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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의형제 : 여기 북한은 없다

by 늙은소 2010. 3. 9.








의형제(2010)
감독 : 장훈
출연 : 송강호, 강동원, 전국환


* 사용한 이미지는 영화 리뷰를 위한 것으로, 권리는 제작사에 있습니다.



[쉬리]가 제시한 남북한의 화해 가능성은 어느 지점에 있는가?

간첩 이명현(김윤진)이 남한 측 요원 유중원(한석규)을 사랑하게 되면서? 아니다. 사랑은 지극히 사적인 감정일 뿐, 북한 지도부 전원과 남한 정치인 전원이 상대편 이성과 사랑에 빠져 통일을 추진하지 않고서야 개인의 사랑이 남북문제에 어떤 돌파구를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쉬리]가 보여주고자 한 통일의 단서는 '박무영(최민식)'의 분노에 있다. '너희들이 한가하게 노래하며 살고 있는 이 순간에도 북녘의 인민들은 굶어 쓰러지고, 개 팔리듯 팔려가고 있다'는 그의 분노에 찬 절규는, 남이 북으로부터 듣고자 한 고백이다. 그리고 이 고백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반복된다. 오경필 중사(송강호) 역시 이수혁(이병헌)에게 너희들이 잘 산다고 자신들을 무시하지 말라며 화를 냈던 것이다.

분단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남한이 경제적으로 우월함을 북이 인정하는 장면을 상투적으로 이용해왔다. 이것은 자기만족의 위안에 그치지 않고, 분단의 위협을 경제적 격차로 해결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제공한다. 북한은 스스로 붕괴되고 말 것이니, 우리는 그 때 찾아올 혼란에 대비에 열심히 돈을 모으기만 하면 된다는 지극히 평안한 발상.

[의형제]도 다르지 않아, 이 영화는 신자유주의 체제 하의 먹고사니즘으로 단결된 두 남자가 의형제를 맺기까지의 여정을 다룬다. 그리고 [쉬리]와 [JSA]가 그랬던 것처럼 [의형제] 역시 양측의 이데올로기를 표면화시키지 않고, 더 나아가 북한을 아예 거세시켜버린다.



영화는 북한 간첩 송지원(강동원)이 북에서 온 킬러 그림자(전국환)와 함께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만나면서 본격화된다. 이때 그림자는 송지원과 또 다른 남파간첩인 손태순을 화장실로 데려간 다음, 남에서 유행하는 춤을 춰 보라 명령한다. 어색한 토끼춤을 춰 보이는 두 명의 간첩. 이런 그들을 남한 물이 들었다며 그림자는 질책하지만, 그런 '그림자' 조차 영화 마지막까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인을 반복하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남한은 증오의 대상이며, 살인은 배신자에 대한 처단이다. 그는 남으로부터 북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감정(남한에 대한 증오라는)을 우선할 뿐. 자신의 판단이 곧 국가이며 이념인 그림자에게 북한은 무의미한 경계 밖 영토에 불과하다.

이 영화에서 북한은 더 이상 국가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림자를 제외한) 북한 출신의 인물들은 서로 대화할 때 북한 억양을 사용하지 않으며, 남과 완벽히 동화되어 있다. 어떤 면에서 이들은 남한의 자본주의 체계에 중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설령 자신이 기대한 삶을 살지 못한 채 계급의 밑바닥에 추락하더라도 그들은 남한을 떠나지 못한다. 비참한 삶을 살게 된 손태순은 알콜중독이나 도박 중독에 걸린 사람의 집처럼 어둡고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풍경을 보여준다. 북과 남 모두에게 버림받았음에도 남한에 남을 수밖에 없는 손태순의 모습은, 남한이 북한에게 기대하는 계급적 역할이기도 하다. 송지원처럼 돈벌이에 유용한 동료가 되거나, 계급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더라도 자신의 계급적 역할에 충실해주기 바라는 심리.

이 영화에서 북한은 도망쳐 나와야 할 영토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권력도, 공포도, 이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처럼, [의형제]에서 북한은 바다를 떠다니는 유령선으로 기능한다. 송지원은 조국이 자신의 가족에게 위해를 가할까 두려워하지만, 심지어 그의 조국은 송지원이 배신자인지 아닌지조차 모르고 있지 않았는가. 이토록 무력해서야. 결국 송지원에게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북한은 '그림자'의 존재 뿐이다. 그러나 '그림자'라는 말이 의미하듯 영화가 보여주는 북한은, 남한을 무조건 증오하는 대화 불가능한 한 개인(킬러 '그림자')의 그림자 뒤에 가려진다.



북의 이미지가 ‘탈출해야 할 장소’로 환원되자, 송지원은 ‘올리버 트위스트’가 된다. 귀족 가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고아원에서 성장해, 범죄단에 붙잡혀 소매치기를 돕게 된 올리버처럼, 송지원은 자신의 자리를 박탈당한 어린 짐승과 같다. 사냥을 하기엔 아직 어린 이 맹수는 당장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내부의 두려움을 주위가 눈치 채지 않도록, 그리하여 공격받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로 인해 관객은 송지원을 동일시하고, 이한규(송강호)를 오히려 타자로 받아들인다. 실패자인 이한규를 지켜보며, 송지원이 가족을 찾고 그의 능력에 맞는 경제적 지위를 회복하기 바라는 심정.


송지원을 둘러싼 환경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이다. 낡고 좁은 골방에서 수신된 암호는 수입자동차의 가격표에 기록되어 있으며, 배신자는 아파트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간다. 그를 마중 나온 손태순의 승용차와, 귀순한 옛 스승의 경호차량 등. 한때 동료였으며 같은 사상으로 동일한 꿈을 꾸던 이들이 남한에서 자본주의자로 자리잡는 동안 오직 송지원만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채 낙오되고 만다. 한규를 속이기 위해 아파트 중도금을 이야기하는 지원은 그가 비록 북을 배신하지는 않았을 지언정 자본주의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추격신에서 계단을 오르게 못해 주저앉고 만 승용차처럼, 한규와 지원은 오르지 못한 어떤 지점을 갖고 있다. 영화 말미에 송지원은 그림자와 함께 건물에서 추락한다. 김일성 대학 출신의 북한 엘리트요원이던 송지원의 남파는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계급적 추락을 의미한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비행기 신은 그 추락의 반작용적 공간이 아니었을까? 당장의 생계를 위해 의기투합했던 두 남자가 결국은 함께, 오르지 못하였던 어떤 곳으로 올라가게 된다는 이야기.


* [노잉]도 그러더니 [의형제] 역시 이웃님 블로그에 가서 남긴 댓글을 확장해 결국 포스팅을 하게 되었다. 할 말이 전혀 없어서 난감했는데, 이웃님들 글에서 영감을 얻게 된 듯.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