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을다 읽은 다음,2005년과 2000년을 번갈아 읽고 있다.
2005년은 대상수상자가 아닌 우수상 수상작 두 편에 눈길이 간다.
한 사람은 박민규이고, 또 다른이는 이만교이다.
박민규의 '갑을 고시원 체류기'는 97~98년 사이 내가 체험한 고시원의 풍경을 오랜만에떠오르게 하여그 시절의 외로움과 서글픔이 되살아났고, 이만교의 '표정관리 주식회사'는 나 역시 겪고 있는 관리 안되는 표정의 문제를 파고들고 있어 반가우며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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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씨는 타고난 표정의 진실성 때문에 꽤나 삶이 어려워진 인물이다.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이 얼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데다 순식간에 얼굴과 귀, 심지어 뒷목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탓에 자기 감정을 일체 속일 수 없던 것이다. 결국 그는 거짓말을 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그는 순진하고, 남을 속일래야 속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씨는그런 이유로 왕따가 되고, 그런 이유로 놀림감이 되었으며, 또 그런 이유로 실연을 당한다.
이런 씨가 자신의 표정을 어떻게든 감정과 분리시켜보겠다며 표정관리법 서적을 탐독하고, 병원을 찾아다니고,표정관리 학원에 등록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이 소설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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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표정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 편이다.
얼굴 표정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목소리와 발음, 말의 속도, 몸짓과 얼굴 색 등 몸의 모든 곳에서 내가 겪고 있는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 분노를 고스란히 배출해내는 것이다.
화가 났음을, 놀라고 있음을,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는 자신이 들켜 어찌하지 못하는 것을, 표정을 관리하지 못해 낙담하고 있음을, 화난 것을 애써 참느라 표정이 굳어짐을 느끼면서도 안그러척 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나곤 하였다.
이것이 조금 더 심해지면 손이나 머리가 조금 떨리기 시작하는데, 그 때 쯤이면 애초에 당황하게 만들었던 사건의 핵 보다는 당황하고 있는 내 자신을 추스리려다 그것이 실패하여 더욱 당황하게 된다. 긴장의 원인보다 긴장 그 자체가 더 큰 긴장감을 유발하는 것.
얼마 전 있었던 강의에서도 그랬다.
기획 시니어급 대상이라는 말에 큰 부담감으로 준비했던 강의였는데, 애초에 방향이 조금 어긋나 있었던 것이다. '기획자'의 정의에서 오류가 있어, 그들이 필요로 하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와 다른 강의를 준비하고 말았다. 몇몇은 이해했겠지만, 대체로는 어려웠을 것이며, 너무 깊이 들어간 것도 문제였다.
첫 페이지를 열고 시작하는 순간부터뭔가 잘못됐음이 강의실 공기를 타고 전해졌다. 그 때부터 긴장하기 시작하여,중간중간 시계를 봐야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마구 빠른 속도로 전반부를 해치우기 시작했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빠르고도 작은 목소리로.
1시간 20분했어야 하는 내용이40분만에바닥나고 말았다. 잠시 쉬는 시간을가진 다음, 2부를 진행하고, 다시 시계를 보았다. 한 시간 반이나 남았다. 3부는 짧게 할 생각으로 준비한 30분 분량이 다인데,남은 한 시간 반을 어찌 채워야할 지 막막했다. 그러나남은 30분의 분량 마저도 철저히 실무자 중심이었던 탓에 이 내용으로 한 시간 반을 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도 함께 있던 후배가 조언을 해주어 나머지 시간 동안 실무에서 겪은 여러 이야기를 풀어가며 강의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날시작부터 당황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나심하게땀을 흘리면서 말을 더듬지는 않았을 것이다. 늘 해오던 브랜드 디자인 전략 강의는 이제 익숙해져서 강의 교재를 보지 않고도 술술 풀어나간다. 수강생의 이해도나 관심도를 쉽게 파악하여 그 난이도를 조절하거나 강의교재의 완급 조절도 잘 되는 편이다. 그만큼 오랫동안 반복하며 계속 강의자료가 축적되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강의를 마친 후, 후배를 만나 어려움을 토로하며 말했다.
'나는 내가 강의를 아주 좋아한다고 늘 생각해왔어.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을 즐긴다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만족스럽게 강의를 했던 적은 거의 없거든? 늘 사람들은 나에게 말이 빠르다, 목소리가 작다,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며 작은 항의를 하기도 했고, 난많은 것을 가르치겠다는 욕심에 무리하게 강의를준비하곤 했지.실상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돌아올 때가 많았어. 강의를 하는 순간에도 그 느낌은 전달이 되지. 내용이 좋긴 한데, 너무 이것저것 많이 준비해서 오히려 지루해한다는 느낌이 전해지거든. 그러면 난 또 당황해하면서 이것저것 빼고 좀 더 쉬운 것을 가르쳐야지.. 그 생각만 하는거야.나는 나를조금은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강의할 땐 왜 농담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건지.. 난 정말 강의를 좋아하긴 하는 것일까?'
'언니는 말 보다는 글이 더나은 것 같아' 라말하였던그 후배는 '언니는 누군가 가르침으로써 스스로 우월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과시욕구가 부끄러움보다 큰 모양이지' 라 답하였다.
그럴 수 있을까? 강의를 하는 내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당황하고 땀을 흘리고 말을 더듬으면서 동시에과시욕구를 지닐 수 있을까? 나는 숨고 싶은 것인가, 드러나고 싶은 것인가?
...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될 때, 스스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다고 판단될 때.. 그럴 때 나는 더욱 당황하고 작은 실수에도 어찌할 바를 몰라 난감하고 부끄러워함을 모두에게 드러내곤 한다. 그럼에도 이를 고쳐보겠다며 끊임없이 발표를 자청하고, 앞에 나서기를 절대 피하지 않아 오늘에 이르렀는데.. 이제 많이 나아졌다고 내심 안심할 때면 누군가 등장해 '너무 떠는거 아니냐' 지적하고 만다.
일 할 때 지나칠 정도로 심각한 표정이 되는 것도 '화난 사람 같아 보여서 함부로 말을 못 붙이겠다'며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일에 몰두하는 것 뿐인데 나도 모르게 그런 표정이 되나보다. 억지로 웃으며 일을 하려고 해보지만,억지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음을 내 근육이 나에게 말해주어 더욱 경직되고 만다.어쩌면 일하며 노래를 부르거나 혼잣말을 하는 것, 썩 가깝지 않은 사람들과 있을 때 쉼 없이 떠들고 말장난을 하거나 친한 척 장난을 치는 것도 모두 표정의 단점을 극복해보고자 스스로 제안한 해결책인지 모르겠다. 사람들과 융화하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모르니, 자신을 우스갯거리로 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번에 그 수다스러움을 문제삼는다. 내면의 부끄러움을 보지 못하는 이 눈치없는 이는 '지적 허영', '관계 집착형' 이라는 식으로 싸잡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지 않아 나는 여전히 난처하다. 그리고그 부끄러움을 고스란히 얼굴의 표정과 붉어진 빰과 경직된 목의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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