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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The Prestige - 마술의 경계에 대하여 묻다

by 늙은소 2006. 11. 11.

프레스티지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휴 잭맨,크리스찬 베일

개봉 2006.11.02 영국,미국, 130분

.

어린 시절 내게 마술쇼는흔히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각 방송사는 추석과 연말, 설 연휴와같은 특별한 날에 외국의 마술쇼를 방영해주곤 했는데, 우리의 눈길을 가장 오래 사로잡은 것은 역시 데이빗 카퍼필드였다.

나는 어린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술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모든 마술은 '눈속임'일 것이 분명했다. 내가 접한 마술은 TV 브라운관을 통해서였고 그나마도 생방송이 아닌 해묵은 테이프를 틀어주는 것에 불과했다. 트릭이 들어갈 자리는 너무 많았다. 무대와 카메라의 눈속임, 편집 과정에서의 농간 등.. 기만과 거짓이 파고들 틈은 충분했다. 나는 절대 속지 않겠다 다짐하며 마술을 구경하였고, 그러한 시선 속에는 거짓을 만들어내는 비밀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이 있을 뿐이었다.

몇 년 뒤, 유리겔라가 찾아왔다.한국까지온 그는, 국내 방송사에출연하여 생방송으로 숟가락을 구부리는 마술을 선보이며 전국을 흥분시켰다. 다음 날부터 반 아이들은 도시락을 먹는 용도가 아닌 숟가락 구부리는연습도구로 삼았다.

연극적 효과를 도입해 마술을 기술이 아닌 극적 재미로 인식하게 하였던 데이빗 카퍼필드는 몇 년 뒤부터 거대한 물체를 사라지게 하는 등 스케일이 큰 마술을 선보이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거짓이리라 확신하면서도 대체 그 거짓을 어찌 이루어내는 것인지, 그 비밀과 비밀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이를 지키는 그의 능력이 오히려 더 마술처럼 느껴졌다.

마술을 초능력의 세계로 인식하는 것은 아이들 뿐이다. 그나마도 영악한 아이는 속지 않겠다며 일찌감치 마술사를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며 자신의 어른스러움을 과시한다. 그럼에도 마술사의 묘기에 감탄하고 박수를 보내는 것은 그 거짓의 비밀이 우리가 허용하는 상식의 범위와 우리가 도달한 기술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능히 알 수 있는 영역에 있지만 우리가 알 수 없는 그들의 비밀.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안전함을 기반으로 한다. 만약 그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닌 두려움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관객의 시선에는 트릭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과 트릭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공존한다.

...

두 사람의 마술사 '엔지어'와 '보든'. 그들은 새로운 마술을 선보이려다연거푸 실패를 거듭한다. 그들의 실패를 보는 것이 낯설고 불편하다. 지금까지보아 온 마술은 모두 성공하기만 하지 않았던가. TV를 통해 보는 마술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방송국이 성공한 것만 방영하니 -그러나 이들은 실패하고 상처입으며 마술의 영역을 이탈한다.

보든의 트릭은 지나치게 허술하고, 그 허술함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소모적이다. 보든의 트릭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자기파괴가 있는데그것은 마술의 완성도가 아닌, 비밀의 지속을 위해 자행된다. 그가 지키고 싶은 비밀은마술의 트릭이아니라, 그 트릭이 대단치 않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이다.

반대로 엔지어는 마술의 경계를 넘어 초 능력의 공간에 도달하는데, 이는 지나친 도약이었다. 영화는 마술사의 이야기로 시작해, 더 이상 마술사가 아닌 두 사람으로 끝을 맺는다. 보든과 엔지어 두 사람은 모두 마술의 룰을 어긴다. 그리고 영화 역시 룰을 어기기는 마찬가지이다.

프리스티지가 실망스러웠던 것은 마술사의 실패가 보기 불편한 것처럼, 영화의 트릭이 너무 쉽게 노출된다는 것에 있다. 보든과 엔지어의 트릭, 영화의 대미에 밝혀져야 할 반전은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차라리 트릭이 아닌, 그들의 집념과 소모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그들의 경쟁심을 더욱 부각시켰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엔 영화가 마술쇼에 가까웠고 소모적인 볼거리가 너무 많이 등장한다. 두 사람이 마술의 경계를 벗어난 것처럼, 프레스티지는 자신이 머물렀어야 할 경계를 이탈했고, 그것이 영화의 즐거움을 반감시키고 만다.

이 영화에게 당신의 무대는 어디인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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