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작품에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문학작품은 창조적 작가의 욕망의 산물이며 번득이는 영감에 의해 생산된 것이어야만 한다. 해당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나 구조적 차별화, 작가의 의도, 시대적 요구와 같은 것들은 '골치 아프다'는 이유로 떠밀리기 일쑤이다. 그러나 작품은 단 하나의 기준으로 위치지어지지 않는다. 인물들의 이야기가 작품의 전체일 수 없으며 그것이 유일한 재미일 수도 없다. (또한 재미가 책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도 안된다)
빛은 입자적 성향과 파동의 성향 두 가지를 지니고 있다. 나를 구성하는 물질이 나를 규정할 수도 있지만, 내가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이 나를 규정하기도 한다. 전혀 다른, 낯선 기준들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좌표를 이루고 그 때에 비로소 각각의 개체는 유일한 자신의 위치를 점유하게 되는 것이다.
보르헤스의 단편집에는 이와같은 방식의 의도적인 왜곡, 형식 자체를 소재로 삼아버리는 구조 등이 자주 선보인다. 그리고 이 방식은 근대 이후의 수학, 특히 무한론과 괴델의 결정불가능성 명제 등과 동일한 축을 이룬다.
20세기에 우리는 안전하고 견고하던 유클리드 기하학의 외면으로 나아갔으며, 우주는 휘어진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4차원을 이야기하였고, 블랙홀의 공간을 상상하려 애쓰게 되었다. 이것은 숫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모습이 우리가 즉각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손쉬운 형태에서 이탈했다는 의미이며 형태와 구조, 공간이 사유의 흐름을 압도했음을 의미한다.
보르헤스는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이기를 과감히 거부한다. 그는 이야기를 하나의 도구로 삼아.. 그 이야기를 쫓아가는 사고의 흐름이 그가 만들어 놓은 미로를 따라 휘어진 공간을 이동하고, 그것이 서로 맞물리게끔 함으로써 우리의 사유가 뫼비우스의 띠가 되게끔 한다. 그는 훌륭한 이야기꾼이기보다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이며 설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마치 자신이 쓰지 않은 것처럼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서 익명으로 소설을 발표한 것이 바로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가지 사건'이다.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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