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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셜록 홈즈 : 도개교와 현수교

by 늙은소 2010. 2. 28.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2009

감독 : 가이 리치
출연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드 로, 레이첼 맥아담스, 마크 스트롱



* 첨부된 이미지는 영화 리뷰를 위해 사용한 것으로, 권리는 제작사에 있습니다.

'박찬욱의 오마주'를 읽은 후 생긴 습관. 시작을 유심히 살필 것. 사소한 것에 집착할 것.

과거에는 이야기의 종결과 화면이 어떻게 닫히는가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감독의 입장에서 영화를 다시 보면 이 사람이 첫 말을 꺼내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였겠나, 상대적으로 투여된 고민의 농도가 다르리라는 짐작으로 작은 것 하나 그냥 넘기지 않게 된다. 화면을 구성하는 소품과 인물의 동선, 소리, 지나치는 대사 하나까지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처럼 집착하는 버릇이 그때 들러붙었다.


1. 도개교와 현수교

가이 리치 감독의 2009년 작 [셜록 홈즈]에서는 런던 타워 브리지가 집착 대상이다. 19세기 말의 런던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는 런던의 유명 건축물과 시대적 풍경이 조화를 이후며 모노톤에 가까운 잿빛 필터 속에서 자리다툼한다. 그러나 잔영으로 남는 것은 건조 중에 조선소를 이탈해버린 대형 선박과, 완공되지 못한 타워 브리지다. 특히 사건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직전 언급되었던 타워 브리지는 사건의 종결 장소로 재등장한다. 자신의 손으로 체포한 블랙우드경이 사형 직전 셜록 홈즈를 만나기 희망하였을 때, 왓슨과 홈즈는 마차를 타고 한창 공사 중이던 타워 브리지 옆을 지나간다. 이때 왓슨은 이 다리가 '도개교'와 '현수교'라는 전혀 다른 방식의 토목기술이 결합된 형태라며 감탄한다.

당시 런던은 급속한 도시 확장과 무역 확대로 템즈강 이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강을 오가는 선박의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강변을 이어주는 교량이 필요하였고, 그 결과 도개교(개폐형 다리)와 현수교가 결합된 디자인이 채택된다. 좌우측 현수교를 시작으로 건설이 진행된 탓에 영화에서는 다리 중앙부가 연결되지 못한 상태로 공사현장이 전시된다. 이것은 홈즈와 왓슨이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아직 완벽한 콤비를 이루고 있지 못함을 상징한다.(아직 연결되지 못한 다리처럼) 그리고 이들은 불완전한 상태로(건조 중인 선박이 그랬던 것처럼), 위험한 사건 중심에 휩쓸린다.(조선소를 이탈한다)




2. 소리의 울림

타워 브리지 못지않게 [셜록 홈즈]에서 집착하게 되는 사소한 요소 중 하나는 '소리'다. 홈즈는 격투가 벌어지면 상대의 집중력을 떨어트릴 목적으로 귀를 공격하곤 한다. 손바닥으로 동시에 양쪽 귀를 쳐 순간적인 압력변화를 일으키는 것인데, 이 장면이면 어김없이 영화의 음향이 마치 홈즈에게 공격당한 사람마냥 아득한 울림으로 전환된다. 도축장이 폭파되었을 때에도 나온 이러한 소리 변화는 마치 홈즈 자신이 그 순간 제대로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상대를 당황하게 할 목적으로 공격을 펼치지만, 오히려 현실과 멀어지고 있는 것은 홈즈 그 자신인 것처럼. 그 외에도 병 안에 든 파리들이 현악기의 소리 변화에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돌기 시작한다고 주장하던 장면에서도 '소리'는 등장한다. 행동을 결정하게 만드는 소리들. 혹은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소리. 어떤 의미일까?



3. 사건을 홈즈의 눈으로 보게 할 것인가, 왓슨의 눈으로 보게 할 것인가 

대체로 코넌 도일의 소설은 왓슨의 시각으로 재구성된 사건의 회고에 가깝다. 일반인에 가까운 왓슨에게 있어 셜록 홈즈는 뛰어난 관찰력과 지식으로 사물과 사건, 사람을 분석하는 이해 불가능한 능력의 소유자다. 비록 그는 냉소적이며 괴팍하긴 하나, 태생적 호기심으로 인해 결국 사건을 지나치지 못한다. 소설을 통해 홈즈는 경외의 대상이 되었을 뿐, 그의 불안한 내면이나 고독함에 이입되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나 영화 [셜록 홈즈]는 홈즈의 시선으로 그의 내부와 외부를 바라본다. 자존심 때문에 남아달라고 사정하지 못하는 홈즈는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들키고 만다. 여기서 타자他者는 오히려 왓슨이다. 이런 시점의 변화는 홈즈의 탁월함을 반감시키는 대신 그의 인간적 매력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이 변화로 인해 탐정 홈즈의 이미지가 약화되었고, 추리 과정이 후반의 설명으로 삽입되어 관객이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아 거리감을 유발시킨다. 홈즈의 능력은 사건의 직접적인 해결보다 격투장면에서 더 높이 발휘되곤 한다. 이 두 장면의 차이는 관객에게 정보가 제공되는 타이밍에서 드러난다. 격투 장면에서 홈즈는 상대를 어떻게 가격할 것인지 그 순서를 정하고 시뮬레이션 한 다음 그대로 행위에 옮겨 자신의 이론이 맞았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정작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는 홈즈가 관찰한 증거물들의 정확할 실체가 공개되지 않는다. 파헤쳐진 무덤의 석재에서 어떤 맛이 느껴졌는지, 창고에서 발견한 실험대 위의 화학물질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관객은 알지 못한 채 그의 움직임만 바라볼 뿐이니, 이후의 추리과정이나 홈즈의 활약에 감탄하기 쉽지 않다. 그저 사건이 모두 해결된 다음 읊어주는 추리 과정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줄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