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형적 사유2004.07.25 20:49

1. 서론 : Molecular Machines의 역사와 현재


5년 전인 1999년 MIT Media Lab.을 찾았을 때 내가 주목한 연구실은 Electronic Ink를 연구 중이었던 'Moving Ink'라는 이름의 페이지였다. 당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었으나 결과물은 실용단계에 이르기에는 부족해보였다. 다시 찾은 연구실 목록에서 동일한 연구실명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연구가 실패했거나, 실용화하기에 부족하다는 판단 하에 연기된 것은 아닌지걱정이 앞섰다. 다시 찾은 연구실 이름은 'Molecular Machines'로 바뀌어 있었으며 연구 내용이나 목표 또한 이전과 다른 것이었다. 낯선 용어와 페이지 앞에서 당황하며 내가 찾지 않은 5년간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 추적하였다.


'Molecular Machines'의 전신인 'Moving Ink(E-ink)' 연구실은 Joseph M. Jacobson(이하 야콥슨)과 Barret Comiskey(이하 코미스키) 주도하에 전하를 띤 초소형 잉크를 개발하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은 종이에 인쇄된 인쇄물이 고정적이지 않고 특정한 신호에 반응하여 바뀔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고, 그에 따라 전기 신호에 반응하는 잉크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연구실의 이름과 연구내용이 바뀐 것은 E-ink가 실용화될 수 있을 정도로 연구가 진척되었기 때문이며, 지금 필요한 것은 보다 저렴한 가격에 생산, 응용할 수 있는 보조 장비연구가 필요해진 까닭이었다. 현재 E-ink 핵심 연구는 연구를 주도했던 코미스키와 야콥슨이 세운 회사에서 진행 중이며, 보완연구가 'Molecular Machines'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Molecular Machines'의 연구만 살펴본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E-ink과 E-paper, 전자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구 내용과, 상용화 단계, 미래의 전망 등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전신 연구실이었던 E-ink Lab.과 연구를 진행했던 두 사람이 세운 회사 E-ink 사, 이들이 발표한 논문 등을 살펴봄으로써 E-ink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2. The Last Book1) : 책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Electronic Ink(이하 e-ink)에 대한 개념과 개발목적 등은 야콥슨과 코미스키의 초기 논문에서 더 잘 드러난다. 1997년 IBM System Journal에 실린 'the last book'을 살펴보면 문제의식의 출발점을 명확히 알 수 있다. e-ink의 개발은 컴퓨터 디스플레이 화면이 가지는 물리적 한계성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가에서 출발한다.


당시 컴퓨터 화면은 브라운관의 형태에서 TFT LCD로 전환하고 있었다. 좀 더 얇고 선명한 고화질 화면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물론 계속되고 있다. 미래형 책은 기존의 책과 유사한 크기와 무게의 소형 컴퓨터에 수백 권, 혹은 수만 권의 책을 담고 다니며 이를 페이지마다 불러와 읽는 방식으로만 예상되고 있었다. 이는 5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인터넷상에서 책을 페이지별로 불러와 읽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의 미래형 책의 이미지이다. 이들의 질문은 이 곳에서 시작된다. 컴퓨터 화면이 실제의 책을 그대로 재현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책을 대신할 수 있는가?2)


인간의 두뇌는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재조직화 하여 사고하는 방식에 있어서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진화해왔다. 그 방향을 부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책이다. 인간은 자신이 아직 읽지 않은 페이지들을 훑어보는 과정에서도 핵심 키워드를 뽑아내고 책 한 권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이 흡수한 추상적 정보들을 공간에 재배치함으로써 기억하고 이를 새롭게 연결시키는 사고능력을 발달시켜왔다. 책의 물리적 특성과 촉각적 성질 등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자신이 관심을 두고 다시 읽고 싶은 글을 표시해 두거나, 연상된 생각 등을 간단하게 기록하는 것과 같은 방식의 다양한 소통은 책과 독자 간의 상호연결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며, 사고를 확장시키는 핵심적 도구이다.3) 컴퓨터 화면 상에서의 인터페이스는 개발 가능성이 열려있으나 개개인의 특수성을 모두 만족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줄을 긋는 방식, 행간이나 페이지의 여백에 이루어지던 메모, 각종 표시 등 책과 소통하는 일련의 방식은 일정 정도의 제한과 한계 속에서 몇 가지 선택으로 압축될 것이다. 사고의 다양성과 창조적 두뇌활동은 보다 자유로운 공간과 표현법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미래형 정보 디스플레이를 보다 얇고 가벼운 TFT LCD를 지향하는 기술에 맡겨둘 수는 없다. 그렇다면 기존의 책이 가진 물리적 장점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책 한 권이 담아낼 수 있는 정보의 양을 확장하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책은 단 한권으로 해당 잡지의 모든 과월호와 앞으로 나올 모든 신간을 담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3. Electronic Ink : 연구내용


