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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고양이 간병기

by 늙은소 2018. 5. 31.

사료가 떨어졌다. 마트가 쉬는 날이어서 24시간 운영한다는 새로 생긴 동물병원에 가 사료를 사왔다. 이렇게 써 놓으니 마트에서 사료를 구매하는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마트 안 동물 병원을 이용하다보니, 마트가 문을 닫으면 병원도 문을 닫는 것 뿐이다.
리오가 먹는 사료는 동물 병원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고 동물 병원이라 해도 이 사료를 팔지 않는 곳도 제법 있어서 해당 사료가 늘 구비되어 있는 마트 안 병원을 이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 병원은 6년 전 리오가 크게 아팠을 때 이 아이의 목숨을 살려준 곳이기도 하다.

여름이었다. 그리고 주말이었다.
리오는 일요일 새벽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양이가 '저 아파요' 소리를 할 리 없었으므로 나는 고양이가 아픈지 알지 못했다. 그저 평소와 다르다는 것. 6년간 살면서 처음 보는 행동양식과 소리를 들었을 뿐이었다. 늘 내가 보이는 곳에서 터를 잡고 자거나 바로 옆에 찰싹 붙어 있는 것이 이 녀석의 주된 행동양식인데 그날따라 이상할 정도로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들어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몸에 조금 열이 있는 듯 했으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러다 말겠지. 뭐 그런 생각.
밤이 되자 증상이 심해졌으나 달리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병원을 가야 하나 싶었지만 집 근처에 있는 동물병원은 일요일에 문을 닫기 때문에 달리 손 쓸 방도가 없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마트 안에 있는 동물 병원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나는 그곳이 병원인 줄도 몰랐다. 병원이라기보다는 애완동물 용품을 파는 가게에 더 가까워 보였던 탓이 크다. 어쩐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병원이라면 뭔가 좀 전문성이 느껴져야 하지 않나? 혹은 동물에 대한 애정같은 거라도? 그런 선입견 때문에 마트 안 병원이 영 마땅찮았던 것이다. 그냥 감기일 수 있으니 하루만 더 지켜보자. 고양이의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음에도 애써 무시하며 잠이 들었다.

월요일이 되었다. 일단 출근을 했다.
고양이가 신경 쓰였지만 해야 할 업무가 있어 일을 미룰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일을 처리한 다음 부랴부랴 퇴근을 해 집에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판단할 만한 무언가를 목격하기도 전에 이미 감이 온다는 게. 영화에서 보던 장면들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살인사건이 벌어졌다거나 도둑이 들어왔을 때. 문을 열자마자 뭔가 다르다는 걸 느끼는 그런 장면 말이다. 그런 느낌이었다. 뭔가 다르다는 거. 냄새와 소리, 공기 등 그런 모든 게 달랐다. 감각은 불길한 방향을 향해 있었다.

평소 퇴근을 하면 보통 고양이가 현관문 까지 달려나와 나를 맞이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지나오는 동안 내 발 소리를 알아듣는 게 분명했다. 깊이 잠이 들었을 때는 미처 현관까지 다 오지 못해 졸린 상태로 비척거리면서도 기어코 문 앞까지 걸어와 맞이하는 게 이 녀석의 패턴이었다.
리오는 보이지 않았다. 일요일 내내 아팠으니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할 수 있지만 그런 식으로 해석이 되지 않았다. 집안 공기에 당황했다. 리오가 아픈 걸 거의 이틀간 방치했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고 죄책감이 밀려왔다. 게으름을 피워선 안될 일에 게으름을 피웠다는 자각. '어찌 되겠지' 하는 평소의 안일한 태도가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몇 걸음 걸어 집 안쪽으로 들어서자 바닥의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맙소사.
핏 방울이 떨어졌다거나, 핏물이 고인 형태가 아니라 피에 젖은 무언가가 질질 끌린 형태였다. 내가 확인해야 할 무언가가 두려워지는 흔적이었다.

빨랫대 아래에서 고양이는 발견되었다. 피와 소변으로 범벅이 된 채 쓰러져 있는 고양이 주변을 날파리들이 날고 있었다. 이미 죽어 부패하기 시작한 건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광경이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싶었지만 여름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죽음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죽은 사체가 얼마나 빨리 부패하는지 같은. 죽음 이후의 과정에 대해 나는 아는 게 없었다. 일단 급한 건 아직 살아있는지 확인해보는 일이었다. 피냄새 보다는 소변 냄새가 더 진했고 온 몸의 털이 오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냄새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바로 손이 가질 않았고 나는 잠시 얼어 있었다. 바로 병원에 가야 하는건지 조금 씻겨서 병원에 가야 하는 건지 판단력이 흐려졌다. 우선순위가 뒤죽박죽이었다.
물티슈로 몸 이곳저곳을 대충 닦은 후 전용 가방에 넣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 시간에 문을 연 가장 가까운 병원은 마트 안 병원이었다.
리오의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었고 급성 신장질환으로 해독이 되지 않아 독소가 온 몸에 퍼진 상태였다. 더불어 간까지 손상되어 있었다. 이틀만에 어떻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안에서 이상한 걸 먹지 않았느냐고, 세재 풀어놓은 물 같은 걸 먹지는 않았느냐 물어오는데 달리 의심갈 만한 원인이 떠오르질 않았다. 당장 급한 건 원인보다 치료였고, 전신 마취후 카테터를 삽입했다. 병원에 리오를 맡긴 후 집으로 돌아와 바닥을 닦았다.
3일을 병원에서 보냈다. 카테터를 통해 소변을 빼내고 수액으로 수분과 영양분을 주입했지만 리오는 점점 더 쇠약해졌고 결국 퇴원을 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카테터를 자꾸만 빼려고 하는데 전신마취를 계속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치료를 감당하기에는 몸이 너무 약해져서 위험하다는 의견이었다. 또한 병원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으니 집에서 간병을 하는 게 최선이라는 말이 덧붙여졌다.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말처럼 들려 서운했고, 집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게 해 주자는 말처럼 들려 절망했다.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을 병원에 가 있던 3일 내내 들어온 상황이었다. 장기 손상의 정도가 심각했고 모든 수치가 사망하기 거의 직전이라는 설명 역시 3일 동안 들었으니 이런 해석도 무리가 아니었다.

