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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12 Angry Men : Sidney Lumet (1957)

by 늙은소 2009. 4. 26.
12명의 성난 사람들
감독 시드니 루멧 (1957 / 미국)
출연 이 지 마샬, 에드 빈스, 에드 베글리, 조지 보스코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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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포함된 캡춰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1957년 작 [12인의 성난 사람들]시드니 루멧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1954TV 영화로 제작되었던 작품을 극장용으로 다시 제작한 것이다. 헨리 폰다가 직접 제작과 주연을 맡았으며, 당시 TV 드라마 감독으로 활약 중이던 시드니 루멧에게 감독직을 의뢰한다.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은 두 개의 공간에서 펼쳐진다. 12명의 배심원은 배심원 회의실과 화장실을 오가며 의견을 피력하고, 살인사건 피의자로 법정에 선 18세 소년을 사형대에 보낼 것인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영화는 배심원 제도의 모순을 지적하는 한편, 재판과정의 형평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빈민가 출신 라틴계
18세 소년의 사형여부를, 12명의 백인 중산층 남성들에게 맡겨도 되는 것인가. 1965년에 이르러서야 미국 내 유색인종의 선거권이 보장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57년은 시대의 한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시기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12명의 배심원단은 모두 백인 남성으로 평균 연령 40대 이상 가장(家長)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의 경우 40대 이상 백인 중산층 남성들은 가장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그 때문에 검찰 측에서는 배심원으로 이들을 선호한다. 그러나 변호인 측에서는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높은 여성과 소수인종, 진보성향이 있는 20~30대 배심원단을 선호하며, 이러한 이유로 배심원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검사와 변호사는 각각 배심원 구성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를 죽인 라틴계 소년의 사형결정권이 12명의 아버지뻘 남성들의 손에 놓여 있다. 이들은 학대 받고 자란 소년의 입장에 서기보다는 아들의 칼에 찔려 사망한 아버지의 입장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그렇게 11명이 모두 유죄Guilty’를 선택한다.

 

그러나 8번 배심원이 ‘Not Guilty’에 손을 들면서, 짧게 끝날 줄 알았던 회의는 무기한 연장에 들어간다. 날은 무덥고, 선풍기는 고장 났으며, 몇 사람은 야구경기에만 관심을 가질 뿐 소년의 목숨에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8번 배심원이 주장하는 것은 소년의 결백이 아니다. ‘Not Guilty’무죄’, ‘결백의 차이는 이 영화의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는 소년이 살인범이 아닐 일말의 가능성은 과연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유죄평결을 내리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은 진지하게 토의해봐야 하지 않느냐는 인간적인 의견을 피력한다. (이 영화와 관련한 소개글과 여러 리뷰들 중에는 8번 배심원이 소년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여기서 대전제는 단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기보다는 99명의 죄인을 풀어주는 것이 낫다는 법률원칙이다. 소년이 살인범으로 기소된 이유와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소년이 아버지를 찌르는 것을 보았다는 이웃집 여성과, 살인사건이 발생한 직후 집 밖으로 뛰어나가는 소년을 목격했다는 아래층 노인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흉기로 사용된 칼이 소년이 가지고 있던 칼과 동일한 제품임이 밝혀지는 등 영화 초반 11명의 배심원은 소년의 유죄를 확신한 채 회의에 임하게 된다. 그러나 8번 배심원이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한 후, 11명은 각자 증거와 증언에 대해 의심스러웠던 부분을 털어놓으며 모든 증거와 증언이 100% 확신하기에는 모자라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웃집 여성은 시력이 좋지 않으며, 노인의 증언은 앞 뒤가 맞지 않는 등 어느 것 하나 소년의 유죄를 입증할 만한 확실한 증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8번 배심원은 애초에 모든 증거들을 의심하였기에 not guilty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소년이 살인범이라는 증거들은 때로 너무 명확하여 설령 몇 개의 증거가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만 '확실한 증거'로 인정되어도 충분한 상황이다. 그는 다만 모든 증거가 다 맞는 것은 아니며, 몇 가지는 잘못된 증거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의 피력을 해보였을 뿐이다. 그 결과 11명의 배심원은 8번 배심원을 설득할 목적으로 살인 증거들이 얼마나 '완벽한지' 입증하려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들은 어떠한 증거도 그 '완벽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얻고 만다.


영화는 12명의 배심원이 모두 만장일치로 무죄를 결정하며 끝을 맺는다. 물론 이들의 결정은 소년의 결백과 무관하다. 이는 설령 상대가 살인범이라 하더라도 정해진 제도 안에서만 그를 심판할 수 있다는 사실. 그로 인해 범죄자를 무죄 판결할 수밖에 없더라도 그를 풀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에의 동의이자 제도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다.


'유죄guilty'와 '무죄not guilty', 결백Innocent’의 정의를 명확히 구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Not Guilty’를 우리는 무죄(無罪)’로 번역한다. 그러나 무죄는 <1.아무 잘못이나 죄가 없음>이라는 의미와 함께 <2.법률상 죄가 되지 아니하거나, 범죄의 증명이 없음>으로도 쓰인다. 1 2의 정의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1의 경우는 결백-Innocent’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2는 법률적으로 죄를 입증할 수 없는 경우를 포함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법률적 용어로서의 무죄결백과 분리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도, 용의자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지 못하면 그를 유죄로 보는 태도 역시 무죄의 정의가 명확하지 못한데 기인한다


* 이 영화의 아쉬움은 헨리 폰다가 연기한 8번 배심원이 지나치게 전능하다는 데 있다. 8번 배심원이 증거와 증언의 허점을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는 대부분의 역할을 책임짐으로써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한 사람의 뛰어난 영웅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11명을 굴복시키는 영화로 이해되기 쉽다.(RPG게임 혹은 신화속 영웅처럼 그는 반대파 배심원을 한 명씩 무력화시킨다)
 '무죄'를 선택하는 배심원의 숫자가 한 명씩 늘어나는 과정을 반복해 보여주는 구성 역시 영화의 진지함을 오히려 퇴색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8번 배심원의 능력을 과장하면 할수록 11명의 배심원은 무능한 집단으로 전락하며, 그 결과 배심원 제도와 민주주의의 가치에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은 8번 배심원이 던져놓은 화두를 다른 11명이 주고 받는 과정에서,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기 시작할 때 발휘된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증거를 의심하고, 빨리 끝내려던 회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할 때 12명의 배심원은 그 존재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