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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아메리칸 갱스터 : 순도 100%를 추구한 인물, 프랭크 루카스

by 늙은소 2009. 12. 30.

 

아메리칸 갱스터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덴젤 워싱톤,러셀 크로우

개봉 2007.12.27 미국, 156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1968년 뉴욕, 할렘은 흑인 갱 두목인 '범피 존슨'의 지배하에 질서를 유지한다.

인종갈등과 빈부 격차에 의한 계급문제가 집약된 곳.

하층민으로서의 삶이 세대를 거듭하며 반복되리라는 전망으로 바뀌고, 도시는 절망과 분노가 응어리 져 언제든 폭발할 것처럼 뜨거웠다.


1968년 미국은 불안정했다. 반전 시위는 미국의 각 도시에서 대규모로 진행됐고, 그와 마찬가지로 인종간의 갈등이 방화와 폭동으로 가시화되었다. 베트남전에서 사망한 미군의 수는 3만 명을 넘어섰으며 마침내 그해 4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되자 이 나라는 신경쇠약에 걸린 것처럼 중심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반전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경찰들의 모습이 TV를 통해 전국적으로 중개되고 시위와 폭동이 반복되는 가운데, 경찰은 무력의 사용과 권력의 남용에 무감각해진다. 공화당 후보인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정권의 교체가 중앙 정부의 권력강화에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다. 사람들은 불안한 사회와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부터 도피할 수단이 필요했다. 그 결과 마약이 확산된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무모하게 지속해온 탓에 중앙 정부의 힘이 약화돼 있었다. 중앙의 힘이 약해질 때 권력은 분산되며 군소 세력이 힘을 키울 여지를 제공하게 된다. 다양한 세력들 간에 벌어지는 경쟁 관계를 통제할 규칙마저 존재하지 않을 때, 세력간 경쟁은 전쟁으로 확산되며 희생의 몫은 피라미드의 밑변을 이루는 계층에게 집중된다. 당시 미국은 범죄조직과 지방경찰이 손을 잡을 정도로 부패에 둔감했으며, 대의를 상실한 전쟁에서 군인들은 마약 운반책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약 산업의 피해자는 고스란히 슬럼가의 극빈층을 향했다.

이 규칙은 범죄 조직에도 적용된다. 흑인 커뮤니티 내의 여러 범죄조직을 통제해왔던 '범피 존슨'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할렘 내 범죄조직의 분열로 이어졌다. 시장은 몇 개로 나뉘어 지배되었고, 각 세력은 자신들만의 룰로 암흑가를 통치하려 하였다. 범피의 운전기사이자 충직한 부하였던 프랭크 루카스(덴젤 워싱턴)는 질서를 유지하던 핵심이 사라진 뒤, 할렘의 거리를 바라보며 늘 가던 식당의 단골좌석에 앉아 질서의 필요성을 생각한다.

 

 


영화는 채무자의 몸에 불을 붙이고 다시 그의 사형을 집행하는 루카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는 표정의 변화 없이 범피의 대리자로서 살인을 시행한다. 15년간 범피를 보좌해온 루카스는 범피의 의지 안에서 움직여왔던 인물이었다. 화형으로 시작하는 이 장면은 루카스의 냉혹함 뿐 아니라, 자신을 불에 태워 없애는 하나의 의례로 보여기도 한다. 


루카스는 흑인다움과 범죄자다운 상징을 거부한 채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노력한다. 눈에 뜨이지 않는 평범한 옷차림과 변화 없는 표정은 그를 보호하는 최고의 무기였다. 흑인 특유의 억양이나 제스처조차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은 인종적인 특징을 넘어선 존재로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로 해석된다. 하얀색 저택을 구입하고, 미스 푸에르토리코를 아내로 맞이한 그는 테이블 위 물컵 자국조차 용납하지 않는 결벽증적인 태도로 조직을 관리한다. 어쩌면 그가 마약거래를 시작한 이유는 할렘의 암흑가에 질서를 세우고, 희석되어 유통되는 저급 마약을 시장으로부터 몰아내기 위함이었을 지도 모른다.

 

루카스는 100%의 순도를 추구하는 인물이다. 그가 판매한 마약 '블루매직'은 높은 순도로 명성을 쌓았고, 루카스는 블루매직의 브랜드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이것은 사업가적 자질 이상의 결벽증적 태도로 이해된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에서도 상해를 입은 경찰과 이후 벌어질 사건을 염려하기보다, 피로 더럽혀진 하얀 카페트를 더 걱정한다. 