연구 초기 단계에 이들이 개발하려고 한 구체적인 결과물은 Electronic Book(이하 전자책) 이었다. 전자책은 백여 장의 Electronic Paper(이하 e-paper)들로 이루어진다. e-paper는 종이처럼 얇고 가벼우며, 비슷한 물성을 지닌다. 각각의 종이는 접착제로 제본된 기존의 책과 달리 회로와 전기장치들로 이루어진 spine4)에 연결된다. 독립된 개체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책은 책의 옆면 표지에 제목과 저자, 출판사 등의 identity 요소를 담는다. 그러나 이제 어떤 책으로도 변할 수 있는 e-book의 spine은 사용자가 선택한 책의 제목을 디스플레이 하는 화면과 몇 개의 작동 버튼들로 이루어진다. 사용자는 이 책의 잠재적인 목록들을 불러와 선택하고, 각각의 페이지는 제목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뒤바뀐다. e-paper는 대뇌 역할을 담당하는 spine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도구로써의 역할을 수행해야한다.


당시 컴퓨터의 본체에 해당하는 spine은 초소형 컴퓨터나 휴대용 PDA 기술의 발달로 실현단계에 와 있었다. e-book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은 종이와 같은 물리적 성질과 두께, 무게 등을 지니면서 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이를 일정한 명령에 따라 전환시킬 수 있는 e-paper에 있으며 E-paper는 전기 신호에 반응하는 e-ink의 연구가 성공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그림 1) e-ink가 전자신호에 의해 반응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 - http://www.eink.com

e-paper는 전기 신호에 의해 반응하는 초소형 e-ink들이 촘촘히 박힌 합성물질로 만들어진다. e-ink는 일반적인 모니터가 해당 정보를 화면에 출력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정보를 표현해낸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구성된 하나의 e-ink는 주어진 신호(-/+)에 따라 회전한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반전하며 개별 잉크가 자신의 색을 드러내면 경기장의 카드섹션과 같은 방식으로 글자가 e-paper에 새겨지듯 나타난다.5)(그림1)


e-ink는 종이의 물리적 장점을 지닌다는 것 외에도 전기사용량에 있어서도 다른 디스플레이 방식을 능가한다. 끊임없이 빛을 내보내야하는 보통의 화면들과 달리 e-ink는 전기 신호에 의해 잉크가 회전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전기 소모가 적다. 노트북이나 PDA와 같은 형태의 미래형 책은 다량의 전기를 필요로 한다. e-ink는 처음 전기가 공급되어 스위치가 켜지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잉크가 신호를 받아 재 반응하는 것에는 극소한 전기를 필요로 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한번 재현된 이미지는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도 지속성이 보장된다. 결국 책 하나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 양이 낮기 때문에 책 한 권, 혹은 여러 권을 읽는 도중 전원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림 2) e-ink로 이루어진 e-paper가 재편한 인쇄물의 모습

출처 - http://www.media.mit.edu/molecular/index.html

4. Mulecular Machines : 실현 가능성과 인접 연구의 필요성


현재 molecular machines 연구실은 몇 개의 인접 연구를 진행 중이다. e-book, 혹은 e-paper를 구상하면서 시작된 연구는 electronic micro-encapsulation ink 개발을 핵심으로 하여 여러 인접 기술에의 연구로 변화되어 왔다. 핵심사항인 e-ink는 초소형 캡슐 하나에 전자신호에 반응하는 흑백의 잉크 두 개를 담는 기술이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각각의 e-ink가 전기신호에 반응할 수 있도록 모든 e-ink에 신호를 보내는 기술이나, spine의 정보가 e-paper의 전달되기까지의 회로 설계는 나노 기술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다.6) 종이와 유사한 유연성과 탄성 등을 지닌 얇은 플라스틱을 개발하고 거기에 e-ink를 코팅하는 기술 또한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연구를 필요로 한다. 지금 molecular machines 연구실은 이러한 세부 연구가 진행 중이며, 그림과 같은 고해상도의 명암 대비가 뚜렷한 결과물을 발표하고 있다.(그림 2)

