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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김수현 드라마의 한계성

by 늙은소 2007. 6. 9.

얼마나 많은 김수현 드라마를 보고 자란 것일까?

기억의 시작은 ‘사랑과 진실’이다. 뒤 이어 ‘사랑과 야망’, ‘배반의 장미’ 같은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나는 겨우 10살 이었지만, 드라마 속 세상은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타인에 대한 집단적인 공격이 있는가 하면, 독기어린 대사와 함께 홀로 버티는 주인공이 있었다. 언제나 주인공은 부러지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죽어버릴 것처럼 서슬 퍼런 태도로 일관하였는데, 그 때는 그게 왠지 멋있어 보이기만 했다.


그녀가 드라마를 쓰기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건만, 김수현 드라마의 인물들은 여전히 타협을 모른다. 드라마는 늘 적당히 눈감아주는 일 없이 자기주장을 펼치느라 소란스럽다. 주 조연 모두가 자기 확신에 차서 토론장 나온 사람마냥 ‘A는 B이다’를 단정하듯 말한다. "**일 것 같다", "**이면 안될까"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태도나,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우유부단함을 드러내는 이 없이, 모두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올곧게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피곤하고,종종 불만스럽다.


요즘 ‘내 남자의 여자’를 몇 주 열심히 보았는데,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극 중 화영(김희애)은 친구인 지수(배종옥)의 남편 준표(김상중)와 사랑에 빠진다. 남편의 바람을 알게 된 지수는 도저히 남편을 용서할 수 없어 이혼을 결심하고, 준표는 화영과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한다. 세 사람의 갈등은 각자의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갈등은 가족 내외로 확대되며 복잡한 양상을 이룬다. 극적으로는 분명 재미있는 드라마이다. 그런데 인물들의 강요하는 대사가 거슬린다.


이 드라마에서 사람들은, 아내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준표를 ‘짐슴만도 못한 놈’이라고 우선 정의한 다음 대화를 시작한다. 아내의 친구와 바람이 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인물들은 다시 이를 되받아 ‘인간 이하’ 라며 상대의 정의를 다시 한 번 공고히 해준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그게 왜 짐승같은 짓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어차피 바람난 것, 그 대상이 자신의 친구라면 좀 더 기분 나쁘고 더러움이 더할 수 있겠지만, 근친이라도 한 것처럼 인간이하의 취급까지 할 건 아니지 않을까? 얼마나 더 나쁜 일이며 어떤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서로의 판단에 차이가 있을 수 있는 문제임에도 등장인물들, 심지어 한 번 출연하고 마는 단역들까지 동일한 표현과 수위로 그를 비난하니, 아내의 친구와 바람을 피면인간이하로 낙인찍히는 게 당연한 것으로 설득되고 만다.

김수현의 드라마는 논쟁이 될 만한 사안이나 윤리적으로 민감한 부분들을 자주 다루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주인공들끼리이미 결정된 정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그들의 주장을 당연히 옳은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건 마치 자신이 쓴 글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는 덧글을 자신이 다는 꼴이다. 아이디를 여럿 만들어 혼자 글 쓰고 혼자 답글 다는 행위는 유치한 것이지만, 상대가 이를 모를 경우 쉽게동의를구할 수 있으며,그 주장은 힘을 얻는다.


최근 급부상한 오락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역시 마찬가지이다. 무릎팍도사로 분한 강호동은 매주 게스트를 초대하여 그의 고민을 해결해준다는 명목 하에, 지금까지 공중파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문제들을 끄집어낸다. 아슬아슬한 수위를 넘나들며 개인의 치부를 들추고,그간 말 꺼내기 어려웠던 질문들을 공격적으로 던지는데..질문을 던지기만 할 뿐, 그것을 주제로 제대로 된 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시청자들은 강호동에게 동화되어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궁금해 하던 것을 강호동이 대신 물어봐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스트가 실컷 자신을 옹호하는 답변을 늘어놓으면 강호동은 그 허점을 공격하지 못하고 "아 그럴 수도 있는거구나" 라며 쉽게 그의 말에 수긍해버린다. 이 프로그램이 문제를 일으킨 연예인들의 면죄부 역할을 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변명할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강호동 스스로 그 변명에 수긍해버림으로써, 강호동에게 이입되어 있던시청자들까지 그의변명에 수긍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김수현 드라마를 보다보면 그녀가 참으로 교묘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녀는 현실이 아닌 것을 현실적인 양 그려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그녀의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환상을 제공하는 환타지적 속성이 강한데, 신기하게도 그것이 현실적인 것처럼착각하게 하는묘한 특성이 있다. ‘내 남자의 여자’를 보고 있자면 판타지가 거의 극에 달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는 또 하나의 신데렐라 스토리에 해당한다. 지수는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나 시댁의 반대 속에서 결혼한 여성이다. 이제 40이 된 그녀는 남편의 불륜으로 비극적인 상황에 처하지만, 비극은 잠시일 뿐 시부모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재산과 신뢰를 얻고 남편으로부터는 정당한 이혼위자료를 받으며, 아들에게는 한없는 믿음과 충성스러운 사랑을 확인받는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미혼에 연하인 남자까지 등장하였으니.. 어찌 그녀가 불행할 것이며 피해자라 할 것인가. 그녀는 중산층 여성들의 로망을 구체적으로 이루어가는 여성의 표본이다. 적당히 착하고, 교양 있으며 자녀 교육과 남편 내조에서도 성공한 그녀는 중산층들이 바라는 완벽한 중년의 결과물이다. 그녀의 이혼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는데,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아 생계가 막연해지고 하루아침에 신분이 추락할 지 모르는 현실적인 이혼과 정 반대인, 누구나 저 정도라면 나도 이혼하고 싶다고 꿈꿀 만한 성공적인 이혼을 달성해낸다. 이것은 이혼을 생각하면서도 실행할 수 없는 중산층 여성들의 판타지이다.

더 나아가 지수의 친정 역시 중산층들의 입맛에 맞춘 그림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교양 있는 그녀 대신 욕하고 싸워줄 언니와 가난하면서도 절대 자식들에게 돈 한 푼 받지 않으려는 검소한 아버지, 잘 사는 시누이들을 질투하긴 커녕 소박하게 살고자 하는 남동생 부부까지. 이렇게나 비현실적으로 입맛에 맞는 친정식구 패키지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드라마의 모든 인물들이, 심지어 지수의 남편을 빼앗아간 화영조차도 지수를 일컬어 천사라 입을 모으는데, 그녀가 천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천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주어진 조건이 그녀가 천사 노릇 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웠던 탓이다.


김수현 드라마는 캐릭터를시청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느끼도록 하지 않고, 먼저 정의한 다음 각 인물들이 이를 재 증명하는 방식으로 완성시킨다. 지수와 은수의 아버지가 한 없이 자애로운 것으로 그려지지만, 사실 자식들 입맛에 맞게 참견하지 않으며 묵묵히 기다리기만 하는 아버지는 무관심하거나 무능력한 것으로 비춰질 위험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 양면성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은 인물들의 대사이다. "우리 장인어른처럼 자애로운 분도 없어"를 먼저 말하고, "우리 아버지처럼 부처같은 분도 없어"라고 딸이 다시 이를 되받음으로써 보는 이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고, 그를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아버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김수현의 드라마는 재미있지만, 한편 위험하고 불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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