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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80414

by 늙은소 2018. 4. 14.

1.

태어나 처음으로 생선을 손질했다.

생선요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직접 만드는 건 몹시 번거로운 일이어서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마트에서 장을 보다보니 요즘은 상당히 손질이 잘 된 상태로 생선류가 판매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교적 냄새가 적고 만드는 게 크게 어렵지 않은 냉동 코다리를 주문해 코다리찜에 도전해보았다.

머리 속에서 생각한 음식은 코다리 찜이 아니라 코다리간장조림이었으나 정작 레시피는 코다리찜을 참고하게 되었고, 결과물은 어쩐지 동태탕이 되고 말았다. 처음 해 보는 생선요리라 비린내가 무서워서 향이 강한 재료를 함께 넣었는데 문제는 그 향이 너무 별로라는 점이었다.(원래 향은 좋았는데 다른 재료가 섞이면서 이상한 향이 만들어졌다)하는 수없이 문제의 향을 덮기 위해 온갖 재료들을 추가하게 되었다. 후추 갈아넣고 그래도 소용이 없어서 카레도 약간 넣고. 레몬 식초도 조금 넣어보고 참기름도 넣고... 비린내 없애는 것 보다 향 잡는 게 더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데로 먹을만 하긴 하지만 돈 주고 팔지는 못할 음식이 만들어졌다.

5마리를 넣고 만든 거라... 두고두고 먹어서 없애야 할 판이다.

..

생선은 물론이거니와 생고기도 직접 만지지 못하는 편이다.

벌레를 극심하게 무서워 하는데, 그에 못지 않게 피나 내장같은 것도 보질 못한다.

생고기는 핏물이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촉감때문에 잘 만지질 못한다. 도마에 생고기를 놓고 자르면 핏물이 도마에 스며들 것 같아서 늘 비닐을 깔고 비닐 장갑을 낀 상태로 가위를 이용해 고기를 자르곤 한다.


코다리를 다듬는 건 나름 꽤 큰 도전이었다.

지느러미를 가위로 잘라내고, 안에 붙어 있는 내장의 흔적 들을 떼어내는 것 까지는 어떻게 할 수 있었는데 생선 머리는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도 손질을 해서 함께 끓이고 머리에 붙은 살도 먹는다는데...이걸 도저히 만질 수가 없어서(다듬으려면 눈으로 봐야하는데 제대로 보는것도 쉽지 않았다) 제법 살이 붙어 있는 생선 머리를 모조리 버리고 말았다.


2.

2월부터 약 두 달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보냈다. 

가족 중 한 명이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뭔가가 조금 잘못되었었다. (처음 입원을 한 것은 작년 연말의 일이고 이후 몇 차례 수술이 있었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간병을 도맡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상태로 몇 달이 이어지자 연쇄적으로 가족들 모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휘말려 들지 않기 위해 애쓰다가 2월 중순에 결국 문제의 상황에 끌려들어갔고, 전염병이라도 되는 양 나 역시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게 되었다. 

그 때부터 하루에 적게는 2시간, 많아도 6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했던 것 같다. 머리는 계속 깨어 있는 상태여서 피곤하면서도 붕 떠 있는 기분일 때가 많았다. 이 집 저 집에서 나에게 전화를 해 하소연을 하고, 각자 자기 말만 하다가 다른 가족들 험담을 하고 그러다가 또 울고. 그런 전화가 하루가 멀다하고 몇 번씩 걸려오는 일상이었다. 몇 달 간 간병을 하던 어머니는 2월 말 폭발했고, 어린 시절 익숙하게 보았던 예의 그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어떻게든 어머니 쪽 증상을 완화시켜야겠기에 몇 번씩 집을 다녀갔는데, 갈 때마다 6시간에서 8시간 정도는 대화를 하며 상황을 풀어나갔다. 문제가 아닌 것과 문제인 것을 구부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하고, 본인이 지나치게 감정적인 상태라는 것을 자각하게 하고, 이야기를 들어줄 것은 들어주고 달랠 것은 달래면서 감정 상태를 누그러트려놓아야만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양쪽을 오가며 이걸 반복하다보니 이 사람들에게 전염이 된 듯해, 나 역시 정신과를 찾아가 상담을 받아야 했을 정도였다. (의사는 그 사람들 문제는 본인들이 해결할 일이니, 당장 가족들과 떨어져서 자기 몸이나 챙기라고 할 정도였다. 내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퇴원을 했고, 생각보다는 잘 적응해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신경은 덜 쓰려고 노력 중이다.


3.

병원을 다녀온 뒤로 어떻게든 가족 문제에 덜 개입하려 노력했고, 다행히 문제가 조금은 완화된 듯 해 안심을 하고 있었다. 처방받은 약도 다 먹지 않고 남았을 정도로 내 문제는 일시적인 것으로 여겼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이전과 다르게 행동하는 내가 보였다. 지나치게 과잉된 상태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클라이언트가 작업 문서를 보통 오후에 보내주는데 그걸 받아서 밤새도록 일을 해 새벽이나 아침에 보내놓는 식으로 일주일 넘게 쉬지 않고 일을 했던 것이다.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멍한 상태로 계속 일을 하고 또 했다. 또 다른 일들도 수정사항이 오면 그 날 바로 작업을 해서 보내놓고, 진행 중인 다른 일 하나는 의대 전공 교재를 사서 아예 공부를 해가면서 일을 진행했다.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느낀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이 의대 전공책이었다.

작업을 하려면 어느 정도 이 분야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구매한 책이었는데, 이걸 너무 미친듯이 열심히 읽은 것이다. 정작 읽은 횟수는 한 번인데 지나치게 집중해서 본 나머지 한 번 보면서 이걸 통으로 외워버린 것이다. (책 이미지를 찍어서 머리에 넣었기 때문에 허공에서 페이지를 넘기면 알아서 화면이 바뀌는 식으로 외운 것)

사망진단서 작성법에서는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때 4단계로 병력을 기재하게 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예시로 어떤 상황을 언급했는지 (사망한 사람은 50세에 당뇨병을 진단받았고 70세에 고혈압 판정을 받았고 72세에 동맥경화를 진단받았으며...급성심근경색증으로 병원에 온지 하루만에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걸 대체 왜 외우고 있냔 말이다)

그 뿐 아니라 치매노인에 대한 연구도 사례로 등장하는데 이건 숫자까지 모조리 외우게 되었다.

광명시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하였고 전체 치매환자 16,109명 중 1,599명을 무작위 추출하였고 이 중 21명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으며 129명은 주소가 불분명하였고 138명은 해당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어 1311명이 연구 적격집단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에게 직접 연락을 하여 연구에 참여할지 의사를 물었고 946명이 참여의사를 보여 응답률은 71.1%라는 내용이 왼쪽 페이지 중앙에서 약간 위쪽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해당 내용을 표로 정리해 화살표를 사용해 아래로 차례차례 설명하는 방식의 그림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외워버렸고, 그게 멈추지 않는 상황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오랜만에 머리를 써서 그런가보다... 머리를 많이 쓴 날은 원래 이 정도는 했었지... 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런데 회의 당일 순간적으로 머리가 180도 돌아가면서 머리 속이 꼬이고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되었다. 의대교수들과 함께 하는 회의였는데 회의 끝 무렵에 끈이 풀리는 느낌이 들면서 휘리릭 뒤엉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걸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통제력이 없는 건 아닌데, 통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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