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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싸움은 기술인가?

by 늙은소 2006. 11. 29.

12월의 날씨치고는 제법 따뜻한 편이라 말하였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로 작정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이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인지 날씨는 서둘러 추워진 탓에 어딘가 어색한 느낌으로 폐 속에 찬 공기를 들이밀었다.

싸움의 기술이 부족한 나는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라지금의 상황을 냉정하게 돌아볼여유가 없었다. 걸치고 있는 옷 외에는 소지하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12월의 추위와 이제 밤 12시가 되리라는 사실 중 무엇을 더 걱정해야하는 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3일 간 함께 있을 수 있다며 짐이 가득 든 가방과 함께 집에 들어선 것이 몇 시간 전의 일이다. 함께 봤으면 싶다고 그가 가져 온 DVD는 다큐멘터리라 지루했다. ‘로셀리니’의 경우는 그가 감독한 영화 중 몇 편을 본 기억이 있었고, ‘잉그리드 버그만’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어 지루함이 덜했으나 ‘비스콘티’나 ‘파졸리니’, ‘데시카’의 경우는 생소했다. 그들의 작품을보지 않았다는 이유가그 시간이 힘들게 한것은아니다. 영화사적인 지식이 있었더라면 그것으로도 즐겁게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지식마저 없었다. 어쩌면 그런 기회와 여유가 없었다고 항변해야할 지도 모를 일이다.
흑백의 화면은 21인치 텔레비전을 액자의 틀 삼아 자유롭게 움직이는데, 나는 생경한 이탈리아어의 빠른 리듬을 ?아가는 것이 버거웠다. 이것이 단지 그와 내가 공유할 수 없는 몇 시간만의 문제인 것일까?시간들은 열을 지어 늘어서고, 그것은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그와의 거리처럼 느껴졌다.

두 편을 연속해 본 다음 우리는 허기짐을 달랠 겸, 앞으로 함께 할 3일간의 식량을 보급하자며 집 근처 할인마트로 향했다. 나는 오늘 막 읽기를 끝낸 책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비교적 책에 관한 한 잘 통하는 편이었는데, 유독 소설에 있어서만은 의견이 다를 때가 있었다. 그것이 조심스러웠다. 그가 나를 평가할까봐 두렵기도 하거니와, 역으로 그의 반응이 나를 실망시킬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스스로 책에 관한 대화를 검열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그가 좋아할 만한 책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였고, 그가 좋아할 만한 부분을 조금 과장하며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책은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졌으며각 인물들의 에피소드들이 재미있는 편이었고, 무엇보다 그와 나 모두 좋아하는 퍼즐처럼, 여러 조각들이 작가의 트릭에 따라 해체되어 있어 그것을 끼워 맞추는 재미가 쏠쏠한 그런 소설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찬 공기 때문인지, 바로 직전 막연히 느끼던 거리감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는지 나는 조금 흥분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가 소설에 흥미를 느껴 읽어보도록 자극만 줘야할지, 재미있는 부분을 모두 얘기해주며 함께 대화를 하고 싶은 건지 길을 잃은 것이다. 길 잃음을 그도 알았던 것인지, 그의 반응은 생각보다 냉담했다. 이미 마트 안이었고, 우리는 지하의 식품코너로내려가고 있었다. 마트는 너무 더웠다. 급히 추워진 날씨를 걱정하며 두꺼운 외투를 입은 것이 문제였을 수도 있다. 급격한 온도 변화 탓일 수도 있으며 그의 차가운 말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화에 사로잡혔다.