그는 비록 흑인이었으며 흑인 갱 두목이던 범피 존슨을 아버지처럼 받들었지만, 흑인 사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 할 한큼 이상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완결된 무엇인가다. 얼룩지지 않은 테이블처럼 정연한 질서 하에 지배되는 할렘이 필요했고, 말끔하게 진열된 대형 상가 속 제품처럼 매끈한 브랜드를 소유하고 싶어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이 부나 명예, 권력이었다면 차라리 루카스는 인간적인 범죄자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다.

그의 보스이던 범피 존슨은 대형 상가에서 다가오는 시대를 한탄 하였다. 그때 그는 루카스에게 말한다. 가게의 주인이 없는 상가에서는 권총을 들이대며 돈을 뜯을 수조차 없게 된다고. 종업원들로만 이루어진 대형 유통망 안에서 자신들이 있을 자리는 어디인가 물으며 범피 존슨은 자신의 시대를 마감한다. 프랭크 루카스는 다음 세대의 범죄조직을 대변한다. 그가 상징한 것은 대형 유통망을 갖춘 시스템이 아니라, 그 시스템의 배후에 있는 존재의 비인간적 얼굴이다.

 

영화 중반, 프랭크 루카스는 미스 푸에르토리코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가족에게 소개시킨다. 그때 그녀는 가족사진이 있는 방 안에서 특정 사진을 가리키며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사진'이냐 묻는다. 이때 루카스는 그는 범피 존슨이며, 자신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고 설명한다. 이 장면이 중요한 것은 루카스가 계승하고자 하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설명하기 위해 삽입되었기 때문이다. 루카스는 범피가 그랬던 것처럼 부활절이면 칠면조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점잖아 보이는 양복에 검소한 차림으로 생활하며 그의 범죄철학을 계승한다. 하지만 그는 흑인들의 또 다른 희망인 양 행동하지 않는다. 그가 판매한 마약은 인종을 가리지 않았으며, 빈부를 논하지 않았다. 그의 마약은 지극히 평등하게 판매되었고, 그 부작용 또한 인종과 계급을 구분하지 않았다. 


루카스의 범죄 행위에는 비인간적인 특성이 강하게 베어있다. 범피가 일정 정도의 정의나 철학을 범죄에 부여하려 했다면 루카스의 범죄에는 인간적인 요소가 배제됨으로써 발생하는 차가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질서와 균형에 대한 루카스의 집착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질서를 세우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질서' 그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에 복무하기 위해, 역으로 사회가 그 규칙에 맞춰 재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범피와 루카스의 차이다.

온갖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경찰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큰 곤경에 처하게 된 루카스는 그 때에도 적절한 수준의 가격(뇌물의)과 균형있는 관계를 요구한다. 자신을 취조하는 형사 리치(러셀 크로우)와 루카스의 협상과정이 선과 악의 대립으로 위치지어지지 않고 뜻을 같이 한 동지처럼 보이는 것 역시 형사인 리치가 제시한 세계 가 또 하나의 질서있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악당일 때에는 악당의 룰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 루카스의 삶이었다면, 부정부패 없는 사회의 룰 안에서는 그 사회의 조화를 위해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것. 이것은 그를 기존의 범죄자와 차별되게 하는 특징이다.

911 이후 미국의 영화는 세계의 경찰이라던 스스로의 신념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윤리적 가치와,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이 제거된 지점에 남겨진 것은 신경증적 증상들 뿐이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아메리칸 갱스터]에서 '프랭크 루카스'의 결벽증은 그의 범죄를 완성시키는 주요 동인으로 작용한다. 때로는 내용이 형식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기도 한다. 개인의 이상이 그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라는 점. [아메리칸 갱스터]를 본 뒤, 늘 저 생각이 그림자처럼 뒤를 쫒는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보수와 진보 속에서도 개인은 자신의 이상보다, 강박증이나 질서에 대한 집착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어느 쪽이든 보다 조화로운 질서를 제시하기만 한다면 인간은 언제나 정반대의 선택을 오갈 수도 있다. 나에게 [아메리칸 갱스터]는 그런 상념을 하게 한 영화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