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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지능이 문제일까?

by 늙은소 2012. 2. 5.
인공지능의 발전과정에서 '체스'는 중요한 지표로 여겨져 왔다.
'체스 세계 챔피언을 과연 컴퓨터가 이길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 목표로 여겨질 정도로,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수십년간 체스 챔피언에게 도전하였고 마침내 승리를 거두게 된다.
체스가 뭐길래..

사실 인공지능에 있어 '체스'는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다. 로봇의 판단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미로를 통과하게 하고, 운동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로봇 축구시합을 벌이는 것처럼, 지능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체스를 둘 뿐.


초기의 체스 프로그램은 논리적 추론과정을 발전시키는 쪽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체스 챔피언이 생각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스스로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결국 프로그램은 엄청난 양의 체스 경기 데이터를 입력해 이를 처리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하지만 실망할 건 없다. 인간이라고 해서 기억이나 논리, 추론과 지능과 같은 개념을 구분해가며 머리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인공지능기술이 인간을 따라잡게 되는 건,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두뇌를 별볼일 없게 사용했기 때문에 따라잡기 쉬워서라고 보는게 맞을 듯 하다. 왜 머리를 사용하는 능력은 발전시키지 않은 것일까? 인류는?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님.. ㅠㅠ 흑흑... 머리가 뒤죽박죽인 상태임)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자.
어쨌든 체스라는 게임을 잘 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게 상식이긴 한 듯 하다.
'체스 챔피언 = 천재'라는 공식도 꽤 잘 통하는 듯.
그렇다면 바둑은 어떨까?
체스보다 룰이 더 단순하긴 한데... 바둑 역시 머리가 좋아야 잘 하는 게임이 아닐런지??
(나는 체스 룰도 모르지만 바둑의 룰도 모른다. 체스와 바둑 모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다만 땅따먹기와 비슷한 게임이란 것만 알 뿐이다. 누가누가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할 것인가가 바둑의 기본 룰이 아니던가?)

머리가 좋다면, 바둑에서 이기기 쉬울까?
머리가 좋다고 널리 알려진 수재가 바둑을 잘 하지 못한다면, 그는 '바둑에 대한 재능'이 부족해서라고 봐야 되는 것일까?



가상의 바둑 기사 K씨는 [그림 1]과 같은 바둑경기를 하고 있다.
스스로 머리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K의 승률은 형편없다.
뭐가 문제일까?

일단 바둑을 잘 두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한 지 생각해보자.

바둑은 몇 수를 내다볼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내가 A라는 곳에 바둑알을 놓으면 상대가 어디에 바둑알을 놓을 것인지 이를 예측해야 한다.
그리고 그 예측 결과에 따라 나는 다시 어디에 바둑알을 놓을 것인지, 그리고 다시 그 이후에 상대는 어떻게 나올 것인지.. 이 가능성을 모두 예측해 하나하나 움직여야 하는 게 바둑이다.
그 과정에서 몇 개는 잃고, 몇 개는 얻게 되므로 잃게 될 것과 얻게 될 것을 계산하는 능력 또한 필요하다.
또한 내가 사용하는 전략과 상대가 사용하는 전략을 읽어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게임사례를 불러와 적용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바둑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용어가 이상해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바둑 경기를 TV에서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기억이 잘 안나서...- -;;)

이 정도만 따져본다면 기억력과 사고력, 추론능력 등이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면 가정해보자. 당신이 기억력과 사고력, 추론능력 모두 우수하며, 게임사례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도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번번히 게임에서 진다면?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가설을 세워보면 어떨까? 
[그림 1]의 경기에 참여하고 있는 K의 눈에 보이는 바둑판이 사실은 [그림 2]였다면.
상대는 [그림 1]을 보며 바둑을 두고 있는데, K씨는 평생 [그림 2]와 같은 바둑판을 보며 바둑을 둬 왔던 것이다. 바둑알이 검은 색과 흰색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죽을 때 까지 모르고 바둑을 둔다면... 정말로 억울할 것 같지 않은가?
그럴 리가 없다고?
만약 바둑알이 검은색과 흰색이 아닌, 붉은색과 녹색이라면 어떨까?
적록색맹인 바둑기사는 동일한 지능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게임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당신의 학습방법'이 [그림 2]와 같은 함정에 빠져 있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타고난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라, [그림 1]로 보면 될 정보를 [그림 2]로 보기 때문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해왔고,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시간을 들여 공부를 해도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라면?

K는 내가 둔 바둑알과 상대가 둔 바둑알을 구분하지 못하므로, 온 신경을 여기에 집중해 내가 둔 곳과 상대가 둔 곳을 하나하나 외워가며 바둑을 둬야만 한다. 우수한 기억력과 논리력, 추론능력을 가지고서 세계 챔피언은 커녕 동네 기원에서 간간히 이기는 수준으로 전락하여 살아왔다면.... ㅠㅠ(눈물이 앞을...)
정작 써야할 비범한 기억력을 엉뚱한 곳에서 낭비하느라 수를 읽고, 예측하는 데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지능을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지만, [그림 2]와 같은 학습장애는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문제는 내가 [그림 2]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뿐. 게임에서 이기고 지는 것만 중시하다보니, 내가 왜 지고 있는지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머리가 나빠서'라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다른 예로  이런 경우를 들 수도 있다.
상대는 [그림 1]을 보며 바둑을 두고 있는데, K는 [그림 3]을 보고 있는 것.
상대는 바둑판 전체를 보고 있는데, 당신은 바둑판 전체를 보지 못한 상태로 바둑을 둬 왔다면?
바둑판에서 조금만 멀리 떨어졌더라면 전체를 볼 수 있었을텐데.. 그것도 모르고 바둑판에 얼굴을 바짝 갖다대는 바람에 평생을 [그림 3]처럼 보며 경기에 참여했다면??

