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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옥상의 클라라

by 늙은소 2017. 5. 29.

닉네임으로 서로를 구분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때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초등학교 교실이 몇 명의 학생을 수용하였는가를 밝힘으로써 서로의 나이를 짐작하기도 한다. ‘? 한 반에 학생이 60명이 넘었다고요? 그게 가능해요?’

내가 겪은 교실은 57명이었고,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을 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까지였다.

 

학교를 어떤 형태의 놀이터로 삼아야 할지 방향을 찾지 못한 1학년 아이들은 동네 골목에서 하던 놀이를 교실에서 재현하다 선생님에게 혼나기 일쑤였고,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동네 아이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당시 내 골목 친구는 전파상집 큰 딸 영선이었다.

우리는 그 골목에 단 둘뿐인 동갑내기 여자아이들이었고, 2년 전 이 곳으로 이사온 바로 다음날부터 친구로 지냈다.

두 집 건너 이웃이었던 영선이와 나는 당연히 같은 날,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한 교실에 아이들을 57명이나 배정했음에도 인근 학생을 모두 수용할 수 없었던 학교는 아이들을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한 교실을 두 반이 사용하게 하였고, 영선이와 나는 반이 다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져 방과 후에도 함께 놀기 어려운 사이가 되고 말았다. 

심심했다.

 

우리가 세 들어 살고 있는 건물 옥상에 낯선 이들이 이사를 온 건 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날은 여름이 온 것처럼 더웠다. 그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는 2년 넘게 살았던 건물 옥상에 단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었고, 당연히 옥상에 사람이 살 만한 장소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나는 옥상에 올라가는 건 물론이고 3층 계단조차 밟지 못하였는데, 그것이 내게 허용되지 않는 금지된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층에는 다방이 있었고, 나는 그 다방이 무서웠다.

 

그 때는 무서운 게 많았다. 가게 앞 차도는 2차선 도로였고 거리를 오가는 차가 많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 차도를 건너지 못했다. 청량리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장의사는 또 얼마나 무서웠던지. 저기 죽은 사람이 있다, 귀신이 나온다더라. 아이들은 수군거렸고 누군가의 손을 잡지 않고는 그 앞을 지나가지 못했다. 청량리 반대 방향으로는 미주극장이 있었는데, 극장에 걸린 그림 속의 사람들이 기괴할 때가 많아 학교에 갈 때면 극장 앞을 지나기 보다 뒤쪽 골목길을 주로 이용했다.

 

3층 다방을 무서워한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엄마가 다른 아줌마들과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대화하며 다방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무언가 무서운 이야기를 할 때면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으니까. 내가 듣지 못하도록 엄마가 갑자기 소리를 죽여 말하는 걸 보면 다방은 분명 무서운 곳이 분명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앞 집에 살던 양장점 아줌마가 어느 날 사라진 이야기라든가, 그 집 아저씨가 가게에서 일하던 여종업원과 바람이 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어머니는 소리를 죽였다. 그럴 때면 엄마가 아줌마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듣기 위해 더욱 귀를 세웠다. 어머니는 내게 3층 다방은 어른들이 가는 곳이므로 함부로 그 근처에 가지 말라며 주의를 주었고, 나는 그곳이 단지 아이들이 가선 안 될 곳을 넘어 무언가 무서운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장소라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 그 때문에 2년이 넘도록 3층으로 가는 계단을 밟지 않았고, 덕분에 건물 옥상에도 올라가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옥상에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이사를 온 것이다. 심심했고 영선이는 오후반이라 학교에 가 있었으며, 언니는 고학년이라 오후에나 학교에서 돌아왔다. 무엇보다 당시 언니는 나를 몹시 귀찮아 해 좀처럼 상대해주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옥상으로 이사를 온 이들은 아버지와 딸 단 두 사람이었다. 아니. 두 사람이라고 들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아버지라는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딸은 내 또래로 보였으나 나보다 키가 한 뼘은 더 컸고, 나이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몇 살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본인조차 자신이 몇 살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이 9살인 것 같다고 그녀는 내게 말했다.

 

그녀는 나의 클라라였다. 당시 TV에서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방영되고 있었는데, 어쩐지 나는 그녀와 내 관계가 클라라와 하이디 같다고 생각했다. 클라라는 하이디에 비해 키가 크고 성숙한 이미지였으며 집에서 밖으로 잘 나오지 못하였는데 옥상의 클라라역시 그랬다.

만화 속 클라라가 잘 걷지 못해 외부 출입이 어려웠던 것처럼 옥상의 클라라도 옥상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았는데, 그건 그녀의 손가락이 세 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른손에서 두 개, 왼 손에서 하나. 사람들에게 손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던 클라라와 놀기 위해서는 옥상에 올라가야만 했고, 건물 옥상은 우리 둘의 놀이터가 되었다.

클라라와의 놀이는 조금 달랐다. 학교 친구들과 놀 때는 얼음땡이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것을 했고, 골목 친구들과 놀 때는 공기놀이 같은 것을 했지만, 클라라와는 이런 걸 할 수 없었다. 가위바위보를 하는 것도 어려웠고, 공기놀이는 그녀에게 너무 불리했다. 제법 친해진 뒤에는 가위바위보나 묵찌빠는 할 정도가 되었으나, 가위바위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티격태격할 때가 많았다. 글쎄 가위를 내고서는 이건 라고 주장하지 뭔가. ‘내가 손가락이 없어서 가위처럼 보이는데, 이건 라니까. 봐봐 세 개 폈잖아?’

없는 손가락을 놓고 이런 실랑이를 벌일 정도로 가까워졌음에도, 나는 그녀가 옥상에서 사라진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하다가 손가락을 잃게 되었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우리는 옥상에 버려진 쓰레기를 가지고 놀았다. 그 중에서도 버려진 TV케이스는 가장 좋은 장난감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빈 케이스에는 작은 미닫이문이 달려 있어 문을 열고 닫으면 작은 극장 같았고 각종 상황극이나 인형극을 펼치기에 제격이었다. 안타까운 건 한 쪽 미닫이가 휘어져 있어 제대로 열리고 닫히지 않아 폼이 안 난다는 것이었달까.


클라라는 자신의 나이를 몰랐고, 학교에도 다니지 않았다. 어디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아이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이웃 아줌마와 다시 소리를 죽여 대화를 나누었다. ‘저 옥상집은 아빠가 있다는데 좀처럼 얼굴을 볼 수도 없고, 아무리 봐도 그 집 애는 우리 막내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데 왜 학교를 안간데?’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점점 늘었고, 소리 죽여 나누던 대화는 나날이 커져 귀를 세우지 않고도 들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TV 속 클라라는 알프스에서 하이디를 만나 건강을 되찾고 다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밝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옥상의 클라라를 끝내 옥상 아래로 내려오게 하지 못했다. 그녀를 옥상 아래로 데려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이사를 왔을 때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그들은 사라졌다.

문조차 없이 창고 같아 보이던 옥상집에는 이후 어느 누구도 세를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옥상에 거의 올라가지 않았다.

클라라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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