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잠에 욕심을 부리는 편임에도 불구하고,조조할인은 꽤 매력적인 상품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조 영화 관람은 썩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천성이 게으른 편이기도 한데다가 워낙 즉흥적인 성격이어서, 타인과약속을 한 경우 아니고서는 조조로 영화를 볼 계획 같은 건 세우지도 않았었다. 극장과 멀리 떨어진 삶도 물론 한 몫 하였다. 9시 30에서 10시 30분 사이시작하는 영화를 보려면 대체 몇 시에 일어나야 되는 것인가. 그 생각만으로도 덜 깬 잠의 피로가 몰려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집 근처에 멀티플렉스 극장이 세워졌다. 대체 왜 그곳에멀티플렉스가 생긴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아하기만 한 장소였다. 건물 주인이 영화광인가? 어차피 임대 나가지도 않는 외진 곳, 그나마 극장을 해야 손해가 덜하다는 경제적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아무렴 어떠랴, 밤새 일하고 난 다음날 모처럼 아침에 깨어있을 때 즉흥적으로 영화보기 좋은 나로선 가타부타할 까닭 없는 반가움이다.
그렇게 조조로팀버튼의 '혹성탈출'을보았고, '파인딩 포레스터'를 보았다.
평일 조조로 보는 영화는영화 외적인 것에 관심가지게 한다. 첫 번째드는 질문은 '이 시간에 나 말고 누가 또 이 영화를 볼까?', '관객이 1명이면 상영 안한다고 나오지 않을까?' 와 같은.. 혹시라도 여러 명이 함께 영화를 보게 되면 관객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고, 대체 평일 이 시간에 극장에 올 수 있는 저 사람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혹성탈출'은 5명과 함께 보았고, '파인딩 포레스터'는 홀로 보았다.
...
의무적으로 영화를 봐야하는 요즘, 조조 할인으로만 영화를 보고 있다. 한 달에 10편 가까이 보고 있는데 지난 달에는 가장 피하고 싶은 영화를 차일 피일 미루다 결국 그 영화만 제 값 주고 보고 말았다.
이사온 지 일년이 조금 넘은 이 곳에도 작은 규모의 멀티플렉스가 집 바로 앞에 있어 여간 편한 게 아니다. 다만 중심가가 아닌 까닭에 철저히 가족중심으로 영화상영이 계획되는 이 극장은, 조금만 인기가 없다 싶으면 바로 상영관과 상영회수를 줄이고 만다. 억지로라도 봐야한 했던 그 영화는, 개봉한 지 일주일도 채 안돼 상영회수가 반토막 나 있었다. 조조와 심야 할인 모두 불가능한 시간으로만. 한참 조조할인에 맛들인 터라 제값 주고 영화를 본다는 것이 은근히 아깝게 느껴졌다. 그것도보고 싶지 않았던 영화를.
이번 달에는 그 사건을 교훈삼아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개봉 당일 조조로 보기로 하였다. 시사회를 제외하곤 처음 상영되는 타임이니,간절히 보고 싶어하던 영화인 것으로 오해를 살 만 하다. 그렇게 어제 [못 말리는 결혼]을 보았다. 표를 끊으면서, 표를 주고 극장에 들어가면서, 극장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끝나고 나오면서.. 내내 '이런 영화를 봐야하다니' 괴로움에 홀로 되뇌이고, 나중에는부끄러움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정말 나와는 맞지 않는 영화였다. 한 번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는데, 개봉 당일 첫회 상영에 나와 함께 참가한 다른 관객들은 제법 큰 소 리로 웃음을 쏟아낸다. 아 그들은 그럼 정말 이 영화가 보고 싶어 개봉 첫회를 택한 것인가?
...
한국영화의 발전과 극장산업의 부흥에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극장을 찾고 있는데, 조조할인은 오히려 '손해보는 장사'라고 그들이 비난하는 건 아닌지, 잠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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