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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디스터비아 : 그의 이동거리, 30미터

by 늙은소 2007. 9. 19.
디스터비아

감독 D.J. 카루소

출연 샤이아 라보프,데이빗 모즈,사라 로머,비올라 데이비스,캐리 앤 모스

개봉 2007.08.30 미국, 104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디스터비아]는 범죄스릴러물이면서 동시에 하이틴 로맨스이고 또한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주인공 케일(샤이아 라보프)은 아버지와의 낚시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다. 일 년 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케일은 교사와의 언쟁 끝에 그를 폭행하고 3개월간의 가택연금 형을 언도받는다. 그러나 케일에게 가택연금은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는 집 안에서 '치터스' 같은 케이블 TV를 시청하거나 게임을 하고, 아이팟에서 음악을 다운받아 들으며 시간을 소비한다. 법원에서 내린 명령 속 그의 감옥은 수신기 주위 30미터까지의 거리이다. 그러나 케일은 현관문 밖 마당에조차 나가보려 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외부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이웃집에 애슐리(사라 로머)가 이사를 오면서부터다. 그때부터 케일은 자신이 이동해도 되는 30미터가 정확히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를 명확히 하고 바깥 세계와 조우할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이웃인 터너(데이빗 모스)가 연쇄살인범일 지 모른다는 정황을 파악한다.




영화에서 케일이 설치한 30미터 경계선은 묘한 상징성을 갖는다. 가택연금 형에 처해진 케일에게 이 경계선은 영화 초반 아무런 제약이 되지 못하였었다. 그는 경계 바깥에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경계를 파괴하거나 그로부터 이탈하려는 욕구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경계선은 케일에게 있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폐적 보호막에 가깝다. 다시 말해 케일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 게 아니라, 외부 대상들의 침입을 막는 경계였던 것이다. 역할모델이며 자신이 계승해야할 가치를 지니고 있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재는, 이렇게 케일에게 성장을 멈추고 어른이 되는 과정을 잠시 중단하도록 요구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누가 되어야 하는지 길을 잃은 케일에게 연쇄살인범 터너의 등장은 다시 성장을 시작하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된다. 케일은 이제 전자의 그룹(계승할 대상이 존재하는)에서 후자의 그룹(극복할 대상이 있는)으로 변모한다. 따라야 할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더 이상 멈추어있을 수만 없게 된 케일은 극복해야할 대상을 찾음으로써 새로운 한 발을 경계 바깥으로 내밀게 된 것이다.


젊은 여성들만을 찾아내어 살인을 행하는 터너는 '푸른 수염(아내를 반복해 살해하는)'을 연상시킨다. 푸른 수염은 유럽의 여러 민화가 결합한 것으로 유사한 이야기가 여럿 전해지고 있으며, 젊은 여성을 살해하거나, 그 시신을 유기하고 훼손하는 잔혹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식인괴물이 등장하는 동화와도 밀접한 연관관계를 맺으며, 권력이양과 시대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층의 보수성을 상징하는 형태로 발전되어왔다. 푸른 수염의 살인행위나 터너의 살인행위에는 이런 보수적 폭력이 함께한다. 터너는 푸른 수염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지하에 자신이 살해한 여성들의 시체를 보관한다. 뿐만 아니라 케일의 어머니마저 유혹해, 케일의 경계선 안까지 침입해오기 시작한다. 터너와 케일의 대립은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자녀가 없는 독신의 중년 남성은 케일이 지금까지 계승해온 아버지상과 대립하는 것으로 다음 세대를 거부하는 기득권의 보수성을 상징한다. 케일은 그를 거부함으로써 극복에의 의지를 확립하고 성장의 새로운 방법을 배워나간다. 그 결과 케일은 경계 안에 있는 것만으로는 그 무엇도 지킬 수 없음을 깨닫는다.


[디스터비아]의 영화소개 글 대부분은 이 영화를 히치콕 감독의 [이창]과 비교하고 있다. [디스터비아]가 [이창]과 무엇이 같으며 무엇이 다른가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아쉬움이 든다. [디스터비아]는 [이창]보다는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과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죽어서까지 이웃들을 관찰하는 '매리 엘리스 영'의 내레이션으로 지속되는 이 드라마는, 행복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중산층 교외주택가의 내밀한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탈세로 가택연금 형에 처해진 카를로스와, 고등학생과 바람을 피우는 그의 아내, 말썽의 도가 정도를 넘어선 쌍둥이 꼬마들이 등장하는 이 드라마는 영화 [디스터비아]와 여러 면에서 닮아있다. 어쩌면 [디스터비아]의 감독 D. J. 카루소는 [이창]을 청소년들의 이야기로 바꾼 것이 아니라, 청소년의 눈으로 본 [위기의 주부들]을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