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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요리열전 & 읽기과 쓰기

by 늙은소 2006. 10. 28.

1.
일주일 전 토요일, 대구에서 한우 세트가 도착했다. 작년에 일을 해주며 알게 된 축협 부장님께서 챙겨먹으라며 보내준 한우고기였다. 상자 안에는 갈비와 부채살, 사태까지 하여 2kg이 조금 넘을 듯 싶은 고기가 들어있었다. 바로 그 직전 추석에 고기 좋기로 유명한 양평 당너머에서 소 앞다리뼈와 등심을 20만원어치 사서 부모님께 보내드린 터라, 이번의 고기는 그냥 여기서 먹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부채살은 버섯, 양파와 함께 구워 보았다. 월요일에는 갈비찜을 만들었다. 인터넷으로 요리법을 찾은 다음 필요한 재료를 사고 본격적인 요리에 들어갔다. 무와 당근, 감자, 대파, 양파 등을 다듬고, 일부는 국물을 우려내는 데 사용하였다. 갈비를 일단한 번 삶고, 다시 양념장에 담근 후, 육수를 붓고 푹 익히는 것이다.

고기 삶은 물이 제법 진하기에 갈비찜 육수로 사용하고 남은 절반을 소고기 무국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사태가 제법 양이 많아서 동시에 소고기무국까지 끓이기로 하였다. 그런데 무가 너무 많이 남는다. 갈비찜와 무국에 넣을 무는 1/4로 충분했다. 남은 3/4개의 무로 할 만한 요리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결국 깍두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무를 큼직하게 썰어 소금에 살짝 절인 다음 고춧가루에 버무려 물을 들여놓고는 다음날 마트에 가서 까나리액젓과 생강을사들고 와 본격적으로 깍두기를 담그었다. 이틀 뒤, 남은 사태로는 장조림을 만들었다. 청양고추와 통후추, 생강, 마늘, 대파, 메추리알 등을 넣어 만든 소고기 장조림은 짜지 않게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태어나 이렇게 음식을 많이 만들어본 것도 처음이려니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들만 골라가며 하였다. 화요일에 만든 깍두기는 이제 제법 맛이 들어 내가 만든 게 맞을까 싶게 맛이 좋다. 내일 무를 두 개 더 사다가 한 번 더 만들어보려 한다.

2.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있다. 도착한 5권 중 2004년 것부터 먼저 읽기 시작하였다. 어려서 흠뻑 빠져들어 보았던 '영원한 제국'이 생각나 이인화씨가 수상한 2000년도 것에 눈이 가긴 했지만, '칼의 노래'를 사서 볼 것이냐 망설이던 중이라 김 훈씨가 수상한 2004년도부터 읽기로 한다.

현대국문학을 읽은 것이 워낙 오랜만이라 그런지, 책에 몰입이 되기보다는 자꾸만 분석적이 된다. 이런 문체가 요즘 흐름인건지, 아니면 흐름이라길래 너도나도 다 이렇게 가려 애쓰는 건지.. 새로운 시도라는 작품들이 제옷이 아닌 양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어려서 보았던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은 형식이나 문체에 시선이 가지 않고 그냥 흡수되었던 것 같은데, 왜 지금은 소설의 바깥만을 떠돌게 하는지...

특별상 수상작인 문순태의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는 작가의 나이때문인지 과거의 것 같은 느낌이 강하였다. 그것이  과거이고, 지나치리만치 익히 느껴오던 전개이기에 실망스러우면서도..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리고 만나지 못하였던 단어와 표현들, 강한 사투리의 냄새때문에 '이것이 한국문학이었지, 이것이 우리 말이었지..'를 생각하게 한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역시 구매목록에 넣어만 두고 있던 책이라, 마지막에 실린 박민규씨의 단편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는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장편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3.
독문과에서 개설한 교양수업이 있었다. 3학년 1학기에 함께 어울려 다니던 무리들과 우르르 그 수업을 신청하였었다. 일반적인 교양수업과는 분명 다르며, 여러가지를 깨달을 수 있을 거라는 선배의 조언 때문이었다. 강좌명은 '독일문학의 이해'라는 평이한 것이었지만, 담당교수는 결코 평이하지 않았다. 독일에서 '무질'을 전공하고 돌아온 그는, 독일 문학을 가르친다기보다는 강의를 들으러 온 학생들의 정신과 과거, 영혼을 파헤치려는 듯 공격적인 태도로 수업을 진행했다.

