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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575세대의 문화 흡수법

by 늙은소 2004. 8. 11.

평소 알고 지내던 z의 권유로 모 계간지에 짧은 글을 하나 쓰게 되었다. 대중을 위한 친절함을 계획하지 않는 출판사에서 내고 있는 이 계간지는, 찍을 때마다 기백만원 손해를 감수하고 있었다. 

책이 나왔으니 다른 필자들과 함께 조촐한 식사를 하는게 어떻겠냐는 말을 거절하지 못해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러나 생각한 것보다 엄한 분위기에 놀라 입구에서 주춤하고 말았다. 나를 끌어들인 z의 인간관계가 드러나는 그 자리엔 특정 대학(비록 나 또한 그 곳에 속하긴 하지만)출신의 인맥과 그 대학의 각 분야 교수진, 그리고 z가 유학하며 알게 된 인맥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나보다 20살이 많은 z와 비슷한 연배, 즉 50대 전후반의 각계 교수진이 둘러앉아 있던 것. 

책 이야기를 잠시 하는가 싶더니 결국 한 명이 자리를 주도하기 시작한다. 그는 모임을 이끌어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유형인 듯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 방어적 자세로 한 시간 넘게 홀로 떠드는 그를 다른 이들은 문제시하지 않는다. 그가 말을 마무리 지을 때마다 주변에서는 질문을 던져주고, 그는 또 다시 길고도 뻔한 이야기를 자랑스레 늘어놓는다. 내가 이상한 건지, 그들이 이상한 건지.. 이 어색하고 재미 없고 따분한 대화를 왜 저들은 저토록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는지.. 

이런 생각을 해본다. 석박사 과정을 거쳐 교수가 되기까지 저들이 훈련받은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노교수가 자신의 이야기를 쉬임 없이 읊어댈 수 있도록 옆에서 맞장구치고 적당하게 질문해주는 것 말이다. 노교수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나 견해 따위는 들어가지 않는.. 지극히 답하기 쉬운 질문을 던져대는 역할을 그들은 묵묵히 해온 게 아닐까? 나로선 석,박사 과정을 밟아본 일도 없고, 노교수를 상대해본 일이 없다보니.. 그 분위기가 어색하고 불편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

문화예술에 관한 여러 분야의 시선을 모으겠다는 그 모임은 대단히 흥미로운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구조적으로 갖췄음에도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참여자들이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은 가지고 있으나, 애착은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들은 이미 노회하기 시작한 50대이다. 50년대에 태어나 60년대에 10대를 보내고, 7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그들의 젊음에 예술은 사치이고 지나치게 거리가 먼 것들이었으리라. 그런 이들이 학문을 파고들어 명문대 대학교수가 되었고 자녀들은 이미 20대가 되어 일찌감치 유학을 가 있거나 명문대에 진학해 있는 상태였다. 이제 그들에게는 더 이상 쟁취할 것이 없다. 그야말로 예술을 즐겨야 할 때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예술활동은 예술을 영위하는 것이 아닌, 예술가와 친분을 쌓는 것으로 시작된다. 성악가와 식사를 하고, 작곡가가 포함된 모임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은 예술을 학습하려 한다. 50대는 친분과 인맥을 자신의 성공 지표로 여기며, 중요 홍보수단으로 삼는다.

386/486 만 해도 80년대를 즐기며 살아온 세대이다. 방송에서는 마이클잭슨의 뮤직비디오를 틀어주었고, 아시안게임이니 올림픽이니 몇 년 전부터 떠든 탓에 세계속의 한국을 읊어댄 통에 덩달아 대중문화의 홍수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50대는 다르다. 이들에게 예술은 낯설고 어려운 것이다. 학자인 그들은 낯설음과 어려움을 학습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버텨낸다. 계간지에 실린 그들의 글은 빈틈을 허용치 않는, 제법 뭔가 있어보이는 풍미를 자아낸다. 그러나 실제 만난 자리에서 그들은 대중문화와 예술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참으로, 정말로, 안타깝게도.. 그들은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분야에 어느 정도 일가를 이루었다는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타 분야에 대해 관대해지지 못하는 치명적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에 있었다. 음악에서의 건축적 구조가 이야기되면 옆에 앉은 건축과 교수는 음대 교수의 건축적 용어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불문학 교수가 미술 이야기를 할 땐 미대 교수가 미술사를 잘못 기억한다며 불문학 교수를 탓한다. 넘나듦이 치열한 논쟁이 아닌, 이런 식의 지엽적인 것들로 장애를 겪어서야..

이렇게 다양한 분야 사람들, 그것도 교수들이 모여있다는 사실에 자못 도취된 듯한 이들을 보고있자니.. 인맥을 권력으로 여기는 50대의 모습을 보는 듯 해 씁쓸해진다. 문화, 예술을 논한다는 그 자리는 이제 나도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는.. 다분히 의식적인 행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