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2017.09.09 15:27

* 이 글에는 영화 [나를 찾아줘]에 대한 스포일러가 '무척이나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를 찾아줘(Gone Girl), 2014

감독 : 데이빗 핀처

출연 : 로자먼드 파이크, 벤 애플렉

 

 

니체는 [잠언과 간주곡]에서 이야기한다.
'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위안이 된다
.
그러한 생각으로 사람들은 수 많은 괴로운 밤을 참고 견딜 수 있다
'
...

늦은 오후, 잠시 빠져든 낮잠 속에서 나는 사람의 목을 베었다
.
작고 날렵한 면도용 칼을 손에 쥔 채 덤벼들 듯 다가오는 사람들의 목을 베어나갔다
.

그곳에는 테니스의 서브를 넣는 동작과 같은. 가뿐하면서도 힘에 넘친 리듬이 있었다
.
칼을 손에 쥔 팔이 사선을 그으며 아래로 곡선을 그을 때. 사람들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
칼날이 세포를 파괴하며 피부조직을 파고들었다.

혈관이 규칙적이던 피의 흐름을 어쩌지 못해 외부로 피를 뿜어냈다.

전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나는 점점 미쳐갔다
. 즐거웠다.

...

이러한 꿈에서 깨어나 본 경험이 누구나 한 번 정도는 있지 않을까
?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
.


현실에서도 종종 나는 살의(
殺意)에 시달린다.
바삐 걷는 걸음을 멈추게 한 후 도를 믿는지 묻거나 영혼이 맑으시네요 말을 걸어오는 이들에게. 또 자신의 종교를 따르지 않으면 지옥에 가리라 저주하는 사람들에게.
(그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자신에게 당황한다)
뿐만 아니다
.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시켜놓고는 끝내 그 돈을 주지 않아 한 학기 등록금을 내지 못하게 만들었던 사람에 대해서도 나는 살의를 느꼈다. 삶이 누적될 때마다 살의의 대상은 늘어만 가고죽어 마땅하다 생각하는 사람의 수도 증가한다.

그러나
.
살의를 품는 것과 살인은 명백히 다른 행위다
.
상상한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살인이야 오죽하랴
.
하지만 잔인한 상상은 분노와 절망을 잠재우는 데 효과를 발휘하기에, 죽이고 싶은 상대를 죽이는 상상을 하며. 사람들은 오늘도 자신의 고통을 위로한다
.
...


여기. 그 상상을 실행에 옮긴 이가 있다. '어메이징 에이미'

자신이 나고 자란 뉴욕의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으며 가진 재산을 털어 'Bar'까지 차려줬건만. 남편 닉(벤 에플렉)은 삶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은 채 지리멸렬한 현실에 안주한다. 더 나아가 닉이 한참이나 어린 여자와 불륜을 하고 있음을 안 그녀
. 분노한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는 자신의 남편을 파멸시키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죽음을 남편에 의한 살인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게 자신의 죽음임을 알면서도 그녀는 시종일관 매우 들뜬 표정을 한 채 자신이 세운 계획을 하나씩 실행에 옮긴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표면이다.

남편을 향한 에이미의 분노는 타당하였고, 복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좋은 처방이 되었을 것이다.
놀라운 점이라면 그녀가 복수를 중간에 멈추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살인 사건이 벌어진 것처럼 현장을 꾸미기 위해 채혈을 해 피를 모아놓고 종적을 감추는 단계까지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갈 수 있었으나, 폭행 후 살해된 시체로 발견될 수 있도록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과정에 이르자 그저 경악하며 지켜보는 일 밖에 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복수심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자해의 단계에 이르면 누구나 회의감에 사로잡히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나 에이미는 그렇지 않았다. 주저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에이미의 가장 '어메이징'한 부분이었다.

...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책을 시리즈로 발표한 부모 덕분에 에이미는 어린 시절부터 주목을 받으며 성장한다

부모가 쓴 책 속의 에이미는 실제의 자신보다 늘 한 발 앞서 있었다
. 과장되었고 또 미화되어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는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책 속의 '어메이징 에미지'가 될 수 없었다. 그 간극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책을 쓴 그녀의 부모가 아니라 바로 에이미 자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미는 '어메이징 에이미'와 끊임없이 경쟁을 해온 탓에 하버드에 입학할 수 있었고, 잡지사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가 되었으며 지적이며 재치있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성장하게 된다.