교재라고 할 것은 없었다. 특정한 작가의 작품을 분석하는 일도 없었다.수강생들이 써온 페이퍼가 수업의 교재였다.글을 쓰는 일이 의무적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자신이 꾼 꿈을 기록하기만 하면 되었다. 꿈의 주인이 해석을 달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교수)의 해석이었다. 그는 제대로 된 정신분석을 하는 것도 아닌, 지극히 주관적인 방식으로 타인의 꿈을 해부하였다. 페이퍼에 있는 오타를 트집잡아 꿈의 주인을 속되게 만드는가 하면, 때로는 유아적인 단계에 머무른다며 질타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꿈 주인들은 얼굴빛이 변하였다. 그것은 페이퍼를 작성한 이들에게만 해당하지 않았다. 다른 이의 글이 무참히 깨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몇 줄 안되는 글만 가지고 터무니없다 싶게 한 사람을 난도질하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도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경꾼도, 광대도 모두 서커스 단장앞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는 것이다. 일주일 단위로 학생들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어갔다.

나도 페이퍼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내 글은 단 한 번, 꿈의 기록이 아닌 특정한 시에 대한 해석문 외에는 발표되지 않았다. 내가 기록한 꿈의 기록은 그에게 채택되지 않았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의 사정없는 공격으로부터 보호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수치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당혹스러웠다.

그의 무자비한 공격을 처음 목격한 이후, 페이퍼를 가벼운 마음으로 쓸 수 없음을 직감했다. 꿈을 기억해내고 이를 기록할 수는 있지만, 그 내용이 암시하는 바를 잘 알기에.. 그것이 나의 과거와 현재를, 내 가족의 아픔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드러내기에 함부로 쓸 수 없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정도의 글을 써야만 '나를 예단하지 말라'는 위협이 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서기도 하였다. 나는 후자를 택하였다. 정신을 도륙하는 글을 쓰자고 작심을 하고 달려들 듯 글을 써내려갔다. 세편 정도 꿈의 기록을 제출한 다음, 벗기고 찢어놓는 것만 같은 글쓰기를 더 진행할 수 없다고 깨달았다. 학기를 휴학하기로 결심하고 그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직접 대화를 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네 글은 너무 무거워 다른 학생들이 받아들이거나 이해하지도 못할 듯 해 공개적으로 채택할 수 없었지만, 난 그 글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것이 그날 그가 내게 보인 아쉬움이었다.

2년 반 뒤, 다시 수업을 선택했다. 집에서는 독립을 하였고, 어느 정도의 수입과 제법 강인해진 정신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졸업을 위한 마지막학기에 끝내지 못한 수업을 마무리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4.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가 쓴 첫소설을 수업교재로 삼았다. 학생들은 그 소설이 난해하다고 말하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나 복잡한 문법이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간적 진행이 뒤섞인데다 꿈과 현실이 뒤죽박죽이어서 그리 느껴졌을 것이다. 소설이 난해해서가 아니라, 그 글을 쓴 소설가가 바로 우리 앞에 있기에 당혹스러웠다고 해야 옳았다. 그 소설은 아름답지도, 흥미진진한 사건을 품고 있지도 않았다. 픽션이라기엔 거의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그의 개인사였고, 그의 약점과 현재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당혹스러움이 거기 있었다. 글의 난해함이 아닌, 상황의 난해함이었다. 그는 자신이 쓴 두 번째 소설-첫 번째 소설과 연결되는 또 다른 글을 나에게 주었다. 책을 내며, 나의 서평을 함께 싣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몇 사람의 지인들에게 그런식으로 서평을 받아 그는 책을 출판했다. 당시에는 나 역시 그의 글을 조금 난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황의 난해함과 함께 글의 난해함까지. 그의 소설은 말장난을 즐겼고, 어휘의 닮음과 다름,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닮은 단어들에 집착하였다. 
최근 김훈의 '화장'을 읽으니, 그의 소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가 떠오른다.

5.
그의 수업은 학생들을 깨부수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이해하려는 것도아니었다.  그것은 글을 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꿈의 주인에겐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이고, 그 꿈이 자신만의 것인양 생각되겠지만,'나'를 알고 싶다면 제대로 된 정신분석가를 만나거나 해몽 잘 하는 이를 만나야 옳았다. 우리는 서로의 꿈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멋대로 해석하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면 그만이었다. 그는 그런식으로 글을 썼고, 영화를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의 소설은 그이기도 하지만, 그가 아니기도 하다. 내 글은, 그리고 나의 꿈은 나이기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