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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행복 : 쓰지만 삼켜야 하는 사랑

by 늙은소 2007. 10. 13.

행복

감독 허진호

출연 황정민,임수정

개봉 2007.10.03 한국, 124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허진호 감독의 전작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두 남녀는 모두 사진을 찍었다. 남자는 남겨진 이들이 떠난 이를 '기억'할 수 있도록 영정사진을 찍었고, 여자는 '기록'을 위해 주차위반 사진을 찍었다. 죽음을 준비하는 남자는 자신이 사진으로만 남은 기억이 될 것을 알기에 걸음을 내딛지 못한 채 사각의 틀(액자이며 동시에 관이기도 한)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봄날은 간다]에서의 한 사람은 소리를 모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소리를 다시 공중에 흩뿌리는 일을 하였다. 두 사람은 함께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였다. 소리를 듣는 사람과 내보내는 사람. 그들의 태생적 차이는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분명하였는데, 한 사람이 '생'이라는 긴 시간을 정의한 후 그 틀에 맞춰 살아가는 삶을 택하였다면, 다른 이는 현재의 궤적을 묵묵히 축적하는 삶을 택한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는 늘 사랑을 소재로 삼았다. 그러나 닮은 줄 알았으나 결국 이질적이었던 두 사람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가 충돌하는 순간 그 에너지는 파괴되고 만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선 자는 현실과 거리를 둔 채 살아간다. 현실에 얽매인 자가 그들과 만나 사랑하게 되었을 때, 현실의 인물은 잠시 자신의 세속성을 잊고 영원할 것 같은 상대의 눈 안에서 위안을 받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거리는 이상과 현실, 죽음과 생의 거리처럼 좀처럼 타협하기 힘든 갈등을 내포하고 있었다.




영수(황정민)는 욕망의 삼각형 속에서 살아온 남자다. 병든 어머니와 낡은 아파트는 끊임없이 그에게 탈출에의 의지를 상기시킨다. 고층 아파트와 수입차 명품의상으로 치장한 연인 수연(공효진)은 그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목표가 되어 욕망을 구체화시켰으며, 친구 동준(류승수)은 욕망에 다가가는 방법을 쉬임 없이 제시하며 그 삼각형 안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벗어나야 할 가난과 도달해야 할 부, 그리고 그 방법을 '친절히' 가르쳐주기까지 하는 욕망의 삼각형은 도시인의 삶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영수를 둘러싼 환경은 요즘의 TV 프로그램과 닮아있다. 노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어찌 되는지 끊임없이 경고하는 TV속 가난한 독거노인의 삶은 보험광고가 되어 24시간 쉬지 않고 우리를 달리게 한다. 셀러브리티니, 된장녀니 명품족을 넘어 제트족의 삶까지 속속들이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소비지향적인 삶을 목표로 할 것을 종용하고 있으며, 그러한 삶을 위해 준비해야할 재테크 요령과 각종 투자 상식이 오락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이다. 영수의 가족, 연인, 친구는 세 개의 축이 되어 욕망과 소비의 순환구조를 형성하며 영수를 채근하였고, 그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는 영수는 자신의 몸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




간경변에 걸린 영수는 시골 요양소 '희망의 집'에 몸을 의탁한다. 그곳에서 그는 중증 폐질환으로 8년 째 요양원에 머무르고 있는 은희(임수정)를 만난다. 두 사람은 서서히 가까워지고 사랑하게 되며, 결국 함께 살기로 한다. 은희는 자신과 영수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아픈 사람들끼리 만나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영수와 은희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었다.


은희는 죽음을 가까이 한 채 삶을 조금씩 연장해가며 살아왔다. 막연하기만 한 미래는 그녀에게 결코 중요한 것이 될 수 없었다. 반면 영수에게 있어 두려움의 대상은 갑작스레 다가온 죽음이 아니다. 버림받은 존재, 낙오자라는 사실이 그에게는 현실적인 두려움이다. 병이 크게 호전되자 영수는 갑자기 길어진 미래가 두려워진다. 서울에 돌아온 그가 흔들리기 시작한 첫 대화, 그리고 돌아와 은희에게 관계의 균열을 암시하며 처음 건넨 문장은 '노후 자금으로 필요한 금액은 4억 7천만원'이라는 말이다.


죽음이 가까이 있을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이다. 그러나 영수에게 있어 막연한 미래를 위해 내달리는 삶은 피폐하였고,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마시는 술은 고통스러웠으며, 즐기기 위한 밤은 지루한 낮을 상쇄시키지 못하는 불행이었다.


그 동안 허진호 감독의 영화는 주인공인 두 사람 모두에게 이입할 수 있는 감정의 여백을 남겨주었다.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버리는 사람과 버려지는 사람 모두 현실의 일부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에 이르자 그 두 개의 축은 좀 더 극단적인 형태가 되어 세속과 이상으로 치닫게 된다. 은희의 지극한 맑음은 감정을 이입하기 힘들 정도로 이상화되어 있는데, 어쩌면 그것은 버리는 자, 떠나는 자의 위치에 선 영수가 세월과 함께 나이 들고, 세속적으로 변모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다림은 아직 어렸고, [봄날은 간다]의 상우는 젊었다. 그러나 [행복]에는 더 이상 젊을 수 없는 삶의 피곤함이 배어있다. 그래서 이 사랑은 쓰다. 농도 짙은 알코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