리오는 집으로 돌아왔다. 뒷발은 아예 사용하지 못해 앞 다리 두개로 바닥을 기어다니는 상태였고, 하루가 지나자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런 몸으로 자꾸만 빨래 바구니 안으로 들어가려고 해 급히 강아지용 방석을 사와 거기에 몸을 뉘였다. 앞 발로 기는 것조차 못하는 상태가 되자 배변패드를 깔아주고 누운 채로 소변을 보게 했다. 다시 하루가 지나자 누워서 고개를 돌리는 것도 하지 못할 만큼 몸이 더 나빠졌다. 음식은 커녕 물도 마시지 못하게 되자 죽음이 문턱에 와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병원에 들러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일단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물과 음식을 먹여서 기력을 회복해야 치료든 뭐든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상태로는 수액 주사를 놓는 것도 불가능하니 무조건 먹이라며 환자용 영양캔을 쥐어줬다.
고개를 들지 못하니 음식을 알아서 먹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다. 수저로 떠 먹여보아도 먹질 않았다. 물도 마찬가지였다. 손바닥에 놓아줘도 먹질 않았는데 먹으려는 시늉은 보였다. 음식을 먹이기에도 도구보다는 손바닥이 더 편했다. 해서 사료를 손바닥에 펴바른 다음, 손을 핥아 먹게 했다. 얼음 찜질을 해주었는데 잠시 체온이 내려가면 손을 핥아 먹는 것도 좀 더 나아졌다. 음식과 물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고열이 문제였던 모양이었다. 젖은 수건을 얼린 다음 꺼내 온 몸을 감싸서 체온을 떨어트려주자 리오는 잠시 정신을 차렸고 그 때마다 물과 사료를 손에 발라서 핥아먹게 했다. 거의 일주일 정도를 이런 식으로 간병을 했다. 몇일이 지나자 앞 발로 기어다니는 게 가능해졌고, 일주일 정도 지나니 비틀거리기는 해도 뒷 다리로 서는 게 가능했다. 계단을 오르내리기까지는 한달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어쨌든 고양이는 살아났고 이후 6년을 더 살고 있다. 병원에서만 판매하는 비싼 사료를 먹으면서 말이다.

우리 사이가 이후 더 돈독해졌느냐면 그건 잘 모르겠다. 고양이가 그런 걸 아는 동물일까? 생명이니 죽음이니 간호니. 뭐 그런 건 인간에게도 어려운 개념이고 복잡한 감정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자기가 죽음에 얼마나 가까이 갔었는지, 그 때 내가 어느 정도로 걱정했는지 그런 걸 이 녀석이 어찌 알겠는가? 고양이 시각에서는 아플 때 내가 자기를 버리려 했다 생각할 수도 있다. 병원이라는 곳이 고양이에게 무엇으로 인식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치료를 위해 데려간 곳을 버리려고 데려갔다 해석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아프기 전이나 아프고 난 이후나. 고양이는 늘 내 옆에 있고 지금도 이 글을 쓰는 동안 무릎 위에 올라와서 그르릉 소리를 내며 앉아 있는 중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할 때면 책상 위에 올라와 서브모니터 아래에 들어가서는 몇 시간씩 내가 일하는 모양새를 지켜보다 그곳에서 잠이 들기도 한다. 밤이 되면 침대 위로 올라와 또아리를 틀고는 또 바싹 붙어서 잠을 잔다.
이런 행동들에 대해 나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도 싶지만, 비교를 위한 대조군 실험 같은 걸 해보지 않았으니 알 도리가 없다. 처음 보는 사람과 일주일 정도 지내게 되었을 때의 모습 같은 걸 본 적이 없으니까. 그 사람에게도 지금 내게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이 아이에게 내가 특별한 게 아닌거겠지.

얼마 전 '나혼자 산다'를 보는데 17살 된 반려견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집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그 강아지 역시 신장 쪽에 문제가 있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나이가 많으니 병이 문제가 아니어도 살 날이 많지 않다는 게 분명했다. 보면서 펑펑 울다가는 바로 옆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던 고양이를 끌어 안고 부비적거렸다. 왜 이리 귀찮게 하냐며 짜증을 내면서도 녀석은 몸을 내주고는 반쯤 깬 잠을 계속 이어잤다.
이 녀석이 벌써 12살이니. 헤어질 날이 멀지 않았다.
그 날은  또 그 날이 되어봐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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