바둑이 아닌 스타크레프트를 예로 들면 좀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스타크레프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은 화면보다 넓은 면적의 맵위에서 게임을 진행하기 때문에, 모니터는 맵의 일부분만 보여주게 된다. 모니터에 나오지 않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게임은 Navigation을 제공하게 된다. 적 진지로 정탐을 나가 있더라도 본진이 공격받고 있는 건 아닌지 실시간으로 감시가 가능한 것은 Navigation Map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당신에게만 Navigation Map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도 안보이겠거니, 지레 짐작하고 게임을 해왔는데 알고보니 당신의 눈에만 Navigation이 보이지 않았다면? 그 때문에 게임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였던 것이라면?



[그림 4]는 어떤가?
바둑판이 너무 커서 바로 앞에 놓인 바둑알들은 잘 보이지만, 저 멀리 반대편에 있는 바둑알들은 잘 안 보이는 거다. 이런 상태로 바둑을 둔다면 역시 불리하지 않겠는가?
혹은 상대는 의자에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는데, 당신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어서 바둑판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면?
혹은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쓰고 있어서 반대편 바둑알이 보이지 않았던 거라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정말로 말도 안되는 엉뚱한 문제로 게임에서 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바둑 세계 챔피언이 되고도 남을 정도로 지능이 우수한 사람이 [그림 2], [그림 3], [그림 4]로 경기를 해, 번번히 게임에서 지고 있다면? 자신이 게임에서 이기지 못하는 이유를 '머리가 나빠서'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억울하지 않겠나?
아마도 그는 상대방이 [그림 1]로 게임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몇 승 몇 패로만 능력을 평가하지,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고 있는지 대화하지 않으므로..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모든 사람이 [그림 1]로 바둑을 두고 있을 때, 당신에게만 다른 바둑판이 보인다면? 그래서 지능은 평범한데, 자꾸만 게임에서 이기고 있다면?


예를 들면 이런 식.
상대는 [그림 1]처럼 바둑알이 모두 똑같아 보이는데, 당신 눈에는 바둑알에 특정 숫자나 기호가 보이는 거다.
바둑알이 놓인 순서라든가, 여기는 지금 위험한 상황이라든가, 다음에 어디에 놓으면 이기기 쉽다든가 하는 정보가 당신 눈에만 보인다면?


아니면 [그림 6]처럼 몇 수를 미리 놔 보는 것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당신에게 시간을 정지시키는 능력이 있어 게임 도중에 시간을 멈춘 후, 경기하던 바둑판 위에 바둑알을 이렇게도 놔 보고 저렇게도 놔 본 다음에 가장 좋다 싶은 전략을 고르고 고를 수 있게 해준다면?

[그림 6]과 같은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려면 시각화 능력이 일반인에 비해 우수해야만 할 뿐 아니라, 시각화된 정보를 모션처리할 수 있어야 하고, 각각의 중간 과정까지 기억하는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방금 전에 본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머리 속에서 떠올려서 그 안의 내용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페이지를 넘겨가며 앞에 본 내용들을 찾아 읽어보는 수준으로 머리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



혹은 이럴 수도 있다. 상대는 하나의 바둑판 위에서 경기를 하는데, 당신에게는 128개의 바둑판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상대가 A 위치에 바둑알을 놓으면 당시은 B에 놓을까 C에 놓을까 머리로 고민하는 게 아니라 128개의 바둑판 중 64개는 B에 놓고 다른 64개는 C에 바둑알을 놓은 후, 내가 B에 놓았을 때 상대가 둘 만한 곳 E와 F를 각각 32개 바둑판에 놓아보는 식으로 경우의 수를 직접 바둑판에 펼쳐놓아가며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림 7]로 머리를 사용하려 한다면 '시각화 > 모션'에 머무르지 않고, 시각화 면적을 확대해야만 한다. [그림 7]의 바둑판이 하나에서 다른 바둑판으로 전환되거나 겹치는 게 아니라, 수십개의 바둑한을 동시에 머리에 펼쳐놓고 시뮬레이션을 해야하기 때문에 두뇌에서 진행하는 시각화 면적 자체를 키워야만 한다. 보다 큰 모니터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처럼 시각화 공간 자체를 키우고 3차원 공간으로 변형하게 된다면 [그림 7]보다 더한 시뮬레이션도 충분히 두뇌로 처리하는 게 가능해진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과정을 위의 상황에 대입해보자.

당신이 원하는 점수를 받지 못하는 건, 당신의 지능이 낮아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바둑판을 [그림 2]나 [그림 3]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가?
지식 체계는 제대로 잘 구축해 놓았는데 [그림 2]나 [그림 3], 혹은 [그림 4]와 같은 형태로 보고 있어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면?
혹은 [그림 2, 3, 4,]의 형태로 정보에 접근하기 때문에 지식 체계를 구축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뿐 지능에는 문제가 없었다면 억울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