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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색, 계 : 익숙한 거리가 낯설어 지는 순간, 그 곳에서 길을 잃다

by 늙은소 2007. 11. 28.
색, 계

감독 이안

출연 양조위,탕웨이,조안 첸,왕리홍

개봉 2007.11.08 미국,중국,홍콩,대만, 157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상실은 그 대상을 잃은 후에라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상실에의 깨달음은 존재하던 대상의 부재를 확인하게 되었을 때 찾아오며, 그 익숙함의 정도에 따라 감정의 파고 또한 커지게 된다. 나는 늘 이 느낌에 대한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쓸쓸함과 미안함, 허전함을 뒤섞은 곳에 다시 아리고 서늘한 물리적 감각을 더해 나만의 언어적 정의를 내리고 싶었다.


영화 [색, 계]의 주인공들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채 그 빈 곳을 방기하며 살아간다. 왕 치아즈(탕웨이)는 아버지가 영국에서 불러주기를 기다려왔지만 그의 약속은 반복 지연된 끝에 불가능의 영역 아래로 사라지고 만다. 그녀는 나라를 잃음으로써 극빈해지고, 어머니를 잃음으로써 회귀의 장소를 상실하고, 아버지를 잃음으로써 미래에의 희망을 잃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감정을 응축하여 내부의 어딘가에 저장할 뿐 상처를 드러내거나 메우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영국으로 떠날 희망이 남아있던 대학시절, 왕 치아즈는 일본군을 피해 홍콩의 대학으로 피난을 온다. 그곳에서 그녀는 대학생들로 구성된 극단에 가입을 하고, 20대 특유의 서투른 열정으로 정치적 성격의 연극을 펼쳐 보임으로써 스스로의 열정에 감염된다. '애국'이라는 이름의 열정에 감염된 극단원들은 한 여름의 더위와 방학의 나른함 속에서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 규모로 일을 확대시키고, 광위민(왕리홍)의 주도 하에 친일파의 핵심인물인 이 대장(양조위)을 암살하려는 계획에까지 미치게 된다. 이들의 계획은 구체적이지 못하였으며 실행할 능력과 기술, 그리고 용기까지 부족한 아마추어 수준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젊은 사업가의 아내 막부인 역할을 맡은 왕 치아즈가 뛰어난 연기와 순발력으로 이 대장의 아내(조안 첸)에게 신뢰를 얻게 되면서 암살계획은 성공 가능한 것으로 한 발 전진하게 된다.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는 이 대장과 막부인의 우연한 만남에 이성으로서의 끌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고요하기만 하던 왕 치아즈는 막부인으로 연기할 때면 남자를 누구보다 잘 아는 여인처럼 행동하였고, 이 대장의 시선을 끌어들이면서도 짐짓 거부하고 또 다시 그를 유혹하는 요부의 모습을 펼쳐 보인다.


애초에 연애의 시작이란 연기와 가면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던가. 유혹하는 자는 유혹하지 않는 것처럼 연기하며 상대가 자신의 유혹을 알아주기 기대하고, 유혹당하는 자 역시 상대의 유혹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내색하지 않음으로써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키는데 일조하려 한다. 긴장이 클수록, 가면의 시간이 지연될수록 이 모든 감정이 폭발하는 정점의 흥분은 극에 달할 것임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폭발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암묵적인 동의하에 서로를 유혹해왔다.


그러나 이 대장과 막부인은 뜻하지 않은 외부 요인에 의해 폭발의 정점을 맞이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이 대장이 상해로 돌아가게 된 것. 자신의 모든 것을 수단으로 삼아가며 이 대장을 유혹하려던 왕 치아즈는 막 부인의 가면을 벗은 채, 이제는 왕 치아즈로 돌아올 수조차 없게 된 빈껍데기가 되어 회색빛 상해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3년이 지난 후, 그녀를 찾아온 광위민은, 이 대장 암살을 위해 다시 한 번 막부인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한다.

다시 만난 막부인과 이 장관(그는 이제 장관으로 승진하였다)은 3년의 시간 동안 서로를 향해 남겨두었던 긴장의 끈이 지속되었음을 확인하며 폭발에의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논란이 되었던 20분가량의 성행위 장면은 세 번으로 나뉘어 등장하는데, 각각의 행위가 담고 있는 언어가 명확히 다르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또한 제각각이어서 영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관찰하는 것 역시 흥미롭게 만든다. 영화 비평의 장이 성 담론의 장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온전히 영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색, 계]의 도발성은 '색'의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미묘한 언어들을 풀어놓음으로써 각자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성 언어를 배재한 채 영화를 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처음의 색은 분명 가학적인 형태로 시작한다. 이 장관은 3년의 시간을 기다리게 한 모든 것에 화를 내듯 막부인을 폭력적으로 대하고, 내버리듯 홀로 남겨둔 채 떠나버린다. 그의 태도는 막부인을 모멸하고 그녀에게 수치심을 주기 위한 것으로까지 여겨진다. 그런데 남겨진 막부인은 이해하기 힘든 미소를 내보인다. 그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이 장관을 유혹하라던 임무를 성공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언어를 그녀가 이해하였기 때문일까?

그의 가학성은 이후 등장하지 않으며,3번째 성행위 장면에이르러 오히려 역전되는 경향을 보인다. 어두운 곳을 두려워하는 이 장관의 얼굴을 베개로 내리누르며 그녀는 이 장관이 공포와 직면하게 만든다. '이'가 이러한 행위를 용인하였을 때 공포는 쾌락의 일부로 수용되고, 역으로의 지배관계가 두 사람 사이에 허용되기 시작한다.


고문과 살인을 반복하면서도 자신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답하지 못하는 이 장관은 막부인을 고문실이 있는 자신의 영토 바깥으로, 그리고 일본군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술집 안으로 불러들임으로써 자신의 공간 일부를 허용한다.

왕 치아즈는 나라를 잃고 어머니를 잃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버렸고 광위민은 임무에의 수행을 위해 그녀를 방치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 자신이 서야 할 자리를 잃은 여자이다. 그녀를 스파이로 만든 조직은 그녀에게 이 장관을 사로잡으라고 명령한다. 그녀는 그들에게 묻는다. 무엇으로 그를 사로잡을 것이냐고.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사로잡은 그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왕 치아즈일 때의 그녀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알지 못하는 빈껍데기와 같았다. 그렇기에 왕 치아즈인 채로는 이 장관을 사로잡아 가둘 공간역시 가지지 못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이 장관의 소유욕 안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 끝에, 왕 치아즈인 자신을 버리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순간. 온전히 막부인이 된 그 때, 그녀는 거리로 나와 익숙하던 거리의 달라진 모습을 바라본다.




결국 스파이도, 정부도 되지 못한 그녀는 다시 껍데기가 되어 거대한 우물 아래 떨어지고, 처음으로 타인에게 자신의 공간 일부를 허용하였던 '이'는 그녀가 가져간 자리를 채우지 못해 그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어둠과 함께 홀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