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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사쿠란 : 여성적 주체성의 누락과 착각

by 늙은소 2008. 4. 15.

사쿠란

감독 니나가와 미카

출연 츠치야 안나,시이나 깃페이

개봉 2007.09.06 일본, 110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유곽에 팔려가던 한 여자아이가 벚꽃 흩날리는 계절 속에서 유곽 최고 게이샤인 오이란의 행렬에 넋을 빼앗긴다. ‘키요하’라는 이름과 함께 게이샤로 살아가게 된 이 아이는 앞으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이 결국 남자에게 몸을 파는 직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탈출을 감행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는 인근 신사에서 붙잡혀 되돌아오고 만다.


에도시대 최고의 유곽으로 불리던 요시와라 유곽 입구에는 화려한 금붕어 어항이 기둥 위에 장식되어 있어, 게이샤의 삶 또한 금붕어와 다르지 않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물 밖으로 나가면 살지 못하는 금붕어는, 강물로 옮겨지는 순간 평범한 붕어와 뒤섞여 고유의 아름다움을 잃고 만다. 게이샤들은 마치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자신의 아름다움과 화려한 삶을 위해 유곽의 경계 안에 안주할 것을 받아들인 존재였다. 그러나 이러한 운명을 거부하며 끊임없이 탈출을 감행하는 키요하(츠치야 안나)는, 그 덧없는 아름다움에 집착하지 않는다. 겉으로만 화려할 뿐인 장식물이 될 바에는, 살아있는 인간으로 남고 싶은 것. 그 때문에 키요하는 보통의 게이샤들과는 다른 개성이 강한 존재로 각인되었고, 그녀의 이런 점은 오히려 그녀만의 매력이 되어 유곽을 찾는 손님들을 자극하는 요인이 된다.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재능과 외모로 명기가 되어 이름을 높이게 된 키요하는, 어느 날 손님으로 온 ‘소지로’에게 마음을 빼앗겨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소지로와의 첫사랑이 덧없게 끝나자 키요하는 사랑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바깥의 삶 또한 유곽 안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자발적으로 오이란이 된 키요하는 막부의 수장으로부터 사랑을 얻고 그의 청혼으로 유곽을 떠날 수 있는 특권까지 누리게 되지만, 평범한 일반인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2007년 개봉된 영화 [사쿠란]은 2006년 개봉작인 [게이샤의 추억]과 비교 되곤 한다. 서구의 남성적 시각으로, 사랑에 연연하는 소극적 여인들을 표현해 많은 비난을 받았던 [게이샤의 추억]과 반대로 능동적인 여성상을 표현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사쿠란]의 능동성은 어디까지나 위장된 주체성에 불과하다. 게이샤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기로 한 키요하는 결국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의 광고 카피처럼 몸을 파는 여인으로서의 자신의 상황을 즐기기로 마음먹는다. 어린 시절 보았던 오이란 쇼히(칸노 미호)가 그랬던 것처럼, 키요하 역시 손님과의 잠자리에서 여성상위의 체위를 한 채, 한껏 흥분한 연기로 고객을 만족시키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자신감을 표하며. 결국 영화 [사쿠란]에서 여성의 주체성은 남성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여성에게만 허용된 것이었다. 남성의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발휘할 수 있는 그녀의 권력은 화려하게 치장된 기모노와 유곽의 풍경처럼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덧없는 쓸쓸함과 연결된다.

명기로의 자질을 타고 난 키요하는 자신의 재능으로부터 나온 이 권력에 큰 애착을 가지지 않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쿨’한 여성인 양 행동한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언제든지 내버릴 수 있다는 그녀의 이런 태도는, 그러나 소유하고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런 그녀를 질투해 험담을 일삼다가 결국 제풀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나이 들어 유곽에서조차 받아주지 않는 몸이 되어 허름한 삶을 마감하는 운명에 처하고 만다. 그래서 이 영화는 결코 전복적이지 않다.



[사쿠란]의 감독은 패션 사진작가 니나가와 미카로, 그녀의 아버지는 영화감독인 니나가와 유키오이다. 이 때문에 이 영화는 2006년작 [마리 앙투와네트]와 비교되기도 한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딸로 유명한 소피아 코폴라가 감독한 [마리 앙투와네트] 역시, 상류층 자녀로 성장한 여성의 시선에 담긴 성장의 한계가 뚜렷한 영화였다. 마찬가지로 [사쿠란]은, ‘알파걸’로 성장할 수 있었던 든든한 배경을 지닌 여성이 만들어냄직한 영화의 한계를 안고 있다. 감독인 니나가와 미카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일류 사진작가 대접을 받으며 등장, 패션화보를 발표하는 등 '알파걸‘로서의 삶을 선도해왔다. 훌륭한 조건을 지닌 채 태어나, 성공의 수순을 밟으며 성장한 여성들이 만들어내는 이런 영화들은 언제나 자신만만한 태도로 뭐든지 버릴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포장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러나 이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태어나 모든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획득해야 하는 삶 속의 여성들에 대해 무지하다. 사진작가답게 화려한 영상으로 일관하는 [사쿠란]의 미적 태도에는 결국 ’소비‘를 통해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려는 여성의 허영심이 내제된다.

중산층이 아닌 소시민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착각해 ‘보수’를 자처하는 사회. 셀리브리티의 라이프스타일을 선망하고, 스스로를 알파걸로 생각해 자신만만한 태도로 살아가는 여성들로 가득 찬 사회는 이러한 영화를 끊임없이 양산시킨다. 인생에 대한 심오함이 누락된 채, 쿨한 척 연기하는 것을 ‘성장’과 동일시하는 철없는 이런 태도들은, 이들을 선망하는 소비자들의 열광 속에서 생산과 소비를 반복하고 있다. [사쿠란]은 능동적 여성을 그린다는 핑계 하에 화려한 기모노와 장신구,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마음껏 카메라에 담고자 한, 감독의 열망만이 존재한다. 그녀는 현기증이 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