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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지.아이.조-전쟁의 서막 : 참 못났다

by 늙은소 2010. 2. 12.








지.아이.조-전쟁의 서막(2009)


감독 : 스티븐 소머즈
출연 : 채닝 테이텀, 데니스 퀘이드, 시에나 밀러, 이병헌

* 첨부한 이미지는 영화 리뷰를 위한 것으로, 권리는 제작사에 있습니다.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영화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냐면 그의 영화에 단골 출연 하는 배우, '브렌든 프레이저'가 나온 영화도 보지 않게 되었을 정도. 그럼에도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을 한 번 봐야겠다 싶었던 것은 이 영화의 원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쟁쟁한 코믹스 경쟁에서 살아남은 작품이라면 내면에 부딪혀 고유한 흔적을 남길 만큼의 유일성을 갖추고 있겠거니. 아! 그러나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은 감독의 이름에 맞는, 참으로 못 만든 영화다.

기이한 것은 영화가 적과 아군을 강조하면 할수록 '아군'이라는 이미지는 힘을 잃고, 양측이 오히려 닮아 보인다는 점이다. 이들은 마치 몸에 두른 신형 무기를 과시할만한 핑계가 필요했던 사람들처럼 상대편에서 싸움을 건다. 지.아이.조 군단에 합류하는 듀크의 결정에도 명분은 희박하다. 지.아이.조는 국가나 법률, 군율을 초월해 마음껏 싸우고 때려 부수기를 바라던 이들이 모인 집단에 가깝다. 그 때문에 코브라 군단과의 전쟁은 숭고함을 기대하기 어렵고, 남의 휴유지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싸우는 동네 애들 바라보듯 '누가 이기든 알게 뭐냐'는 생각만 떠오른다.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독특함을 찾는다면, 코브라군단의 조직구조와 범죄에 사용된 나노마이트라는 무기에 대한 해석을 들 수 있다.


코브라군단의 수장은 무기 생산 업체인 'MARS'의 대표 멕켈런(데스트로)이다. 이런 류의 영화에서 보통 악당은 그 수장이 절대 권력을 행사한다. 악의 조직은 군대보다 더 엄격한 상명하복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부하의 목숨은 가차없이 제거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코브라군단의 권력은 분립되어 있으며, 멕켈런은 이들을 제어할 장치하나 마련하지 않은 채 전쟁에 뛰어든다. 코브라군단의 권력분립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어서 삼권도 아닌, 한 오권분립 정도는 되지 않나 싶다. 멕켈런은 대외 활동과 자금을 책임지고 있으며, '더 닥터'는 기술과 하위 계급의 병력을 조종할 수 있다. 자탄은 그 배경이 나오지 않아 알 수 없으나, 그들의 계획이 성공할 경우 미 대통령 행세를 하게 되니 당연히 누군가 그를 통제해야 마땅한데 어느 누구 하나 그를 조종할 방책이 없는 상황. (자탄이 코브라군단을 배신하고 독자 노선을 걸을 경우에 대한 대비가 이렇게 없어서야..) 스톰 쉐도우(이병헌)와 배로니스(시에나 밀러) 역시 통제 불가능하긴 마찬가지.- 영화 후반까지 맥켈런은 이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 화상통화만으로 소통한다. 그는 부하들에게 직접적으로 힘을 행사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로인해 코브라군단은 오히려 흥미로워졌다. 명령이기 때문에, 죽지 않기 위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독자적 판단에 의해 행동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에펠탑 공격이 벌어지는 파리 시가전의 경우에도, 막는 자보다 공격하는 자의 움직임이 더 절박하다. 폭발한 차 속에서 기어나온 스톰 쉐도우와 배로니스는 그 길로 달려가 공격을 지속한다. 이름의 움직임에는,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지려는 자가 보여줄 수 있는 집요함이 있다. 그러니 특이하다고 할 밖에.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나노마이트'라는 무기와 철가면이다. 나노마이트는 금속을 먹어치우도록 프로그래밍 된 작은 로봇으로 이루어진 무기다. 멕켈런의 가문은 이미 400년 전부터 무기거래를 해왔으며, 그로 인해 그의 선조는 철가면 형을 살아야 했다. 멕켈런은 그 가면을 가보로 여기지만 한편으로는 금속을 사라지게 하는 무기를 개발해왔으니, 참으로 모순되지 않은가. 더구나 영화 마지막에 이르면 '더 닥터'와 맥켈런은 철가면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자신의 공격 무기가 바로 자신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될 판. 사정이 이러하니, 국가를 초월한 지.아이.조에 비해 코브라 군단에게 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토록 모순 투성이의, 어리석은 악당들을 봤나. 못났다. 참 못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