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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수면의 시간

by 늙은소 2009. 2. 27.

남들은 게으름을 포장하는 수단이라며 내 말을 무시했지만 나는 종종 그리고 자주 수면의 절대 필요량이 존재한다고 믿어왔다. 머리 숱 적은 사람이 털의 절대량 운운하며, 민망하게 벗겨진 머리카락 대신 가슴이나 몸에 털이 덥수룩하게 자라나고 있음을 강조할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겐 저마다 주어진 필요 수면량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까? 평생 16만 시간 정도는 자야 한다는. 

어려서 나는 잠이 많아 어머니의 걱정과 잔소리를 샀다. 6시간씩 자며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상이 제대로 영위되지 못함은 물론이며,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8시간은 자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 날이 중간에 끼어든다면 그 날 자지 못한 양 만큼 주말에 보충하여 잠을 자야만 일상이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12시간, 14시간씩 잠을 자기도 하였으며, 주변 사람들은 한심해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수면의 절대값이 전혀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밤 10시에는 무조건 잠들어야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벽 5시에는 무조건 눈이 떠진다는 사람도 있다. 밤 10시에 잠들지 못하면 설령 12시에 잠이 들어 8시간, 혹은 10시간을 잤다고 하더라도 잠을 잔 것 같지 않게 다음 날이 괴롭고, 또 반대로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사람은 설령 새벽 2시에 잠이 들었다고 하더라도 5시에 눈이 떠지니, 더 이상 잠들지 못하여 괴로웠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이런 경우도 있다. 2시간 이상은 잠들 수 없어서 2시간을 잔 다음 깨어나 몇 시간을 보내고 2시간을 자는 형태로 하루에 서너차례 잠을 나눠 자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이는 6시간 이상 연속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중간에 한 번이라도 깨었다가는 그 동안 잔 시간이 모두 무효가 된다. 그는 깨어난 시간부터 다시 6시간 이상 연속해 자야만 잠을 잔 것 같다고 말한다. 

수면의 절대 필요량이 존재하며, 그 양이 달성될 무렵 죽음이 찾아온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그렇다면 나처럼 잠이 많은 사람은 16만 시간을 일찍 달성할 것이며, 그만큼 일찍 죽게 될 것이다. 적게 잔 사람이 오래 사는 세상이라.. 그것도 재미있겠다. 혼수상태에 빠져 계속 잠을 자는 환자는 그만큼 일찍 죽음을 맞이할 것이며, 다량의 수면제가 아닌 소량의 수면제로도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게 만들수 있지 않겠는가. 

수면을 시간의 속도과 연결짓고자 하는 심리는 일견 타당하다. 잠을 자는 동안 시간은 멈춘 듯 연속성이 파괴되고, 내가 잠든(의식하지 못하는)동안 세상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가.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자신이 소외되었다는 두려움. 수면은 개인을 세상으로부터 소외시키는 도구이며, 그 때문에 사람들은 수면을 시간의 도약, 혹은 멈춰진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100년 동안 늙지 않았던 것은 그녀가 100년 간 잠들었기 때문에 스스로 육체의 시간을 멈추었던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치 동면하는 동물들처럼..  

내가 두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은 몇 년 전, 홍대 앞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무렵이었다. 한 때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모두 특이한 수면장애를 겪고 있었는데, 남자가 평생 거의 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면 여자는 그와 반대로 한 번 잠들면 몇 년씩 깨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거의 잠을 자지 않는 남자는 수면의 절대필요량을 채우지 못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불사에 가까운 인물이었고, 몇 년에 한번씩 깨어나는 여자는 잠든 동안 시간이 멈추어버리기 때문에 역시 마찬가지로 늙지도, 죽지도 않는 (서서히 늙는)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밤늦게 홍대 근처를 배회하며 산울림 소극장 방면에서 신촌으로 이어지는 철길을 따라 걷던 중 우연히 그를 만나게 된 나는, 그들의 고독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200여 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살아온 유일한 동반자라는 점에서 서로에게 대단히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200년 전의 기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 그러나 그녀는 이내 곧 잠들어버리고 깨어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을 보내야만 하지 않는가. 그는 그녀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고통스러웠으며, 깨어날 때마다 그녀가 몇 년 전의 기억과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그 사이 달라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괴롭다고 이야기하였다. 하긴 잠이 들었을 뿐인데 깨어나보니 세상이 달라져있고,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이 모두 변화한 뒤라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면 어찌 당황스럽지 않겠는가. 그녀의 입장 역시 충분히 이해 가능한 고통이리라.

그들과 헤어진 후, 수면의 절대필요량을 요구하는 인간과 잠든 동안 시간이 멈추는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전자는 잠을 자는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소모하는 부류이며, 후자는 깨어있는 동안 생을 소모한다. 이런 극과 극의 존재라니. 만약 인류가 이처럼 두 개의 집단으로 나뉘어진다면, 그리고 그 둘 간의 갈등이 첨예하다면 전쟁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겠지.

- 2008. 0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