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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형사 가제트의 비애

by 늙은소 2007. 5. 21.

며칠 전, 코엑스몰에서 DPG 전시회가 열렸다. 2시간 조금 더 걸려 전시장을 둘러보고 자료가 될 만한 카탈로그를 챙겨서 나오며 후배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는데, 뜬금없이 '가제트 차'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이랬다. 형사 가제트가 타고 다니는 차는 하늘을 날아다녔던 것인가? 자동차 겸 비행기였던 것이 얼핏 기억이 난다. 어쩌면 물에서도 움직이는 수륙양용이었을 수도 있다.하긴 가제트의 특기는 '만능 가제트'라 외치는 게 아니었던가. 자동차라고 그러지 않겠느냐며 오래전 보았던 만화를 서로 떠올렸었다.

나는 사실 그 만화를 좋아하지 않았어. 라고 뒤늦게 커밍아웃 하는 사람처럼 나는 고백했다.만화라면 다 좋아할 나이였던 그 때에도 나는 가제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가제트를 보면 비애감 같은 것 들지 않니?

머리에서는 헬리콥터 날개에 우산, 망치까지 튀어나오고, 팔과 다리는늘어나는 용수철처럼 우스꽝스럽게 바뀌고..그는몸의 각 부분을 기계로 대체시켜가며 자신의 인간적인 요소들을 훼손했는데, 정작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조카와 강아지잖아. 그런데도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해결한 것으로 알고 마냥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거야.. 그 어리석음이 난 어린나이에도 정말 마음에 안들었었어.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태평함이랄까. 그거 정말 보는 사람 짜증나게 만들거든.

그러고보니 비슷한 부류로 '명탐정 코난'의 탐정 '유명한'도 있다. 코난은 매번수면제로 유명한 탐정을 잠들게 한 다음, 대신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지목하기까지 하거든. 코난은 그의 등 뒤에 숨어목소리를 변조해 마치 유명한이 말을하는 것처럼 위장하는거야.이 방법은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잠들어 있는 유명한은 속일 수 없어야 정상이지. 자신이 한 말인지 아닌지 정도는 보통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사람은 깨어난 다음,자신이 사건을 해결한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거야. 이건 멍청함을 넘어선 그 무엇이 아니겠느냐고.

'가제트'나 '유명한'이한심하게 느껴지는 건, 해결 되었다는 결과에 만족하여 해결 과정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태도에 있어. 조금만 생각해보면 뻔히 알 수 있는 사실(자신이 해결한 게 아니라는)을 끝까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종종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거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까지 확대되기도 하지. 가제트는 정말 모르는건가? 아니면 조카덕을 보고 있다는 인식이 두려워서 연기하는 것인가? 차라리 후자였으면 싶을 정도로 나는 그 한심한 가제트가 정말 너무 싫어.

...

대체 이런 캐릭터가 주인공인 만화는 왜 만들어지는 것일까? 보통 슈퍼 영웅들은 사람들의 열망을 담아 표현되는 게 정상인데, 가제트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에 가깝다. 하지만 가제트는 사건을 해결하려는 순수한 의도 때문에 동정심이 일기도 한다. 어차피 해결은 조카가 다 할텐데도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몸을 불사해가며 사건 현장이 뛰어들어가 위험을 자초하는 그의태도는 화나면서도 동시에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일까.. 이 만화를 볼때마다 코난이나, 가제트의 조카처럼 영악한 아이들의 태도가 얄밉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이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에 비해 아직 어린 몸의 한계 때문에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능력은 어른들 못지 않게 뛰어난데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함부토 나설 수 없다는 것. 그 현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용하기 쉬운 어른을 선택에 그 역할을 숨어서 대신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즐거운 일일까? 통괘한 해결이고 만족스러운 결과일까? 난 왜 이 구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가.

어쩌면 이 아이들의 의기양양한 태도들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아이들은 사건을 놀이처럼 대한다. 너무 일찍 많은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의 영악함은 종종 사람을 질리게 한다.그리고 그 '앎' 이라는 건 사실 별로 대단한게 아니다. 삶은 '앎'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