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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진보와 보수의 구조

by 늙은소 2009. 9. 21.
최근 글을 하나 써서 올렸는데, 어쩌다보니 진보와 보수의 정치구호에 대해서까지 나아가고 말았다. 진보의 구호는 어려울 뿐 아니라, 설령 쉬운 용어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정책 대상자를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종종 생각하곤 하였다. 그 뿐 아니라 폐쇄적일 것 같은 보수진영이 의외로 개방적이라는 느낌을 자주 받아왔는데, 이러한 모순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궁금해졌달까?

자신이 속한 계급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정치인이나 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계급배반투표’라 한다. 예를 들면 월 소득 100만 원 이하 저소득층 가장이, 저소득층의 복지예산을 삭감하는 법안에 찬성한다면 이는 자신의 계급을 배반하는 행위에 속한다. 선거결과가 공개될 때마다 진보를 주장하던 정치세력은 계급배반 현상 앞에서 절망하곤 하였다. 
진보의 구호는 사실 어렵고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나를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고 하지만 상대가 하는 말을 당최 알아들을 수 없으니 내가 무식하게만 생각되는 것이다. 반면 보수의 구호는 쉽고 익숙한 용어가 대부분이다. 선거판에서 ‘잘 살게 해 주겠다’는 약속보다 더 쉬운 구호가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되면 그들의 말이 지켜질 수 있는 약속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내가 무식한 것만 같고, 나를 위한 일이라는데도 정작 내가 그 내용을 모르니 소외감만 느껴지는 구호보다는, 그것이 거짓말일지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용어를 택함으로써 대중은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옳고 그름보다 아는가 모르는가가 더 중요한 세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옳은 길 보다는, 몇 번이나 당했으면서도 익숙한 길을 택하는 모순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계급배반의 역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쓴 글 '도대체 왜 비담을 사이코패스라 부르는가' 중에서, 3M흥업에 올림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보수진영이 엽기적인 전여사와 변선생의 존재를 묵인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들의 활동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약점이 잡혀서?, 뭐 뭍은 개가 다른 개를 나무랄 수 없으니? 혹은 남들 다 꺼려하는 더러운 판에 끼어들어가 대신 싸워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모자라도 한 참 모자란 보수진영측 인사들의 언행을 보고있다보면, 의외로 보수진영이 '열린구조'를 채택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림을 그려보면 이런 식이다.


진보는 매끈한 표면과 완벽한 구조를 지향한다. 자신들이 부족하다면 그 부족함을 채워줄 사람을 요구하게 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 완벽해지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이들은 폐쇄적인 조직을 구성한다. 더불어 이러한 속성을 자신들에게 국한시키지 않고, 다른 집단과 계급에게까지 '완벽한 구조'를 요구하게 되어 각종 정책에 이를 반영, 모든 조직과 집단, 계급이 보다 안정되고 바람직하며 합리적인 형태를 갖추도록 정책을 입안하게 되는 것이다. (그로인해 전체의 협력을 얻기가 더더욱 어려워진다)

반면 보수측은 거칠고 불완전한 구조를 지향한다. 이들은 한계점이 없으며 다른 요소들이 달라붙기 쉬운 구조를 채택함으로써 온갖 불순물이 튀어나온 가지과 결합하는 구조를 취한다. 불완전한 요소가 결합함에 따라 표면은 또 다른 가지가 뻗어나오고, 이 가지에 새로운 불순물이 결합한다. 스스로 비대해지는 구조. 결국 보수는 권력과 자본, 문화, 사상과 같은 온갖 것을 끌어들여 스스로 전체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외부에 있던 완벽하지만 작은 결합체는 이 비대한 조직에 달라붙기 위해서라도 스스로의 고리를 끊고 불완전한 조직체로 변신할 수밖에 없다. 다수의 대중이 보수에게 이끌리는 것은 이러한 '열린구조'때문이다. 더불어 '당신이 모자라고 불완전해도 상관없다'는 위로와 '평등해보이기까지 하는' 눈속임이 마련되어 있으니 매력적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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