그러나 나노기술을 기반으로 한 인접 연구의 진행은 이를 상업화 하는 단계에 있어 경제적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섭씨 1000도 이상의 고온인 상태에서 실현이 가능한 지금의 e-ink 기술을 보다 낮은 온도에서 쉽게 생산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했고, 현재 molecular machines 연구실은 이를 위해 e-ink를 보다 경제적으로 인쇄하는 방식과 컬러재현, 비디오 매체를 재현할 수 있도록 변환 속도를 빠르게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7)


최근 일본의 소니사에서는 E-ink 사와 협력하여 전자책을 시판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험적인 제품이며 초기에 촘스키와 야콥슨이 연구를 시작하며 생각한 전자책(The Last Book)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제품이었다. 얇은 종이를 넘기는 것 같은 질감이나 사용감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이 직접 그 위에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도 불가능한, PDA에 가까운 화면과 두께인 까닭이다. 이것은 디스플레이의 한 가능성 정도로만 지금 취급되고 있다. 그것은 E-ink의 상업화에는 성공했으나 이것을 사용한 E-paper 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까닭이다. 얇은 종이와 같은 판에 E-ink가 박힌 물질을 개발하기 위해 지금 Molecular Machines 연구실이 존재하는 것이다. E-ink 기술이 상업화에 성공했다고 하여 연구가 끝난 것은 아니며,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전자종이 : 유사 연구의 진행상황과 E-ink의 경쟁력


전하를 띈 잉크를 이용해 동적 재현이 가능한 전자종이8)를 개발하려는 시도는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제록스(Xerox)사는 전하가 충전된 반구형 회전구를 이용해 유연성이 있는 플라스틱이나 금속, 종이 등 다양한 기판에 인쇄하는 기술을 연구 중에 있었다. 현재 Xerox사에서 분리, 설립된 Gyricon사는 Gyricon9)이라는 이름의 디스플레이방식을 연구 중에 있다. 전자종이에 대한 연구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개별 진행되었는데 그 중 E-ink사의 마이크로캡슐 전기영동법과 Kent사의 콜레스테롤 액정방식10)이 현재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다.


전자종이 상업화에 있어서 가장 선두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MIT Medea Lab.에서 개발이 시작된 ‘e-ink’이다. 이 기술은 현재 E-ink사 외에도 IBM, TDK., 캐논 등에서도 개발 중인데 가볍고 얇은데다 종이처럼 구부리거나 접고, 휠 수 있다는 물리적 특성을 지닌다. 또한 전압을 조절하면 흑/백 외에도 회색조의 다양한 스케일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슷한 방식의 전기영동법을 이용한 캐논사의 연구 결과물은 안정성은 떨어지나 컬러표현과 해상도가 우수하다는 평가이다.11)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전자종이, 전자잉크와 같은 미래형 디스플레이 방식은 인쇄기술의 향상에서 출발하거나 보다 가볍고 얇아 잘 휘어지는 모니터를 개발하려는 두 개의 축에서 시작하여 하나를 향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연구 중인 전자종이는 여러 기준들에 의해 상업성과 발전 가능성을 평가받는데, 그 기준으로는 ‘재현범위, 속도, 비용, 안정성, 편리함, 전력소모, 물리적 특성’ 등이 있다.


재현범위 : 컬러 표현이 가능한가, 해상도, 가시계의 범위 정도

속도 : 동영상을 처리할 수 있는 재현속도를 가지는가

비용 : 제작이 용이한가, 제작비용과 이를 판매했을 때 시장성은 어떠한가

안정성 : 이미지 지속시간과 반복 실험을 통한 안정성

편리함 : 두께와 무게 등

전력소모량 : 초기 필요 전력과 이미지 유지 전력

물리적 특성 : 휘거나 접을 수 있는가


이러한 기준들에 맞춰 평가했을 때, 현재 가장 우위에 있는 것이 E-ink이다.

