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8.07.08 05:17

인터넷으로 전국의 집을 구경하다 조건이 충족되면서 가격도 낮은 몇 군데 집들을 보다 자세하게 알아보기 시작했다.


1. **시 바다가 보이는 오래된 아파트

작고 오래된 아파트였으나 전망이 미치도록 좋은 곳이었다. 집 앞이 바로 바다인데 해안가 풍경이 무척 뛰어나 그것만으로도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 전체를 리모델링한 아파트들이 여럿 올라와 있었고 인테리어 공사에 상당히 공을 들인 흔적이 보였다.

부동산 사이트 밖으로 나와 로드뷰로 해당 아파트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파트로 향하는 도로에서 본 경치도 매우 훌륭했고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던 말이 납득이 되었다. 도로를 따라 아파트로 향하는데 건물 아래 지면을 절벽처럼 깎아놓은 모양새가 위태로워보였다. 장마철 폭우나, 태풍이 찾아왔을 때에도 괜찮은 건가? 걱정이 될 정도로 아파트는 가파른 절벽에 가까이 붙어 있었다. 25년이나 된 아파트인데 아직 서 있는 걸 보면 괜찮겠지 싶다가도 어쩐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로드뷰로 아파트 단지 내부를 들어가 이곳저곳을 확인한 후 후문 쪽으로 빠져나왔다. 주변에 어떤 건물들이 있는지 둘러보는데 작은 슈퍼마켓이 있는 건물 하나 외에 이렇다할 상업시설이 보이질 않았다. 작고 영세한 가게 몇 개가 바닷가 낚시터까지 이어질 뿐이었다. 차가 없다면 살기 꽤 곤란해보인다. 


해당 아파트가 있는 곳은 섬이며 육지와 여러 개의 다리로 연결된 곳이었다. 섬이라곤 하나 육지와 워낙 가까이 붙어 있고 크기도 커서 '섬'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는데 막상 로드뷰로 섬 이곳저곳을 다녀보니 생각보다 낙후된 시설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경로로 그 섬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 에서 가난한 축에 속하며 섬의 중앙부에는 저소득층이 몰려있어 아침부터 술에 취해 길에 누워있는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섬 전체를 개발하려던 계획은 무산되었고 이제는 거의 포기 상태인 듯 했다. 관광지로서의 가치도 외부인들이 보는 시각과 현지인이 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컸다.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그 주변에 하청업체들이 들어서면서 주변 환경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해당 산업이 급격히 쇠락하면서 섬 전체 경제상황이 어떻게 나빠졌는지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더니 그 아파트 이야기가 나왔다. **년 태풍때 크게 흔들렸고 부실공사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는 글이었다. 다른 경로로 알아보니 해당 주민들이 부동산 투기와 관련하여 대화를 나눈 게시물을 찾을 수 있었다. 교육 환경이며 생활환경이 정말 좋지 못한데 **시 부동산 열풍에 덩달아 휩쓸려 최근 1~2년 사이 아파트 값이 2배 가까이 뛰었다는 이야기였다. 현지인들이라면 절대 여기를 사지 않을텐데 서울 사람들이 바다가 보이는 전망에 혹해 그렇게 여기를 사들였다는 글이었다. 여러 사람이 몰려와 흡사 쇼핑하듯 아파트를 사갔다는 내용이었다.

그제서야 부동산 사이트에 이 아파트가 왜 많이 올라와 있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리모델링 역시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전망은 뛰어나지만 살기에 좋지 못하고 투자 가치 역시 그리 좋지 못하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 사람들이 집 값의 거의 50%나 되는 돈을 들여 리모델링을 한 다음 어떻게든 이것을 다시 팔려고 내놓은 게 분명했다. 투기 열풍에 휩쓸려 이곳을 산 사람들 중 자금 여유가 되는 이들은 리모델링을 한 후 이 곳을 별장처럼 활용한다고 한다. 

아파트를 리모델링한 업체들이 올린 사진을 통해 리모델링을 하기 전의 아파트 내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나 문제가 있는 곳인지 알게 해 주는 적나라한 이미지들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동과 그렇지 않은 동, 바닷가에 있으나 풍경이 잘 보이지 않는 저층과 고층의 가격은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투기 열풍에 집값이 뛰었다지만 그건 바닷가에 있는 몇 개의 동에서도 고층부만의 이야기였다. 기형적인 구조였다. 집 값의 절반 가까이 들인 인테리어 비용도 기이한긴 마찬가지였다.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지금도 계속 가난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파트 위층을 부자들이 사들이더니 끊임없이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를 해댄 것이다. 낡은 아파트라 층간 소음이 특히 심한데 쉬지 않고 인테리어 공사가 이루어졌으니 갈등이 만만치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주인 얼굴이라도 봐야 따질텐데 이 외지인들은 집을 별장처럼 쓴다고 하니 얼굴 보기도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재산이자 삶의 터전인 장소가 누군가에게는 콘도 같은 용도라니. 이 정도로 하나의 동 안에서 빈부격차가 나는 아파트가 있을까 싶었다.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 아파트였다.


