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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80220

by 늙은소 2018. 2. 21.

1.

연휴가 시작되기도 전에 좋지 않은 일들이 계속되었다. 하루에 같은 꿈을 20번 정도 이어서 꾸며 악몽에도 제법 시달렸다.

잠이 오지 않아 수면유도제를 평소보다 두 세배 정도 되는 양을 들이켰고 겨우 잠이 들었다. 두 시간 가량 자다 5시에 깼는데 이미 악몽에 한참 시달리고 난 뒤였다.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다시 잠이 들었고 이후 5분이나 10분 간격으로 깨어나면서 그 때마다 같은 꿈이 이어지고, 점점 꿈과 현실이 뒤섞이게 되었다. 잠에서 깨고 싶었으나 약 때문인지 그마저도 잘 되지 않아, 원치 않아도 다시 잠이 드는 상황이었다. 잠이 들 때마다 이야기가 추가되고 새로운 꿈은 이전 꿈에 대한 좋지 못한 증거가 되어 상황을 더욱 좋지 않은 방향으로 몰아가는 구조였다. 결국 각각의 꿈이 종합되면서 모든 상황이 최악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이런 과정이 20번 정도 반복된 것.

내가 꿈을 꾸는 게 아니라 꿈이 스스로를 완성하는 느낌. 사로잡힌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2.

만화책을 전자책으로 사서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연휴 기간 동안 '백귀야행'을 25권까지 정주행했다. (과거에 종이책으로 18권 까지는 본 적이 있었다) 이런 저런 사건들과 그에 따른 고민. 고양이 문제, 일 관련 문제 등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가 하나 둘이 아닌 상황이라 밤에 깨어있는 때가 많았다. 잠도 오지 않아 전자책으로 나온 만화에 어떤 게 있나 검색을 해보던 중 이 만화를 떠올리게 되었다. 잊고 있던 사이 7권이나 더 출간이 되었다는 소식도 반가웠고, 구매해놓고 가끔 생각날 때마다 다시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권을 구매한 다음 연휴 기간 동안 틈 날 때마다 조금씩 읽어내려갔다.

덕분에 악몽을 또 꾸고 말았다. ㅋㅋ 예전에 이 만화를 처음 봤을 때에도 악몽을 꿨는데... 은근 무섭단 말이지.

 

거의 20년간 연재를 한 모양이던데 그 사이 작가의 나이가 50대가 되면서 만화의 분위기나 단골로 등장하는 가족 이야기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노인들의 비중이 증가한 것도 그렇고, 한을 품고 죽은 젊은 귀신보다 투병하는 노인의 이야기가 더 리얼하게 다뤄지는 느낌? 우리 집 일과도 무관지 않아 병수발이니 요양원이니 상속문제니 하는 부분들을 보며 심란해졌다.

20대 초에 이계異界에 끌려 들어가 26년간 실종되었다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현실로 복귀한 삼촌 이야기도 무섭긴 마찬가지. 경력도 졸업장도 자격증도 없는 상태로 하루 아침에 40대 중반이 되어버린 남자의 생계 문제라니... 귀신보다 이게 더 무섭지 않은가? 

 

3.

고양이가 밤마다 울고 있다. 12년간 처음 있는 일이다.

2시간 정도 조용하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해 20~30분간 우는데 결국 내가 완전히 잠에서 깬 상태로 아래층으로 내려와야 울음을 멈춘다.

일주일 정도 계속되는 바람에 수면패턴이 엉망이 됐고 몸도 썩 좋지 못한 상황이다. 발정기인가 생각하기에는 또 뭔가 좀 다르고, 어디 아픈 것 같지도 않은데 일주일간 계속 이 모양이다. 얘가 왜 이러나. 가뜩이나 힘든데 왜 얘까지 이러는 걸까.

 

4.

설에 집에 갔다가 심란해져서 차를 타지 않고 집까지 걸어왔다. 7km 정도 걸은 듯 한데 날이 추웠던데다 구두를 신고 있었던 탓에 양쪽 발에 커다란 물집이 몇 개씩 잡혔다. 바늘로 물을 빼보았으나 다시 물이 차고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아물질 않고 있다. 발바닥 살이 두꺼워서 그런지 물집이 터지지는 또 않아서 걸을 때마다 젤리를 밟는 기분이다. 덕분에 며칠 째 발을 절고 있다.

충격적인 소식을 너무 많이 들어서 차라리 이렇게 몸이 아픈 게 반가울 정도다. 그 쪽으로 신경을 덜 쓰게 된달까.

 

5.

몇 달 전 웹소설 쪽은 퀄리티가 어떤가 싶어 중장편 몇 개를 본 적이 있었다. (자신감을 얻고 싶은 마음 반, 뭐라도 시도를 해봐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에 가명으로 저런 데다가 글이라도 한 번 올려볼까 하는 마음 반.) 대체로 형편없는 와중에 재능이 아깝다 싶은 글도 보였고, 생각보다 괜찮은 글도 많았다.

그러다 유독 한 글에 눈길이 갔는데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특이한 데가 있었다.

글을 읽는데 그림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방송작가 쪽이거나 적어도 그런 쪽을 지망하는 사람인 듯, 방송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었고 드라마 제작 환경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아는 사람이 쓴 것처럼 느껴지는 글이었다. 사건이 펼쳐지는 공간에 대해 나름 열심히 묘사를 하고 있었으며 날씨의 변화나 풍경에 대해 묘사하는 분량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할 정도로 이 사람의 글은 머리에 그림으로 그려지질 않는 것이다.

한참 읽다가.. '아 지금까지 그 집 마당에서 벌어진 일이었던 거야?' '아직 아침인 거야? 그럼 아까 전 이야기는 새벽인거고?'

뭐 이런 식이었다. 탁자가 어떻고 나무가 어떻고 설명이 나오는데 정작 거기가 정원인지 동네 공원인지 모르겠다거나, 나뭇잎이 어떤 식으로 바뀌고 공기가 어떻게 바뀌고는 나오는데 아직 해가 뜨기 전인지는 알려주지 않는 식.

큰 틀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부 묘사만 공을 들이다보니 읽으면서 붕 뜬 느낌이 드는 글이었다. 그 글을 쓴 사람 머리 속에는 그 공간이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 걸까 싶은.

사건 전개에 있어서도 비슷한 문제가 보였다. 주인공들간의 갈등이 심화되며 촬영장에서 세트 준비 중 심각한 말싸움이 벌어지는데 촬영장에서 일하던 다른 직원들이 그걸 듣고 있는 건지 아니면 본인들이 조용한 곳으로 옮겨서 싸우는 건지 설명이 없는 것이다. 말싸움 과정에서 나온 대사들이 너무 개인적인 정보들이라 제 3자가 들으면 절대 안 될 이야기들이던데 싸우는 장소나 주변 환경에 대한 설명이 없으니 그냥 그대로 읽으면 사람들이 다 보고 듣는 자리에서 저렇게 싸운걸로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 것이다.

뭐랄까. 그 소설은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적 환경 같은 건 무시하고 등장인물들 몇 사람만의 심리 변화(특히 로맨스 관련한)에만 관심이 있는 글처럼 느껴졌다. (결국 읽다가 때려치고 말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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