그림 3) 소니사과 E-ink 사와 협력하여 개발한 e-book 모델



6. 현재 도입 정도와 미래에의 예측


Economist 2000년 12월호에 의하면 대형 유통마켓의 내부 알림용지에 시범적으로 전자종이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책의 형태에까지 개발이 진행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이나 분절된 간격에 따라 순차적인 영상을 재현하는 전자종이는 옥, 내외 전광판이나 간판, 각종 싸인과 현수막 등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현재 관심대상이 되는 것은 e-paper나 e-ink의 개발현황과 시장성에 있지 않다. 이미 비슷하면서도 다른 형태의 전자종이와 박막 디스플레이 액정 등이 상업화를 목적으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현재 삼성 등 국내 기업들 역시 미래형 디스플레이 기술에 뛰어들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이 우리의 일상생활의 전 범위에 도입되었을 때의 미래를 구체화시키고 그 환경 속에서 필요로 하는 응용기술의 범위를 예측하는 것과, 변화된 환경이 인류에게 어떠한 패러다임을 요구하게 될 것인가를 예견하는 것이다.


그림 4) 다이어리에 끼워 사용하는 종이형 시계(직접 디자인)

필렙 K. 딕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에는 쫓기는 엔더튼이 지하철에서 자신에 관한 수배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의 신문과 동일한 편집으로 구성된 신문은 그가 포위망을 뚫고 탈주하는 동영상을 제공함으로써 S/F 장르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그러나 이 장면은 Fiction이기보다는 이제 곧 실현될 미래를 예언하는 것에 더 가깝다. e-ink, 혹은 그와 유사한 방식의 미래형 디스플레이 방식들은 저렴하면서도 안정적이고 다양한 소재를 통해 변화하는 영상을 제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 나의 책상 위에 놓인 물컵에 장식된 장미꽃 한 송이는 마시고 있는 물의 양에 따라 꽃봉오리에서 만개한 장미로 변화되는 영상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얇은 종이에 그려진 듯 보이는 시계(그림 4)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재의 정확한 시각을 변화하는 글자나 그림으로 표현할 것이다.11) 아이들은 무지개 색으로 변하는 종이로 종이학을 접을 것이다.12)(그림 5) 이제는 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제까지 존재한다고 믿어온 세계와 환경이 변화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지금 모든 정적이던 것이 예측 불가능한 변화의 가능태를 잉태한 존재로 여겨진다. 거대한 흐름 앞에 놀란 걸음을 멈추기 위해 그 시대에 필요로 할 몇 가지 작은 물건을 구상해보도록 한다.

그림 5) 겁을 수 있는 시계의 기초 시안(직접 디자인)

*Electronic Pen (직접 디자인)


e-ink를 기반으로 한 e-paper가 다른 액정 기술에 비해 뛰어난 또 한 가지 장점은 사용자가 interactive한 방법으로 e-paper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을 기반으로 개발될 새로운 도구에 대한 가능성은 코미스키의 저널에 언급되고 있으나 현재까지 구체적인 연구가 진척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e-paper가 상용화된다면 바로 뒤따라야할 개발 분야 중 하나가 electronic pen(이하 e-pen)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e-pen은 전하를 띈 e-ink에 새로운 전기자극을 주어 부분적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지점의 잉크를 조절하는 방식의 펜이다.13) 이 장치는 실제로 펜이 잉크를 분사하는 것이 아니라, 잉크입자로 이루어진 e-paper를 부분 조작하는 방식이다. e-pen은 e-paper의 전하를 바꾸는 기능을 핵심으로 하기 때문에 e-paper와 전선으로 연결된 상태여야만 한다. 즉 무선이 아닌 유선펜이다. 모든 e-paper가 이 펜과 연결될 수는 없을 것이니 자연히 펜을 연결할 단자가 있는 e-book이나 e-ink가 사용된 스케치 북 등과 함께 사용해야한다. 펜은 스위치 외에도 색상이나 지우개 기능 등을 지원하며, 사용자가 원하는 글씨나 그림을 e-paper상에 그리거나 지울 수도 있다. 타블렛 등을 이용하여 모니터를 보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모니터에 직접 글자를 쓰는 디스플레이와는 다른 표현질감과 손의 움직임을 고려한 펜이 개발되어야 한다.