물건을 사며 옥신각신하기 시작하다가 급기야 사람들이 있는 식품매장에서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하기에 이르렀다. 싸움을 오래 하는 것이 서투른 나는 늘 일단 자리를 피하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홀로 있는 방식을 택하곤 하였다. 물론 어떤 때에는 오히려 그것이 더 상황을 안 좋게 하기도 하지만, 화난 순간 쉼 없이 상대가 몰아세우면 나는 궁지에 몰린 병사마냥 필요이상 ‘화난 상태’에 함몰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 자체와 그런 나를 바라보는 상대방의 표정, 주위의 시선들.. 이 모든 것에 또 다시 나는 화가 났다. 화난 상태의 흥분을 마치 즐기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온전히 ‘화난 사람의 그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가 뒤따라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재빠르게 걸으면서 신경은 온통 뒤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쏠렸다. 그가 나를 따라잡기로 결정했다면 지금 이렇게 걸어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결국 그는 나의 팔을 잡아챌 것이고, 그렇다면 잠깐의 휴전은 허용되지 않을 게 뻔하다. 그에게 화가 났다는 사실과 나를 화나게 한 원인보다는, 잠시의 휴전을 허용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나는 더 신경이 쓰였다. 그가 따라오면 어쩌나 걱정하면서도끝까지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그가 따라올 경우,뒤 돌아본다고하여 그가 속도를 늦출 까닭이 없었다. 그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괜히 그를 자극해 따라오게 만들 필요는 없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뒤돌아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는 것은언제나 안심하고 싶은 마음,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나 성경에서 뒤 돌아보는 행위에 처벌을 가하는 것은 호기심을 억제하라거나, 부과한 명령을 철저히 지키라는 의미보다는 어쩌면 이러한 사실. 뒤돌아보는 것이 보여지는 대상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함은아닐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행위임에도 스스로의 궁금증과 자신의 무사함을 안심하기 위해 취하는 행위는 '호기심'과는 또 다른 영역일 것이니... (이런 상황에서 나는 참 잘도 이런 생각을 한다)

지하 계단 앞에서우측으로 꺾어 황급히 지하철 입구로 들어선다. 그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나를 뒤따라 올 경우를 대비한 대책이었다. 정 어렵다면 여자 화장실에라도 들어가 잠시 홀로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설마 안에까지 따라들어와 조금 전의 상황을 대화로 풀자며 나를 들볶기야 하겠는가.
여자 화장실에서 한참을 보냈으나 바깥은 조용하였다. 조심스럽게 바깥으로 올라온 다음, 한 번도 들어가 본 일 없는 H-파크로 들어섰다. 집 열쇠와 지갑이 모두 그에게 있는 터라 몇 시간씩 길거리를 방황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 아니었다면, 한 겨울이 아니었다면 그를 걱정시킬 심산으로라도 몇 시간을 버텨볼 수도 있을 것인데, 그러기에는 상황이 척박하지 않은가. 이참에 H-파크의 복도는 어떤 모양인지, 현관문은 어떻게 디자인되어 있는지 보기라도 하자며 건물로 들어갔다.

잘못된 입구였는지, 혹은 지나친 것인지 엘리베이터가 보이지 않는다. 좌측으로 빠져나온 복도는 주차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다시 들어가 찬찬히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도 있으련만 건물 경비원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동네 주민마냥 차려입은데다 내가 누구인지 그가 알 리도 없건만 괜한 자격지심에 다시 돌아갈 용기를 잃고 말았다.

