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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파스타 유감

by 늙은소 2010. 1. 19.

대체 우리는 얼마만에 이렇게 뻔뻔해진 걸까?


지난 6월 ‘해피포인트-입영통지서편’ 광고는 공개되자마자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전파되며 2009년 최악의 광고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7월, 이번에는 ‘맥스웰하우스-복학안하면 안되냐’가 도마에 올랐다. 휴학 중인-군대에 간 것으로 짐작되는-남자친구에게 복학을 미루거나, 적어도 자신이 졸업할 때까지 학교로 돌아오지 말라는 이 광고는, 여러 면에서 해피포인트 광고를 닮았다. 광고는 타인보다 자신을 더 우선시하는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군대에 가야하는 동기의 현재 심정이 어떠한지, 학교를 잠시 떠난 남자친구가 잘 지내고 있는지 따위에 관심 없는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감정과 상황만 우선시한다.

광고가 공개되었을 때,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것을 여성의 문제로 바라보았다. 군대에 다녀올 일 없는 여성들의 시각에서 나옴직한 광고라며, 성토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광고의 연속선상에는 드라마 [트리플]의 한계가 놓여 있다. 문제는 군대를 다녀오느냐 아니냐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타인의 입장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에 방점을 찍는 것이 옳다. 

드라마 [트리플]에서 주인공은 모두 사랑을 한다. 아름다운 청춘이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으니 드라마가 아름다워야 정석인데, 이 드라마는 아름답지가 않다. 그 사랑이 지극히 이기적인 탓이다. 남편과의 화해를 바라는 수인(이하나)의 마음을 읽지 않는 현태(윤계상)나, 마음을 열기 위해 힘든 싸움을 하는 활(이정재)을 이해하기엔 자신의 감정이 너무 큰 하루(민효린)도, 모두 철없는 유치원생들의 투정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음에도) 않은 스킨십이 반복된다. 

강제로 행해지는 키스장면이나,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랑한다고 외치는 젊음을 보다보면 불편함을 넘어 분노의 감정이 일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서는 피해자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로인해 가해자도 성립되지 않는다) 너로 인해 내가 곤란해졌다며 화를 내거나, 이것은 엄연한 성희롱일 수 있으니 조심해달라고 타이르는 사람이 없다. 결국 시청자는 그들의 관계에 개입할 수 없는 제 3자가 되어, ‘피해자가 피해가 없다고 하니 끼어들어 화 낼 수조차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아름다운 청춘들은 무엇을 해도 서로 용서가 되는가보다 생각하며 채널을 돌리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 중략 -

청춘은 자신의 감정에 서투른 시기이다. 그러나 그 서투름은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설령 파악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기에 방황하는 미숙함에 더 가깝다. 자신의 감정만 앞세우고, 타인을 헤아리는 방법조차 모른다면 그것은 청춘이 아니라 ‘미운 일곱살’에 더 가깝다. 드라마와 광고는 퇴행해버린 청춘의 단면을 담아낸다. 그 안에는 입영통지서를 받은 친구보다, 그런 친구에게 깜짝 파티를 열어줄 생각을 해낸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나날이 치솟는 대학등록금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복학해야 하는 친구보다, 그 친구를 만나면 껄끄러울 수 있으니 늦게 복학하라는 주인공이 나온다. 언제부터 청춘이 이렇게 이기적이었던가. 이들에게 화를 내야 할 건 군필자들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2009년, 3m흥업에 올린 글 중에서


드라마 [파스타]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위에 쓴 글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최고가 되기 위해 열정을 쏟아내면서 그 와중에 사랑까지 하는 청춘이라니... 마땅히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야 정상인데 그게 그렇질 않다.

1등을 하기 위해 자신의 남자친구인 현욱(이선균)의 음식 재료를 망쳐놓은 오세영(이하늬)의 이기적인 행동은 다른 인물들의 이기주의를 상대적으로 감추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자신의 요리관만 옳다고 주장하는 최현욱은 리더십의 부재를 '쉐프'라는 직함으로 덮어씌우고, 실력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악착같이 주방에 남으려는 서유경(공효진)은 자신의 경험 부족과 무지함이 주변에 폐가 될 수 있음을 애써 못본척 한다. 레스토랑의 실질적 주인이면서 손님인양 행동하는 김산(알렉스)은 신분 감추기를 신개념 재벌2세의 트랜드처럼 걸쳐입는다.


레스토랑 '라 스페라'는 철저히 이기적인 사람들로 채워진 직장공간이다. 3년을 성실하게 일해온, 그 노력으로 간신히 인정받기 시작한 서유경은 순식간에 해고당하고, 복직되고, 뇌물수수혐의 받은 뒤 따돌림 당한다. 거의 대부분의(단 한 명을 제외한) 직장 동료들은 그녀가 해고될 때 침묵하고, 복직될 때 자신의 이익과 편가름을 계산하고, 뇌물수수혐의가 씌워지자 바로 뒤돌아선다. (뭐 이런...- -+)

오세영은 1등인 최현욱으로 인해 자신이 늘 2등이기만 했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아니 대체... 2등씩이나 한 게 뭐가 문제인걸까? 단 한 명만 뽑히는 취업문도 아니고, 1등이 아니면 모조리 사형인 상황도 아닌데 2등의 서러움씩이나 언급하는 그녀의 주장은 포만감을 모르는 허기진 욕망일 뿐이다. 물론 그러한 트라우마를 몇 년 씩이나 버리지 않고 여자들을 해고해온 최현욱 역시 자기의 고통만 감지할 뿐, 해고되어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하는 여성 요리사들의 고통에 결코 감정이입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밝고 씩씩하며 착한 여주인공인 서유경은 자신의 복직으로 다시 주방보조가 된 막내를 어루만지지 않으며, 그로인해 적을 하나 더 늘리기만 한다. 그녀 역시 성공지향형 인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이들과 큰 차이가 없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뒤 따라 걷는 사람보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앞서 걷는 사람만 바라본다는 점에서.

어쩌다 이렇게까지 타인의 감정과 상황에 이입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일까? 

최근 드라마 대부분이 이런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기주의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욕망에 솔직한 것으로 포장되고, 자신의 입장과 이익계산으로 캐릭터가 형성되며, 이기주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도통 만져지질 않는다. 사람은 없고 색상이 다른 욕망들로 그려진 정물화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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