7. 결론


지금까지 e-ink가 코팅된 e-paper, e-book의 연구개발과정 그리고 그 성과를 살펴보았다. 종이와 비슷한 질감과 물리적 특성을 지닌 전자종이의 개발은 이미 1975년부터 시작되었으나 이것이 본격적인 가능성을 안고 연구가 진행된 것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e-ink연구를 시작한 E-ink 연구실은 E-ink사로 태어났으며, 이들의 뒤를 이어 Molecular Machine 연구실에서는 상업화를 위한 보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목적과 방법에서 출발한 전자종이와 전자책에 대한 연구는 비슷한 몇 가지 주요 목적을 향해 집중되고 있다. 즉 그것은 가볍고 얇으면서 종이처럼 접거나 휠 수 있으며, 고해상도의 이미지와 동영상을 취급하는 물질과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미 소니와 같은 몇 개의 기업에서는 이를 상용화하기 위한 시제품을 출시하였고, 인쇄분야에서도 전자종이로 제작된 인쇄물을 광고용으로 시험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경제적 문제와 인접기술의 한계, 연관 산업이나 소프트웨어, 시장형성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그 개발진행 속도가 더딘 편이다. 그러나 2010년이 되기 전에 이 기술을 응용한 다양한 분야의 도구 개발이 이루어질 것이며, 변화한 환경 속에서의 낯선 풍경이 우리의 오감을 자극할 것이다. 여기에서 제안한 몇 가지 가능성(종이시계나 접는 시계, E-pen 등)은 극히 단순하고 직접적인 응용에 불과하다.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침투하고 있는 종이와 플라스틱, 금속, 유리 등을 생각해본다면 이 모든 물질에 인쇄가 가능하고, 그 인쇄물이 동적으로 구현되며 사용자와 interactive한 관계를 맺게 될 미래의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개별적인 도구와 기술의 외면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외부의 정보와 이미지를 수용하고 이를 조직화함으로써 새로운 기술을 소비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두뇌활동에 관심을 가지는 것 역시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이미 17세기에 이루어놓은 수학과 과학이 19세기 기술문화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목격하였다. 또한 20세기의 과학혁명이 현재에 이르러 사회체계와 문화를 비롯한 모든 가치들을 어떻게 전환시켰는가 지금 체험하고 있다. 어떠한 정보를 담는가, 혹은 정보를 어떻게 조직화 하는가 뿐 아니라 정보를 담는 그릇 그 자체가 지금 껍질을 벗으며 전혀 다른 형태로 변이하고 있다.