그 때, 멀티플랙스 극장이 떠올랐다. 동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멀티플랙스 영화관이있던 것이다. 평일이니 심야상영은 하지 않겠지만 아직 극장 대기실은 개방되어 있지 않을까? 들어가서 영화 팜플렛을 읽다보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날 것도 같았다. 만약 그곳 직원들이 나를 수상하게 보면 어쩌지?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을 하고 나오는 바람에 아무 것도 없다. 바로 들어가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조금 시간을 죽이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어느 정도 먹혀들지는 않을까? 결혼 근처도 못가봤으면서 ‘부부싸움’이라는 말을 내 입에서 꺼내야하나 잠시 머뭇거려진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 그런 거짓말에도 왜 이리 주저하게 되는 것인지, 아버지 직업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에도 대충 얼버무리거나 약간의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나는 늘 그것이 서투르고 어색하며, 잘못을 저지르는 것만 같아 끝내 하지 못하였다. 그래 수상한 자 취급을 당할망정 ‘부부싸움’같은 표현을 뒤집어쓰지는 말자 다짐하며 극장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버튼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영업시간이 종료된 것이 분명했다. 낙담은 했으나, 1충에도 작은 쇼파와 영화 팜플랫 진열대가 있었다. 잠시 그곳에 앉아 이제 막 개봉한 ‘킹콩’에 대해 읽어보기로 했다. 앞 면을 대충 훑고 뒤를 넘기는데 손에 기분 나쁜 액체가 느껴진다. 음료수일 것이라는 생각은 보기좋게빗나갔다.그것은 침이었다. 극장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동네의 극장은 늘 한산했고, 극장이 입주한 이 건물의 1층 상가는 나날이 폐점이 늘고 있었다. 죽어가는 건물의 1층,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팜플랫 진열대에 침을 뱉는 사람이 있는 것도 그리 어색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 침이 지금 내 손바닥에 묻어있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면 불쾌한 느낌이 덜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침이 묻은 왼 손을 주욱 뻗은 채 서둘러 화장실을 찾았다. 남녀 화장실이 갈라지는 중간 지점에 술을 과하게 마신 50대 초반의 남자가 비틀거리며 서 있다. 그는 누군가 기다릴 사람이라도 있는 양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의 눈치를 살피느라 화장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내 심정을 그가 읽는 것 같았다. 들어갈 테면 들어가 보라는 그의 태도가 걱정스러웠지만 근처에는 아직 문을 연 식당이 있었고 무엇보다 손바닥의 침을 씻어내는 것이 더 중해보였다.


손을 씻은 후,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노력하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 시간에도 종종 물건을 사거나 산책을 위해 홀로 걷는 일이 많은 거리였다. 자주 걷던 조그만 동네임에도 그 안에서 평소 가지 않던 좁은 골목을 택하고, 들어가 보지 않은 건물 안을 파고드니 장편 로드무비마냥 주변이 낯설고 어딘가 위험한 느낌까지 스며든다. 술 취한 중년들은 왜 이리 많은 것인가. 그들의 흔들리는 시선이 왜 이리 두려운 것인가. 그것이 애인이든, 친구이든, 후배이든.. 동지가 한 명 더 있었더라면 제법 즐거운 버디무비가 될 것인데 홀로인 것이 생각 외로 사람을 겁쟁이로 만드는 듯하다.


집에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몇 층을 누를 것인가 잠시 망설이다가 한 층 아래를 눌러 내리고 말았다. 그가 집 문 앞에 있으면 어쩌나, 아직 어떤 표정으로 그를 마주해야할 지 결정하지 못하였다는 생각 때문이다. 복도를 서성이다가 다시 또 한 층 아래로 내려갔다. 어느 집에선가 개가 큰 소리로 짖어댄다. 이런 곳에서 개를 키워도 되는건가? 고양이를 키우는 입장에도 큰 소리로 짖는 개와 그 주인을 질책해 본다. 결국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집 문 앞에 그는 없었다. 나를 찾겠다며 거리를 헤매고 있을 지도 모른다. 혹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내가불쌍한 표정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거 보란듯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추위에 굴복한 나를 비웃을 것이다.호흡을 가다듬고 초인종을 누른다. 내 집 초인종을 누르기는 몇 년 만인 것 같다. 문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복도 저쪽에서는 가쁜 숨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참을 찾아 헤매다 혹시나 싶어 집으로 와봤다는 그였다. 그래도 우리는 타이밍이 맞는 것인가.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을 입 밖으로 소리내어말하지 않는다. 내가 그때 이미 화가 풀려있었다는 것을 그가 알아채지 않도록.

그런데 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화가 났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