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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다섯째 아이 - 도리스 레싱

by 늙은소 2007. 2. 5.

다섯째 아이(세계문학전집 27)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도리스 레싱 (민음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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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동안, 구매하는 책의 수는 읽는 책의 수를 상회하였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을 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책 읽는 열정이 미치지못할 뿐이다. 5~6권을 사면 그 중 2권 정도 읽는 속도로 몇 년을 보내다보니, 읽지못한 책의 수가 100권이 넘는다. 가끔은 책장이 무덤처럼 느껴진다. 책은 비석이 되어 자기의 자리를 지킨다. 이름으로만 기억되는 사람들처럼, 내 책장에는 이름 외에는 읽혀지지 않은 책들로 채워져 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모두 모으기라도 할 것처럼 매 구매시 한 두권씩 끼워넣고 있다. 할인폭이 높고 양장이 아니어서 가격이 저렴한 편인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은 4~6천원대의 책들도 제법 많은 편이다.5만원 이상 추가 할인이라든가, 3만원 쿠폰 등을 적용하게 되는 인터넷 서점에서는 필요한 책을 사고도 액수가 부족할 때가 있다. 이 때,구매리스트에 찜해두었던 '세계문학전집' 중 적절한 가격의 책을 끼워넣으면 필요한 액수를 만들기 용이하다.
어제까지는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를 읽었고, 다음에는 르 클레지오의 '조서-정신병원 또는 군대에서 탈출했을지도 모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읽으려 한다.

'다섯째 아이' 내가 기대하였던 것과는 다른 느낌의 책이었다. 용해되지 않는 가족들간의 정신적 갈등 정도로 생각하였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미묘한 감정변화나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사고의 차이들을 조금 더 선호하는 편이어서 제멋대로 추측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다섯째 아이는 이와 전혀 다른 형태로 태어난다. 책의 소개에는 '비정상적인 아이'라고 간단히 압축되어 있다. 이 표현으로는 오에 겐자브로의 '개인적 체험'과 같은 정신지체아나 기형아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평온하던 가정에 태어난 다섯째 아이는 원시성과 강한 자기보호에서 비롯된 공격성을 지니고 태어난다.원시인의 그것에 가까운아이의 행동양식은 가족 구성원 모두를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였고, 화목한 대가족을 구성하려던 헤리엇과 데이비드를 파괴한다.
...

이 책을 구매한 사이트에는 여러 개의 독자 리뷰가 올라와 있다.
많은 이들이 '모성애'를 이야기한다. 마지막까지 그녀가 자신의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다며 그러한 부분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리뷰들이다. 그런가? 이 책이 모성애에 관한 책인가?

분명 헤리엇은가족원 전체가자신의 다섯째 아이를 제거하는 데 합의할 때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남편과 다른 네 아이가 상처받고 자신의 삶이 피폐해짐을 감수하면서까지(끔찍한) 요양원으로부터 아이를 되찾아온다. 하지만 그것이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든가 모성애 때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모성애를 부각시키려 했다면 '말아톤'과 같은 방식으로이야기를 끌어갔을 것이다.)

헤리엇은 임신했을 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다섯째 아이'에 대한 정의를 갈구하였다. 그녀는 끊임없이 의사와 전문가, 학교와 가족들을 향해 아이가 어떻게 이상한 것인지, 왜 그런 것인지,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지를 묻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이를 똑바로 보려하지 않았고, 범주나 정의를 내리려 노력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큰 문제 없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만 하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행복한 가정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빅토리아 시대의 가정'을 복원하고자 하였던 데이비드와 헤리엇의 미래는 '다섯째 아이'의 탄생과 함께 끝을 맺는다. 방이 여럿인 거대한 집에서 30명이나 되는 가족과 친지, 친구들을 불러 일년에 몇 차례씩이나 파티를 열고 손님을 대접하던 집은 서서히 아무도 찾지 않는 집이 되었고, 마침내 '다섯째 아이'가 보스 격인 폭력집단의 소굴로 변모하고 만다.

이것을 가족의 테두리게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로 확장해보아도 이야기할 것은 많다고 본다. 우리는 늘 진보를 추구하였다. 더 나은 삶을 염원하는 개인들이 모인 거대한 집단, 더 나은 사회에의 이상을 품고 움직여왔다. 하지만 우리 안의 어두움은 늘 사라지지 않았다. 헤리엇은 이것이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과거의 유전자가 어느 순간 불현듯 재등장한 것인지, 아니면 감히 행복해지려 한 자신들에게 내려진 형벌인지 묻는다. 이것은 필연적인 결과인가, 아니면 단지 불운일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