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선형적 사유

신화, 동화, 영화에서의 식인문화

by 늙은소 2004. 6. 17.

우리 엄마는 나를 죽였고,
우리 아빠는 나를 먹었네.
누이동생 마를렌은 내 뼈를 빠짐없이 추스려
곱디고운 비단으로 싸 향나무 밑에 두었네.
짹짹 짹짹!
나처럼 예쁜 새가 또 어디 있을까!

- 독일 동화 '향나무' 중 일부


문명인을 자임해온 우리는 식인행위를 '원시', '미개'라는 용어와 연관지어 생각한다. 그러나 식인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나, 중국의 한韓대, 히틀러의 침공을 막아내었던 레닌그라드에서도 발견된다. 서구의 기록은 식민지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남미나 아프리카의 원주민을 최대한 야만적으로 묘사한다. 아즈텍문명에서 자행된 식인 행위에 대한 서구인들의 기록은 '단테'가 지옥을 묘사한 것과 유사하다. 원주민들은 성경 속의 악마와 동일시되었고, 식민지화 과정과 원주민 학살은 선교사와 군인들에게 매우 훌륭한 명분을 제공했다.


식인행위에 대한 분류


식인 행위는 이를 금지하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경우와, 수용하는 문화권에서 일어나는 경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또한 인육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와 식용으로 취급하는 것을 다르게 보아야 한다.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식인이 금지된 사회 / 고기로서의 인육
나일강이 범람하지 않았던 1200년경 이집트에서는 300만 명이 사망했으며, 오랜 기근으로 인해 대규모 식인행위가 행해졌다. 마찬가지로 1631년 인도의 대기근, 2차대전 중의 레닌그라드에서 조직적이며 집단적인 식인 행위가 있었음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 외에도 사고나 조난, 난파된 배 등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인 행위가 있었음이 보고된다.

2. 식인이 금지된 사회 / 상징으로서의 인육
이 경우, 정신질환자나 연쇄살인범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디즘의 한 형태거나, 살인의 완성을 위해 식인을 행하는 범죄자들이 종종 등장한다. 이들은 상대방을 보다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혹은 완전한 죽음을 목적으로 상대방의 인육을 취한다. 이 때, 인육은 고기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3. 식인이 허용된 사회 / 고기로서의 인육
이들에게는 동물과 인간, 고기와 인육에 대한 구별관념이 없다. 에코이스족은 시장에서 인육을 공개적으로 매매한다. 이들에게 희생자에 대한 동정심을 느끼는가 질문하면 오히려 놀라워하며 답한다. '이건 고기인데요?'

4. 식인이 허용된 사회 / 상징으로서의 인육
종교적 제사나 국가적 행사의 일부로 식인을 행하는 문화권에서는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전쟁에서 사로잡은 포로를 죽여 심장을 먹거나, 존경하는 부족의 어른이나 힘센 영웅과 일체화하기 위해 그들을 나누어 먹기도 한다. 이들에게 인육은 고기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그러한 이유로 어느 부위를 누가 먹는가, 식인 행위 전후 어떤 행사를 하는가 등을 중요하게 살펴봐야 한다.

법적으로 식인행위에 대한 판결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이루어졌는가의 문제와, 이미 죽은 사람을 먹은 것인가 혹은 먹기 위해 살인을 한 것인가를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자신의 생명유지와 무관하게 식인 행위를 금지하는 사회에서 자행된 살인은 일반적인 살인보다 더 무거운 형을 받는데, 사체유기죄와 함께 '금기의 파기'가 부가되는 까닭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 윤리적 평가에 있어서 위의 4가지 분류 중 2번과 3번의 경우 가장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우리는 자신의 생명을 보장받기 위해 타인의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회적 제약 속에서 살아간다. 식인은 곧 살인이며, 사회적 계약의 파기를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식인종'이라는 이유로 아메리카 원주민을 죽였고, 많은 범죄자를 사형대에 세우는 한편 핵무기와 독가스를 개발한다. 과연 우리는 살인을 하지 않는다는 계약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살인하고자 하는 욕망을 잠재우기 위해 전쟁을 하며, 연쇄 살인범이 등장하는 영화를 끊임없이 생산하지는 않는가?


