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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이해를 구한다는 것에 대하여

by 늙은소 2007. 2. 14.

납덩이처럼 무거운 마음이 그 무게에 미치지 못하는 작은 이해를 구하기 위해 사용될 때가 있다.


삶에는 작은 이해를 구해야하는 때가 종종 발생한다.

'개인적인 사정'이라는 말로 곧잘 포장되곤 하는 사건들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애매한 사연들을 감추고 있기 마련이다. 설명이 곤란한 것은 그것이 개인적인 치부와 관련 있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내용보다 말하여지는 방법의 문제가 더 복잡하여 입을 다물어버리게 되기도 한다.


말을 해야할 것인가의 갈등은. 주어진 규정을 어기거나 자신이 해야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을 때에도 찾아온다. 비록 그 크기가 작다 할 지라도 이해를 구하는 것은 결국 거래와 같아 적당한 댓가를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다. 그 댓가란 대체로 왜 그리 하였는지 자신을 이해시키라는 요구와, 다시는 그리 하지 않겠다는 서약와 반성하는 태도를 묶어 패키지를 만든다. 그를 '이해'시킬 것인가..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둘러댈 것인가..

잠시 갈등하지만 사람들은 늘 후자를 택해 왔고, 대부분의 경우 일은 여기서 마무리 된다.


간혹 '대체 그 개인적인 사정이 뭐냐, 들어나 보자'며 되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럴 때가 참 난감하다. 대체 저 사람은 타인의 개인적 사정을 이해할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해 저리 물어보는 것인지. 한 사람의 개인이 감당하고 있는 사정의 무거움이 어느 정도에 이를 수 있는지 생각해 보긴 한 것인지..진정으로 나를 이해하고 싶은 것인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인지...


이 과정에서 자칫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될 경우 더러운 기분을 맛 보기 쉽다.

별 것 아닌 작은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 이런 것까지 말해야 했을까 돌아서며 참담함에 사로잡혀야 했던 기억들. 그것이 구걸하는 자의 비굴함과 다르지 않음을 떠올리며 수치스러웠던 순간들. .

상대가 기대한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투적인 사연을 듣고자 할 뿐이다.

결국 사람들은 라디오 사연을 듣듯, 남의 사연을 듣고 싶어한다. 이해하기 어렵고 무거움이 압도되는 이야기가 아닌, 적당히 신파적인 쉬운 이야기들을... 결국 모든 것이 잘못된 거래였다. 10을 얻기 위해서 10만 내놓으면 될 것을.. 1000을 내놓은 꼴이 아닌가.


이보다 더 기분이 더러운 것은 이해를 얻기 위해 한 말이 변명거리로 취급되었을 때이다. 애초에 그의 '이해시키라'는 요구는 허울 뿐이었다. 그것은 거래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명목 상으로는 무슨 사정이 있는지 들어보고 판단하겠노라 이야기 하였지만, 정작은 나를 불러놓고 화를 내고 훈계를 하겠다는 목적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자리였던 것. 그는 10조차 내놓을 생각이 없는데 1000을 쏟아부었으니 어찌 기분이 더럽지 않겠는가.


...

'후르츠바스켓'이라는 만화는12지 신의영향을 받아동물로 변신하는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만화에는 인물 중 한 아이가 학교에서 심한 이지매를 당하는 내용이 나온다. 아이들의 수군거림과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여 정신적인 상처를 입은 아이는 더 이상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며칠 뒤 담임의 편지가 집에 도착하는데, 그 내용이 이러했다. '많이 힘들지, 선생님은 네가 얼마나 힘든지 이해할 수 있단다. 하지만 힘들어도 네가 친구들에게 좀더 다가서려고 노력한다면 좋아지지 않겠니...' 그 만화에서도 이 편지는 꽤나 심한 소리를 듣는데, 누구나 할 수 있는 다정한 말 몇 마디로 지금 이 상황이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로 이해하고 있다면 이런 편지 따위는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이들은 소리친다.


사정을 들어보자며 파고드는 유형 중에는 이런 식의 착한 사람들이 포함된다. 네가 다가서면 되지 않겠니와 같은 태도. 친절하게 웃으며 조금만 행복하려고 노력해보렴.. 을 반복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나눠보자며 이야기를 해달라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봤자 난처해 하는 표정만보일 뿐.. 손잡아 주는 것 같은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

개인적 사정 때문이라 이야기하면 더 이상 캐묻지 않고 거기서 계약이 완료되는 관계. 그 암묵적인 관계와 대화들이 차라리 더 현명하다는 생각을 가끔은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