2. **시 산 아래에 있는 49평 아파트

지어진지 4년된 49평 아파트가 너무 쌌다. 건설사가 부도를 낸 것도 아니었고 이름을 들으면 다 아는 유명한 회사의 유명 브랜드 아파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긴 너무 쌌다. 

뭐든 이상하게 싼 건 다 이유가 있는 법. 

검색을 해 보니 경매로 올라온 물건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부실공사가 원인인가 싶었으나 미분양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4년이 넘도록 분양이 되지 않은 아파트가 많았고, 분양을 받은 사람이 집을 팔고 싶어도 팔리지 않으니 가격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여기는 이렇게 인기가 없는 것인가 싶어 **시와 아파트가 들어선 **동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의 경제는 **제철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그곳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제철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그 제철소에서 직원들을 위한 주택단지를 조성하며 제철소 주변에 거주중이던 주민들을 이주시키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곳이 이 아파트가 있는 **동이었다. 

결국 이 곳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동네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간이었다. 그러나 계획도시나 혁신도시처럼 확장성이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 지역을 선택한 게 아니다보니 지리적 조건이나 교통환경을 고려하지 않았고 그저 싸고 적당히 넓은 평지만 있으면 됐던 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 건설된 도시는 빠르게 슬럼화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애초에 **시 역시 해당 지역의 지리적 특성 때문에(강이나 산, 바다 때문에 각 구역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못한 환경) 행정이나 상업구역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있는 상황이었다.


로드뷰로 아파트 단지를 나와 **동에서 가장 번화하다고 할 만한 거리를 둘러보는데 곳곳에 임대문의라고 써 놓은 빈 가게들을 볼 수 있었다. 아파트에서 2km를 걸으면 강변에 나오는데 그곳 역시 화물차들을 위한 도로로 운영되고 있었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동 전체가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고립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3. **시 호수가 보이는 아파트

지어진지 10년 정도된 비교적 깨끗한 단지로, 주변환경이나 위치가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30평대 아파트임에도 역시나 이상하게 가격이 낮아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시 중앙에서 그리 멀지 않으며 가까운 곳에 상업시설이나 문화시설도 있었다. 문제는 **시가 혁신도시를 건설하였는데 그게 너무 단시간에 비대해져서 오히려 **시가 급속히 쇠락하는 원인이 된다는데 있었다. 혁신도시가 계속 외부로 커지고 있는데 그 방향이 **시를 향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방향이 되면서 인근의 다른 **시로 합쳐질 기세로 발전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시의 구도심에 살던 사람들이 계속 빠져나가는 게 문제로 지적되고 있었다.  (성남과 분당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혁신도시에 신규 분양이 쏟아지면서 이곳의 아파트들이 타격을 많이 받은 듯 했다. 내놓은 집은 많으나 팔리지 않으니 점점 더 가격이 내려가는 분위기.

...


일을 하다 지칠 때 가상의 목표로 삼을만한 집을 찾는 게 시작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이야기의 배경이 될 만한 장소를 찾는 것으로 목적이 변경되었다. 

여러 형태의 주택과 전국 각지의 주택가, 아파트 단지들을 구경하고 정보를 찾다보니 점점 더 그곳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상상하게 된다. 


타운하우스 단지와 살인사건의 조합은 미드 '위기의 주부들'을 떠올리게 한다. 타운하우스 단지가 지닌 특성들을 조금 더 살린다면 보다 생생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킵플로어형 주택에는 은퇴한 노인층이 들어올 일이 거의 없다거나, 반대로 대지가 넓고 텃밭이 제공되는 주택단지는 노인층의 인구 비율이 높을 수 있다는 것. 외진 곳에 건설되는 타운하우스 단지는 거주민들 사이에 공동 작업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럴 때마다 소소한 갈등이나 신경전이 발생하고 이것이 누적되면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점화될 가능성도 커보였다. 협소주택 건설의 한 방법이기도 한 듀플랙스 주택은 하나의 필지에 두 집이 거주하는 방식이라 이 두 가족 사이의 갈등이 예측되기도 한다.

작은 집 하나가 배경이 될 수도 있고, 위에 언급한 **시 중 하나가 거대한 배경이 될 수도 있겠다. 


정유정씨의 책 '28'에서는 서울 주변의 작은 도시가 소설의 배경이 되었다.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신시가지와 구 도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뒤섞였고 오래된 아파트와 병원, 나름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주택가와 공원이 배경으로 활용되었다. 서울과 연결된 이 도시를 폐쇄할 경우 발생하는 피해는 어느정도인지, 국가 전체적으로 떠안게 될 경제적 손실 같은 부분 역시 소설에서 언급되었다. 공간의 특성이 꽤 잘 사용된 소설이었다.

조금 다른 소설로 '눈먼 자들의 도시' 는 어떨까?

비슷한 이야기라도 1번에 언급한 **시 **섬이 배경이 될 때와 3번에 언급한 **시 **동이 배경일 때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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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늙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