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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사랑은 너무 복잡해 : Start Line으로 돌아간 남자

by 늙은소 2010. 4. 23.









사랑은 너무 복잡해(It's Complicated), 2009

감독 : 낸시 마이어스
출연 : 메릴 스트립(제인), 알렉 볼드윈(제이크), 스티브 마틴(아담)

* 본문에 사용한 이미지는 리뷰를 위한 것으로, 권리는 제작사에 있습니다.

20년의 결혼생활 끝에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하게 된 제인(메릴 스트립)은, 이혼 후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남편을 용서하지 못한다. 이혼할 당시 10대였던 세 아이는 어느덧 장성해 자신을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성인이 되었고, 결혼 기간 내내 아이를 키우느라 시작하지 못했던 베이커리 샵도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잡아, 제인은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그런데 아들의 대학 졸업식에 찾아온 전남편 제이크(알렉 볼드윈)와 하룻밤을 보내고 만 제인. 그 날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예전의 열정이 되살아난다. 문제는 제이크가 이제는 유부남이라는 사실. 자신보다 20살이나 어린 여자와 재혼한 제이크로부터 구애를 받는 제인은 남편을 빼앗아간 여자에게 복수하는 통쾌함과 동시에 죄책감을 느낀다. 설상가상, 증축건으로 알게 된 건축가 아담(스티브 마틴) 또한 제인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녀는 누구를 선택하게 될까?

전작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낸시 마이어스는 이번에도 노년에 접어든 여성의 로맨스를 판타지로 포장한다. 20~30대 여성들을 사로잡을 만큼 준수한 외모의 연하남으로부터 구애를 받는 50대 여성이 [사랑할 때 버려야 할..]의 주인공이었다면, [사랑은 너무 복잡해]에선 육감적인 몸매로 젊음을 과시하는 제이크의 재혼녀와 경쟁해 승리하는 50대 여성이 주인공이다. 두 영화는 단순히 삼각관계에 빠진 노년의 로맨스로 머무르지 않는다. 표면상으로는 두 명의 남성 사이에 놓인 여성의 삼각관계로 보인다. 그러나 그 남자들 옆에는 20~30대의 젊은 여성들이 포진하고 있다. 젊고 섹시한 여자들에게 시선을 뺏긴 남자들을 사로잡는 50대 여성이라. 판타지라고 할 밖에.



제인이 아닌 제이크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사랑은 너무 복잡해]는 전혀 다른 영화로 해석할 수 있다. 제이크는 아이들과 아내를 버리고 택한 여자와 재혼해 10년을 살았다. 재혼녀인 아그네스와 제이크의 사이가 마냥 행복했던 것은 아니어서, 아그네스는 제이크와 헤어진 동안 만난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채 제이크에게 되돌아오기도 한다. 자신의 아이가 아님을 알면서도 제이크는 아그네스와 함께 아이를 키웠다. 이제 그 아이가 10살이 되나 싶으니, 아그네스가 아이를 낳자며 60을 바라보는 제이크를 불임클리닉에 데리고 간다. 결국 그는 인생의 30년을 10살이 안 된 아이와 산 셈이다. 울기만 하던 갓난아이가 말을 하고 제 손으로 옷을 챙겨입을 나이가 되니 다른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자라자마자 또 다른 애가 태어난다. 지친 제이크는 어린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결국 제인을 떠난다. 그런데 그렇게 만난 아그네스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다니. 둘째를 낳길 바라는 아그네스의 바람을 들어주면 제이크는 모든 것이 아이 중심인 가정을 10년 더 유지해야 한다. 

이 영화를 노년 여성의 로맨스로 보지 않고, '남성의 육아 스트레스'로 보자. 아이를 씻기고 입히고 먹인 것은 아니지만, 집에 늘 어린아이가 있어 울고 보채는 소음이 들리고, 아이의 건강이 최우선인 식탁에서 식사를 하며 그는 30년을 보낸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 이는 제인이 아니라 제이크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자녀계획을 철저히 세웠어야 할 인물이 덜컥 4명의 아이를 키운 셈이니. 제인에게 돌아오고자 하는 제이크의 마음 속 어딘가에는 '육아 스트레스'가 한 몫하지 않을까 싶다. 함께 달리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도망친 제이크의 눈에, 다 자란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제인의 모습은 결승점에 다다른 이의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도망을 칠 거라면 트랙을 이탈할 것이지, 어쩌다 제이크는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그 힘든 경주를 10년 더 하게 된 것일까. 설상가상, 아그네스가 '우리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뛰어요'라 말하며 불임 클리닉에 그를 밀어넣다니. 제이크가 불쌍해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

정신과 상담이 급선무인 사람은, 전남편과 밀애를 시작하며 혼란에 빠진 제인이 아니라 제이크다. 물론 그는 좋은 남편이고 아버지다. 비록 바람을 피워 이혼하게 된 책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핀 상대와 결혼을 했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아그네스를 받아들였으며 그 아이를 함께 키웠다. 문제가 있다면 '육아'의 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아직 말도 못하는 갓난아이가 마냥 귀여워 아이를 계속 낳는 사람도 있는 반면, 사춘기 자녀와 싸우느라 자녀 낳은 걸 후회하는 부모도 있다. '어릴 땐 그렇게 귀엽던 애가 요즘은 왜 이리 미운지'를 입에 달고 사는 엄마. '제발 네 손으로 밥 차려 먹고 세탁기 돌릴 만큼만 커줬으면 소원이 없겠다'며 가사노동의 힘겨움을 호소하는 주부도 있는 법. 결혼을 할 것이냐 독신으로 살 것이냐, 아이를 낳을까 말까, 몇 명을 낳을까, 이런 고민거리는 더욱 세분화시켜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장성한 아이들과 화목한 노후를 보내는 상상만으로 견디기에는 10살이 안된 아이와 살아가는 삶이 힘겨운 사람도 세상에는 존재하는 법이니.

유능한 변호사인 제이크는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데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7살짜리 아들에게는 도통 설득도 협박도 통하질 않으니 답답하기만 한 것이다. 어쩌면 그는 철든 아이들을 입양하여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가정을 만들었어야 옳았는지도.


주의 : 영화는 철저히 여성 중심의 로맨스 영화로, 제이크의 가정은 그리 많은 분량이 나오지 않습니다. 간간이 등장하는 제이크의 상황 정보들을 조합하다보니, 이 남자도 참 딱해보여 '그 남자' 중심으로 영화를 읽어봤습니다. 영화평들이 너무 천편일률적인 건 싫거든요. 다양한 해석(심지어 마이너란 시선도)을 찾아 영화평을 챙겨 보는데, 가면 갈수록 새로운 시각은 찾기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