신화 속의 식인

Hesiod의 신편기에 의하면 카오스에서 태어난 가이아가 낳은 우라노스는 가이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자식들을 가둔다. 가이아는 그 중 크로노스를 빼돌렸고, 그는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한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1세대 신의 왕으로 등장하며,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자식들을 모두 태어나자마자 잡아먹는다. 아내인 레아는 제우스를 낳자마자 커다란 바위를 제우스 대신 크로노스에게 주었고, 제우스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제우스는 성장하여 자신의 아버지를 속여 형제들을 구해내는데, 이들이 바로 헤라, 데메테르, 하데스, 헤스티아, 포세이돈이다.

크로노스가 집어삼킨 아이들은 육체적 생명을 잃지 않는다. 단지 사회적 생명이 정지한 것일 뿐이다. 아버지의 입을 통해 토해졌을 때 이들은 사회적 생명을 얻으며 또 한 번의 탄생을 경험한다. 어머니인 레아가 생물학적 생명을 주었다면 크로노스는 입을 통해 사회적 생명을 제공한다.

신화 속에서 '죽음'은 종종 '생명'과 연결된다. 많은 창세신화에서 죽은 자의 피와 살은 새로운 생명으로 탈바꿈한다. 이것은 시신을 땅에 뭍어, 그로 하여금 생명의 토대인 흙이 되도록 하는 매장품습과 연결된다. 이처럼 부모의 죽음이 자식들의 생명의 원천이 되는 신화는 바빌로니아나 그리스 외에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렇다면 식인은 출산과 어떻게 연결될까?

대부분의 신화나 전설, 동화 속에서 '식인신', '식인괴물'은 자신의 자식이나, 어린아이, 혹은 임신이 가능한 처녀를 그 대상으로 삼는다. 특히 동화 속에 등장하는 식인괴물은 대체로 거인으로 어린 시절 우리가 고개를 높이 쳐들고 올려다보았던 아버지를 의미한다. 아버지들(식인거인)은 다음 세대를 집어삼킴으로써 자신들의 현세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크로노스나 우라노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모두 자신의 아들에 의해 생명과 왕위를 빼앗기리라는 예언을 듣고 자식을 제거하려한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은 모두 좌절한다. 다름 세대로의 권력 이양을 거부하는 것은 미래를 소멸시키는 행위이며, 이는 시간의 본질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생물학적 생명과 사회적 생명을 제공할 의무가 있으며, 자녀들은 현재를 지배하는 부모세대를 극복함으로써 미래를 자신의 시간으로 만들어간다.


동화 속의 식인

식인을 소재로 한 동화는 주인공과 식인괴물의 성별에 따라 전혀 다른 구조를 보인다. 보통 남성 식인괴물은 몸집이 큰 거인으로 아둔하며 영리한 소년을 만나 죽임을 당한다. 영국의 '거인사냥꾼 잭' 시리즈나, 노르웨이의 '부츠와 거인괴물', 아일랜드의 '아일랜드 왕의 13번째 아들', 일본의 '모모타로' 등이 여기 속한다.

이야기들은 공통적으로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식인괴물로 알려진 이 거인들은 당연히 죽어 마땅한 괴물로 설정될 뿐이다. 영리한 소년들은 식인괴물보다 더 잔인한 방법으로 그를 죽이곤 하는데, 거짓말과 속임수, 잔인한 살인방법 등이 모두 주인공이기 때문에 정당화된다. (자기 배를 가르거나, 딸을 양고긴 줄 알고 먹는 불쌍한 식인괴물들이 매우 많음)

동화는 무엇이 선인가보다, 누가 어린아이인가를 더 중요하게 다룬다. 이러한 동화는 살인이나 거짓말에 대한 가치판단보다는, 강인한 생명력과 재치를 가르치고자 한다. 잦은 기근과 전쟁, 영주와 귀족들에 의한 수탈로 황폐해진 농가에서는 아이들을 먹여 살릴 여력이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아이들에게는 영리함, 혹은 교활함이 필요했다. 거인을 물리치는 소년들은 대부분 평범한 농가의 아이들로 설정된다. 이러한 동화는 왕자가 용을 물리치는 내용의 기사문학에 도전한다. 동화는 가문이나 힘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지배받는 약자가 기득권인 강자에게 대항하는 '시민혁명의 꿈'을 그리고 있다.