주  
1) 'The Last Book'은 이 연구를 주도한 코미스키와 야콥슨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논문 중 가장 초기의 것에 해당한다. 이후 발표된 논문들의 경우, 개요나 연구 목적 보다는 진행 상황에 대한 기술적 검토 등이 주를 이루고 있어 연구의 핵심 내용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또한 'The Last Book'은 사이언스나 네이쳐 등과 같은 전문 과학 저널이 아닌 IBM System Journal에 실린 까닭에 연구의 목적과 배경 등이 상세하게 나와 있는 편이다. 
2) J Jacobson, B Comiskey, C Turner, J Albert, P Ysao. "the last book". (1997) IBM System Journal 36 (3) pp., 457~458. 
3) Ibid., 456. 
4) 책의 낱장이 접지된 책의 옆면을 말하는 ‘spine’은 책의 제목과 저자, 출판사 등의 정보로 구성된다. 한글에 이 부분을 지칭하는 적합한 용어가 없어 그대로 spine을 사용하도록 한다. 
5) B comiskey, JD Albert, H Yoshizawa, J Jacobson. "An electrophoretic Ink for All-Printed Reflective Electronic Displays." (1998) Nature 394 (6690), pp., 253~255. 
6) 1997년 발표된 ‘The Last Book'에서의 전망과 달리 e-ink의 하부에 해당하는 기판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트랜지스터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물론 이것은 낱장의 종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e-book과 같은 실제 책과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보다 고도의 기술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 서경도(한양대학교 응용화학부 교수), "Digital Paper 디스플레이 기술“, (2002) 고분자 신소재 뉴스레터 28. 
7) Fuller. S. B., E. J. Wilhelm. et al. :Ink-jet printed nanoparticle microelectronical system." (2002) journal of Microelectronechanical Systems 11(1), pp., 54~60. 
8) e-ink를 사용한 종이를 e-paper라 표기하였다. e-ink사에서는 자사의 개발 물질을 e-ink로 명명하고 있으나, 전자종이나 전자책의 경우 e-ink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에 혼동이 있을 수 있다. 편의상 이 글에서는 e-ink를 사용한 e-paper를 비롯한 동적 잉크가 들어간 종이를 모두 ‘전자종이’로 한다. 
9) Gyricon은 두 가지 색상으로 이루어진 소형 볼 잉크로 이루어진 전자종이라는 측면에서 e-ink와 유사하나, 그 크기나 전기조절방식 등에 차이가 있다. 종이와 같은 물질에 응용 가능하나 해상도가 떨어지고 안정성이 부족하다. 
10) 콜레스테롤 액정 방식은 컬러 표현이 가능하며 일반적인 액정에 비해 넓은 시야각을 확보할 수 있다. 전력소모양이 많다는 단점이 있으나 E-ink 기술에 비해 재현속도가 빨라 동영상을 재생하는데 적합하며 이미지 지속능력이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다. 
11) 서경도(한양대학교 응용화학부 교수), "Digital Paper 디스플레이 기술“, (2002) 고분자 신소재 뉴스레터 28 
12) 해당 그림에 대한 단순한 영상 이미지는 첨부한 CD에 수록된 ‘clock.exe’ 파일을 실행하면 볼 수 있다. 기존의 시계는 시간과 분, 초가 모두 동일한 구심점을 공유해야한다는 기계적 한계에 놓여있다. 동영상이 다양한 재료와 방법으로 표현될 수 있다면 시간을 표현하는 방법에도 제약은 사라진다. 
13) 접거나 구부러질 수 있는 형태의 물체가 움직이는 영상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 가능성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확대될 것이다. 천정에서 시작된 나비의 움직임이 벽을 따라 내려와 다른 벽으로 이동하는 벽지가 개발 될 수도 있다. ‘그림 4’의 경우처럼 다이어리에 끼운 한 장의 종이는 움직이는 시계가 될 수 있으며, 특정한 시간이 되면 화면의 빈 곳에 해야 할 일이나 약속을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J Jacobson, B Comiskey, C Turner, J Albert, P Tsao. "The Last Book." (1997) IBM Systems Journal 36 (3) 457-63.

- B Comiskey, JD Albert, H Yoshizawa, J Jacobson. "An electrophoretic Ink for All-Printed Reflective Electronic Displays." (1998) Nature 394 (6690) 253-255.

- Ridley, B Nivi, JM Jacobson. "All-Inorganic Field Effect Transistors Fabricated by Printing." (1999) Science 286 (5440) 746-749.

- Colin A. Bulthaup, Eric J. Wilhelm, Brian N. Hubert, Brent A. Ridley, Joseph M. Jacobson. "All-additive fabrication of inorganic logic elements by liquid embossing." (2001) Applied Physics Letters 79(10): 1525-1527.

- Fuller, S. B., E. J. Wilhelm, et al. "Ink-jet printed nanoparticle microelectromechanical systems." (2002) Journal of Microelectromechanical Systems 11(1): 54-60.

- Kimberly Hamad-Schifferli, John J. Schwartz, Aaron T. Santos, Shuguang Zhang & Joseph M. Jacobson. "Remote electronic control of DNA hybridization through inductive coupling to an attached metal nanocrystal antenna." (2002) Nature 415 (6868), 152-156.

- 서경도(한양대학교 응용화학부 교수), "Digital Paper 디스플레이 기술“, (2002) 고분자 신소재 뉴스레터 28,   http://cafpoly.kaist.ac.kr/cafpoly/newsletter/lecture/lecture28.htm

- http://www.eink.com

- “과학이야기-신문지에서 동영상 볼 수 있다”, 매경 이코노미(경제, 증권), (2003. 10. 16일자).


* 2004년 4월 간단한 보고서를 위해 쓴 글

Posted by 늙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