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 카운터 시네마(counter-cinema)에 해당하는 영화들은 관객의 기대를 배신함으로써 영화의 형식을 전복하고, 헤게모니를 공격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영화 내부로 끌어들인다. [아임 낫 데어]에서 감독 토드 헤인즈는 '밥 딜런'의 일생을 차분히 따라가는 과거의 전기영화적 구조를 파괴함으로써 "영화를 통해 한 인물을 이해한다는 것의 상투성"을 폭로한다. 6명의 배우는 밥 딜런의 삶에서 중요한 전기가 되었던 몇 개의 장면과 일화를 서로 다른 얼굴로 연기하며 밥 딜런의 다면성과, 삶의 질곡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뒤따른 유동성을 표현한다. 이 영화는 밥 딜런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짐과 동시에 어떤 시도로도 한 인물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관객은 영화를 낯설게 바라봄으로써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밥 딜런을 먼 거리에서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해하도록 강요받으며 동시에 이해를 포기하고픈 욕구에 시달리게 된다.
이탈리아 작가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는 1926년 “라 피에라 레테라리아La fiera letteraria”라는 문학잡지에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이라는 작품을 발표한다. 당시 소제목은 ‘비탄젤로 모스카르다의 인간에 대한 일반적인, 그리고 인생에 대한 특별한 고찰’이었다.
20세기 전반, 세계는 물질문명의 가속화에 따른 부작용이 대두되고 있었다. 도시의 중력에 무력한 개인은 익명화에 기꺼이 동참함으로써 스스로를 타자화 했다. 피란델로는, 소설의 주인공인 '모스카르다'를 통해 현대인의 다면성과 소외를 표현하고자 한다. 주인공 '모스카르다'는 타인이 인식하는 자신과 실제의 자신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타인의 인식 속에 깃든 자신을 해체하기 위해, 그들이 기대하는 행동을 거부함으로써 타인이 정의한 자신의 상을 파괴하기로 결심한다. 또한 이를 위해 거울을 보고 있지 않은 자신을 거울을 통해 관찰하려 노력하는 광기에 사로잡힌다. 거울 속의 상과 거울을 바라보는 자신을 분리하려는 노력 끝에, 모르카르다는 점차 무의식의 상태로 나아가게 되고 자아를 분리하는 실험은 고통 속에서 실패를 거듭한다.
거울을 보고 있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려 하는 '모스카르다'의 모순된 행위는 분리된 자아를 찾아 떠도는 분열증적인 현대인의 특징을 상징화한 것이다. 소설을 통해 피란델로는 분열된 자아를 봉합하고자 노력하는 고통의 비극성을 역설한다. 그는 아무도 아니며,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이다. 그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형성된 자신, 즉 십만 개의 거울에 비친 상을 자신과 분리해냄으로써 순수한 자신을 발견하려 한다. 그 결과 그는 '아무도 아닌 존재'이자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다.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이라는 인물을 서로 다른 개인들을 통해 종합적으로, 그러나 불완전한 이미지로 이해하도록 한 영화이다. 우리는 밥 딜런을(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이해하는 것에서 끊임없는 실패를 거듭해왔다. 가수이자 시인이며 저항운동의 중심이었던 남자. 밥 딜런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여러 개의 얼굴과 역할을 부여받아야 했으며, 그 결과 '도상-icon'의 감옥에 갇혀 자유를 박탈당하고 만다. 그는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의 상을 비웃고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그 속으로 이주하는 삶을 살아간다. 예술가였던 밥 딜런에서 저항운동의 중심지로, 그리고 다시 저항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자신과 그런 의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세계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자신으로.. 6명의 배우는 밥 딜런을 닮았으나 결코 밥 딜런은 아닌7명을 연기함으로써, 그 7명 속에 깃들어 있는 '밥 딜런 적인 어떤 것'을 종합적으로 담아낸다. 영화의 인물들은 밥 딜런이지만 밥 딜런이 아니며, 때로는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존재였다가 모든 사람이 되는 모순의 변증법을 펼쳐보인다.
보여지는 대상으로서의 작품의 피사체적 성격은 내가 '나'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나'를 인식하는 것처럼 피사체로 귀결되는 필연성을 지닌다. 전시된 작품을 전시물이 아닌 존재로 인식해, 순수한 미적 태도로만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개인은 자신이 속한 범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 테두리 안에서 이해되고 결국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획득하게 된다. 현대 예술은 이러한 필연성을 더욱 극대화 하여, 수용자의 자유로운 해석과 출입을 허용하는 동시에 일정한 방향성 안에서 이를 제한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해왔다. 작품은 단독자로서 완료된 개체이나 동시에 이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주체들과의 만남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는 불완전한 존재이기도 하다.
랭보는 '나는 타인이다'를 선언하였고, 영화는 타인조차 아닌, 그래서 아무도 아니면서 모두인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I-He-I'm-Her-Not Here-I'm not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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