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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0과 1의 세계

by 늙은소 2004. 6. 14.
20세기는 무엇보다 인간 삶의 '물질적 조건'이 현저하게 달라진 시대였다. 17세기에 형성된 새로운 세계 인식이 20세기에 이르러 실질적인 물질적 변화를 야기한 것이다.

17세기의 과학 혁명은 함수의 개념을 탄생시켰다.
과학은 사물의 운동에서 생산이 가능한 측면만을 뽑아냈다. 이렇게 생산된 양(量)들 사이에 성립하는 일정한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과학적 세계 인식의 핵심이었다.
인간의 관심은 자신에게 주어진 양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있었고, 그 양은 다시 새로운 양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결국 자본주의로의 폭발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20세기말에 이루어진 기술 혁명은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대 기술 문명은 기계적 차원이 아니라 전자적 차원의 기술이며, 동시에 물체를 조작하는 기술이 아니라 생명체를 조작하는 기술이다. 전자적 차원의 기술은 디지털 혁명에 의해서 선명하게 그 얼굴을 드러냈다.

디지털 기술은 모든 사물을 가루로 만들어 다시 배합한다. 모든 것이, 레고블럭이 조립되었다가 해체되듯 재편성된다. 인류가 몇 만년, 몇 십만년 동안 친숙하게 보아왔던, 그리고 그와 달리 존재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이 세계, 각자의 정체성을 가진 개체들로 이루어진 이 세계는 이제 산산이 해체되려 하고 있다. 이제 하나하나의 개체가 각자의 본질, 정체성을 가지고서 존재한다고 믿었던 생각은 무너진다. 모든 형태의 배합과 조작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기술이 시뮬레이션이나 영상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실질적 사물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될 때 생겨날 가공할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프랑스의 석학인 자크 아탈리는 이러한 재조합의 세계를 레고문명으로 보고 있다. 레고 문명 속에서 정체성을 잃은 개체는 도시 유목민으로 새롭게 변화하게 된다.


기계는 인간의 외부에 존재한다. 인간이 아무리 기계들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해도, 기계들이 자신의 바깥에 있는 한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대상, 환경, 도구의 차원일 뿐이다. 그러나 생명체 자체가 기계처럼 측정되고 조작되며, 해체와 재조립되는 오늘날, 생명과 물질을 가르던 오래된 분절선은 흐려지고 개체의 내면성은 흐트러진다.(낙관적 미래관을 지닌 미래학자들은 이를 '인간과 기계의 공共진화라 말한다)
인간은 타인에 의해 둘러싸이지 않고, 이제 기계의 일부로 기계 속에 자리하게 되었다. 개체는 물질과 마찬가지로 공간과 시간이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진 함수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게 되며, 이를 위해 나를 규정지을 수 있는 나 외의 것을 요구하게 된다. 우리는 이제 타자에 대한 욕망을 자신의 일부인 기계를 통해 서로를 연결함으로써 해결하려한다. 이것을 CYBER SPACE라 부른다.

이러한 폭풍을 가속화 시키는 것은 기술이 아닌, 자본이다.
자본이 노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욕망이며, 그 도구는 상품이다. 자본은 대중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욕망을 자극시키고, 그 욕망을 채워줄 상품을 만들어낸다. 기술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하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바램이나 가치, 도덕이 아니라 자본이 제시하는 '자본의 논리'이다. 20세기초까지만 해도 엄연히 구분됐던 과학과 기술은 오늘날 한 덩어리가 되었다. 여기에 매스미디어가 가세한다.
상품의 가치는 기술에 의한 사용 가치만이 아니라 광고에 의한 상징적 가치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자본과 과학기술, 그리고 매스미디어가 형성하는 욕망의 삼각형은 확대 재생산이라는 유일한 목표를 안고서 질주한다. 21세기는 20세기의 자본주의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며, 새로운 얼굴로 탈바꿈한 것에 불과하다.

0과 1로 이루어진 세계는 아직 꿈dream이 되기에는 너무나 유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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