에이미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는 부부관계의 갈등이 아니다.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서서는 '어메이징 에이미'와 끊임없이 경쟁해야 했던 '에이미'라는 인물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그녀가 왜 '자해'를 수단으로 삼아 복수를 계획하게 되었는지 해석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보통 자해는 누군가를 협박해 무언가 얻어내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로 선택된다. 에이미와 헤어진 후 자살소동을 벌였던 전 남자친구 '데지 콜링스(닐 페트릭 헤리스)'의 경우가 그 전형이다. 그러나 에이미는 자신을 분노하게 한 상대를 사회적으로 단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해를 선택해왔다. 그녀의 계획에 따르면 얼굴을 망가트리고 자살을 계획하는 등 모든 행위가 닉을 살인범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며 전략일 뿐이다. 그러나 일기 형식으로 이어지는 독백에서조차 나는 에미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말로 자해가 수단일 뿐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복수를 위해 내가 죽기까지 해야 하다니.. 아무리 분노하였기로서니 이렇게까지 하는 건 좀 이상하지않은가. 닉에게 복수하는 것이 제 1목표고, 복수의 결과가 닉이 살인범이 되는 것이라면 바람핀 상대 여성을 살해한 후 그 범인이 닉이 되게끔 계획을 세울 수도 있었다. '자해' '자살'을 굳이 수단으로 삼지 않고도 충분히 다른 형태의 범죄를 계획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 좋은 그녀가 굳이 자신의 죽음을 수단으로 삼을 이유가 과연 있었을까? 흥미로운 건 닉을 만나기 전에도 에이미는 자신을 망가뜨리는 방법으로 남자들을 처벌해왔고,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는 점이다.

 

에이미에게 수단과 목적은 전도되어 있었다. 

그녀는 지금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녀는 책 속의 '어메이징 에미지'가 실존이며, 자신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스스로 존재한 적이 없기에 자해나 자살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닐런지. 이런 생각으로 영화를 보다보니 피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에이미를 보며, 뱃속에서 방금 끄집어 낸 태아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된다. (피를 씻으며 남편에게 범죄의 전모를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태어난 아이를 씻는 행위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부모에게 있어 책을 쓰기 위해 소재이며 도구였던 '에미미'와 결별하고. 이제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 손으로 쓰게 된 에이미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에이미의 출산 과정이자 동시에 출생 과정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의 복수가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되었으나, 결국 그녀의 시나리오는 흥행에 성공했고 자신의 캐릭터를 남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비로소 그녀는 작가가 된다. 그 뿐인가. 남편 닉을 이 싸움에 끌어들임으로써 그의 작가적 본성까지 일깨웠으니.. 이 정도면 성공적인 '출산'이 아닐 수 없다.


 


닉이 강사로 활동하는 연구실로 형사가 찾아왔을 때, 카메라는 빈 서류함 하나를 클로즈업한다. 그 서류함의 제목은 'Book Ideas'였다. 닉은 단서가 담긴 봉투가 있던 서류함에 대해, 자신이 바람피운 장소를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그곳은 외도의 상징이 아니라, 닉이 작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폐기해버린 상징물이기도 했다.

에이미가 닉을 사랑한 것은 그가 낭만적이어서가 아니라, 그에게 작가적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 '당신만 글을 잘 쓰는 줄 알지'라며 닉을 향해 비웃음을 던지는 에이미의 일기를 통해, 남편에 대한 그녀의 작가적 열등감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그녀가 적어도 닉의 작가적 재능을 그 동안 인정해왔음을 알 수 있다.

에이미가 지닌 작가로서의 열등감은 아마도 자신의 부모에 의해 형성되었을 것이다
. 부모가 출판한 책 '어메이징 에이미' 속의 주인공에게 늘 쫒기는 기분이었을 그녀. 그러나 '어메이징 에이미'는 그리 대단한 책이 아니었고, 청소년 아동 도서에 불과했다. '어메이징 에이미'와 평생을 싸워왔는데, 그 책이 그리 대단하지도 않다는 건 그녀의 자존심에 꽤나 견디기 힘든 부분이었을 것이다. 성장하면서 그녀는 어메이징 에이미를 뛰어넘는 것보다 차라리 그 책을 쓴 자신의 부모를 뛰어넘기를 바랐을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해방되기를 꿈꿨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글재주는 잡지사에 실리는 성격테스트용 텍스트 작성에 사용될 뿐이었다. 더구나 그마저도 그녀는 해고되고 만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작가적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재능을 술집 운영에 묻어버린 채 퇴화하기를 택한 닉의 모습은 견디기 힘든 분노가 아니었을까?


'반전'이 주는 물리적 효과에 지나치게 탐닉하지만 않는다면. 이 영화는 충분히 흥미롭다.

Posted by 늙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