 방 둘러보다 안방에 들어섰다. 방 안에서 나를 맞이한 건 조금 전까지 베란다에서 물을 주던 주인 아저씨였다. 겨울 이불을 모두 꺼내 방 한 가운데에 차곡히 개놓고 위에 걸터앉은 그는, 늘어진 런닝셔츠바람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능글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나의 방문에 놀라긴 커녕 이 상황에서 나를 어찌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기름지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를 향해 경멸과 욕설을 퍼부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말을 내 뱉을 새도 없이 주인아주머니가 방에 들어와 오히려 내게 화를 내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옹호했고, 그가 아닌 내게 화를 내고 있었다. 네가 뭔데 그를 거부하냐는 게 그녀의 주장이었다.

 

험악한 얼굴의 그녀를 보며 그녀가 옹호하는 건 자신의 남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이 혐오스러운 인간을 참으며, 원래 삶이란 다 힘든 거라며 애써 위안하며 살아왔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3자가 이 남자가 얼마나 혐오스러운 존재인지 확인시켜준 것이다.

자신의 남편이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는 게 당연한 남자라는 사실을 나로 인해 알게 된 것이 그녀로서는 분노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
 
지하 통로를 걸으며 조금 전 내게 화를 낸 옆집 아주머니를 떠올렸다

당시에는 그녀의 어리석은 분노에 치를 떨며 자리를 피했지만 지금은 그녀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누구에게 화를 내야하는지 구분하지 못하곤 한다.

분노의 원인이 명백하게 보이는 경우에도 그것에 굴복하거나 어쩔 수 없었다 말하며 분노를 오히려 다른 곳에 퍼붓곤 하는 것이다.

그 불일치의 가장 억울한 형태는... 화를 내야할 대상을 지적하며 '왜 그렇게 사느냐, 왜 참기만 하느냐' 노골적으로 질문하는 자들이 겪는 낭패다.


'내가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 너 따위가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하느냐
'
'
내가 그를 용인하고 살아가는데. 내가 이렇게 참고 있는데... 감히 이제 막 처음 겪은 네가 이걸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라 말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해보기로 한다.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딸들의 이야기
.
이러한 가정의 경우, 어머니가 상황을 알고 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종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어머니들은 딸의 방에 아버지가 들어가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는 것으로 묘사하곤 한다. 어떤 작품들은 마치 그녀들이 자신의 남편에게 딸을 '상납'하는 것처럼 연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엔 앞서의 경우와 비슷한 어긋난 분노가 포함되어 있던 게 아닐까.

자신의 딸이 그 일을 겪기 바란게 아니라, 자신이 그런 것처럼 참기를 바란 것.

본질은 '겪는' 게 아니라 '참는' 것에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 모든 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걸' 확인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
 
예기치 못한 욕설을 들은 후 황급히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나는 한참동안이나 두 집 사이에 놓인 투명 문을 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 문을 잠그면 옆집이 알아챌 것이 분명한데 이후 맞이하게 될 사건들을 감당할 수 있을 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문을 열어놓고 지낼 수는 없는 법. 큰 한숨을 내쉬며 미닫이 문을 닫은 후 문의 잠금장치를 고정시켜 그들에 대한 내 입장을 확고히 하였다. 그런 다음 집에서 나와 용산으로 떠나는 지하철 4호선을 탔다.
 
베란다는 다시 이전처럼 멀리 떨어졌다.

화분에 물을 주는 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미닫이 문이 있던 벽은 다시 견고한 콘크리트로 그 불투명함을 과시하고 있다.

나는 안심하며 지하철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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