'거인과 소년'구도와 달리 식인을 하는 여자가 등장하는 동화에는 소녀가 함께 나온다. 여자식인괴물은 일반인과 구분할 수 없는 외모에 뛰어난 머리를 지녔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머리가 좋으며, 살인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 묘사된다. 앞서 '거인'이 '식인을 허용하는 사회 / 고기로서의 인육'에 해당한다면 '마녀'는 '식인을 금지하는 사회 / 상징으로서의 인육'에 해당한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차이로 ‘거인’이 식인의 범주 중 가장 죄가 가벼운 유형에 속하는 것과 달리 ‘마녀’는 가장 무거운 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녀'의 이미지로 등장하는 여자식인괴물은 사회적 금기를 깼다는 이유로 그 죄가 더 가중되며, 일반인과 구분할 수 없는 외모와 뛰어나 두뇌회전으로 인해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독일의 '백설공주'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삭제되기 이전판)', '향나무' 등이 이에 해당하며 '신데렐라'나 '라푼젤' 등은 이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마녀들은 보통 외지에서 현 체제로 편입해 들어온 이방인으로 새어머니나 왕비의 신분을 획득한다. 주인공인 소녀는 귀족이거나 공주가 대부분이며, 자신의 힘이 아닌 타인의 힘을 빌어 구원된다. 계모인 식인마녀는 '이민족'과 ‘신흥세력’에 대한 경계와 연결된다. 혈연집단에 침범한 이 새로운 여자는 음모를 통해 가족의 재산과 생명을 가로챈다. 그러나 이것은 거인의 재산을 빼앗고 거인과 그 가족을 죽이는 소년들의 행위와 다르지 않다. '거인과 소년' 구조는 기득권에 대한 대항이었으나, '마녀와 소녀'는 현체제를 전복하려는 테러분자로 취급된다. 이러한 차이는 '거인과 소년' 구조가 영국, 미국 등 일찍 시민사회로 전환한 지역에서 발달했으며, '마녀와 소녀' 구조가 독일, 동유럽 등에서 발달한 것에서 답을 구할 수 있다. ‘소녀와 마녀'구조의 동화는 보수계층을 대변하며, 신층 세력이 귀족층을 위협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다.



영화 속의 식인

요즘의 영화는 식인 원주민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연쇄살인범, 정신이상자를 다룬 영화들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식인종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존재가 되었다. 최근의 영화들은 관객의 몰입을 위해 공포의 현장을 도시 한가운데로 옮겨온다. 현대의 공포물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거리를 얼마나 좁히는가에 중점을 둔다. 이러한 이유로 공포영화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며, 주 고객층인 1,20대를 피해자로 삼는다.

여기에 새로운 식인종이 등장했다. 이들은 도시에서 우리를 위협하며, 본능에 따라 식인을 행한다. '늑대인간'과 '흡혈귀', '외계인'으로 변화한 새로운 식인종들은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인육을 취한다.

우리가 이들에게서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이들과는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이들에게 식인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며,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영화는 경쟁 속에 살아가는 현대 도시민들의 정신적 압박감을 드러낸다. 특히 80년대 이후 괴물의 형태로 인조인간이나 컴퓨터와 같은 기계가 등장하면서, 기계에 의해 육체가 아닌 인간성, 영혼이 잠식당하는 것을 암시하는 영화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제 식인괴물은 보다 복잡한 사회의 단면을 암시하게 되었다.

'비선형적 사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에 관한 글  (0) 2004.06.19
그리운 김박사  (0) 2004.06.18
스타크래프트의 세계  (2) 2004.06.17
세이클럽의 숨은 전략  (1) 2004.06.17
경계짓기의 어려움  (0) 2004.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