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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피비린내조차 삼켜버릴 만큼 지독한 황량함

by 늙은소 2008. 2. 19.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감독 에단 코엔,조엘 코엔

출연 토미 리 존스,하비에르 바르뎀,조쉬 브롤린

개봉 2008.02.21 미국, 122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1980년 미국 서부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미국 작가 코맥 맥커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소설의 제목은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의 첫 구절인 ‘저것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에서 인용되었다. 예이츠의 시와 맥카시의 소설, 코엔 형제의 영화는 동일한 주제와 반복되는 몇 개의 상징을 전 후에 동일하게 배치시킴으로써 전혀 다른 목소리로 동일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영화는 연쇄살인마인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가 자신에게 채워진 수갑으로 부보안관을 죽이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무표정한 안톤 시거와 몸부림치는 부보안관의 몸짓이 대조를 이루고, 카메라의 시점은 냉담하게 두 사람을 내려다본다. 수갑의 사슬이 부보안관의 목을 파고드는 것과 동시에, 수갑은 안톤 시거의 손목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이윽고 두 사람의 피는 한 데 섞여 보안관실 바닥에 흩뿌려진다. 침묵하는 육체와 살기 위해 소리치는 육체. 안톤 시거는 죽어가는 부보안관의 육체를 끌어당기며 똑바로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는 누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영화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인 루엘린 모스(조쉬 브롤린)의 사냥 장면으로 전환된다. 사슴 사냥을 위해 사막에 온 모스는 노련하고 침착한 사냥꾼답게 침묵할 때와 기다릴 때를 알고 있다.
사슴을 뒤쫓던 중 모스는 사막 한 가운데서 여러 구의 시체와 몇 대의 차량을 발견한다. 그리고 마약을 가득 실은 트럭 안에는 유일한 생존자가 총상을 입은 채 모스에게 ‘물을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스는 그에게 물을 주지 않고, 마약 거래에 쓰였을 게 분명한 돈가방을 찾기 위해 자리를 떠난다. 결국 모스는 240만 달러가 든 가방을 발견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밤이 되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물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걸린 모스는 다시 현장을 찾아가고, 그 자리에서 마약 거래상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사냥하러 나갔다가 사냥감이 되는 상황이 시작된 것이다.

마약상들은 루엘린 모스와 사라진 돈가방을 찾기 위해 여러 명의 킬러를 고용한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바로 안톤 시거. 모스는 멕시코 총잡이들과 냉혹한 살인마 안톤 시거를 피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오가며 점점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사건의 수사를 진행하는 에드톰 벨(토미 리 존스) 보안관은 해결하기에는 벅찬 사건임을 예감하면서 이들의 뒤를 추격한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3명의 주인공은 각기 다른 상징이 되어 황량한 사막과 건조한 텍사스의 도시를 오간다.
모스는 당시의 미국사회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원작소설에서 모스는 36세이며 명사격수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홀로 살아남은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평범한 용접공으로 보기에는 킬러로서의 능력이 뛰어난 모스는 안톤 시거와 대적하여서도 쉽게 물러나지 않을 정도의담력과 사격술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의 문제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에 있다. 전쟁에서 돌아온 후에도 일상에 완벽하게 복귀하지 못한 그는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며 정기적이지 않은 일자리와 나이차가 많이 나는 아내와 함께 총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돈 가방에 대한 그의 집착은 결국 어리석게도 그와 그의 가족 모두를 파멸시킨다. 탐욕스러운 인물이 아니었음에도 결국 눈앞에 놓인 횡재를 선택한 모스는, 240만 달러를 위해 자신이 지불하게 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못한 채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보안관 벨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삼촌들까지 모두 지역 보안관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나, 30년 가까이 보안관을 지낸 인물로, 은퇴를 결심한 상황이다. 그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점차 심각해지는 범죄에 대한 걱정을 쏟아놓는다. 그런 걱정 속에서 이제는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포기하게 된 벨은 보안관직에서 은퇴함으로써 미국 사회의 미래를 포기하고, 과거의 가치를 단절시키는 선택이 불가피함을 토로한다.

70대 후반인 삼촌과 50대 후반인 자신, 그리고 30대 후반인 모스와 안톤 시거로 이어지는 20년 차이의 시간은 다시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와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세대(원작 소설에서 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부상당한 전우들을 버린 채 홀로 도망쳐 온 뒤 훈장을 받게 되었다며 고백한다), 그리고 베트남전을 치른 세대로 연결되며 미국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 축의 방향을 암울하게 그려낸다. 그 결과, 벨은 사라지는 가치, 과거로만 남은 정의를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잡게 된다.



안톤 시거는 순수한 악을 대표하며 동시에 심판자로서의 신의 대리인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하늘을 똑바로 바라보며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시작하는 안톤 시거에게 살인 행위의 주된 도구는 산소탱크와 연결된 호스이다. 그는 이 위험해 보이지 않는 도구를 들고 마치 세례를 하는 신부처럼 상대의 이마 한 가운데에 호스를 겨냥한다. 그리고는 동전을 던져 상대의 생명을 걸게 한다. 동전의 앞뒤를 부른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또 구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영화 후반에 이르면 모스의 아내에 의해 이 결정의 주도권은 안톤 시거 자신에게 있음이 확인된다. 그녀는 안톤 시거를 향해 ’결국 동전은 당신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죽일 사람과 죽이지 않을 사람에 대한 기준이 안톤 시거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파멸시키기로 한 도시에 내려온 신의 대리인처럼, 심판이 모두 끝난 뒤 이를 시행해야할 처단자처럼 안톤 시거는 생명의 근원적 요소 중 하나인 산소를 이용해 사람들의 목숨을 거둬들인다.
이처럼 상당한 스릴러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긴장감을 가득 안은 채 종교적 상징과 시대에 대한 비판정신 모두를 획득한다. 

원작 소설에서는 70대, 50대, 30대 뿐 아니라 10대인 가출 소녀 한 명과 두 명의 소년을 등장시켜 이러한 주제 의식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아이들은 마약을 한 채 차량을 몰아 안톤 시거의 차와 충돌하기도 하고, 길에서 주운 권총을 팔아 다른 범죄에 쓰이게끔 방조하기도 한다. 그들은 과거를 무가치하게 여긴다. 어제 내가 깨어난 시간이 왜 중요한지, 내가 어디서 왔는지, 하루가 쌓여 과거가 되고, 현재가 다시 과거로 축적되리라는 생각을 그들은 하지 않는다.

작은 가게의 주인이 안톤 시거를 향해 ‘당신은 어디서 왔느냐’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이 온 곳과가게의 문을닫는 시간과잠드는 시간처럼 사소한 행위들이 쌓여 결국 모든 행위가 결산되리라 이야기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행위에 대한 결과와 책임이며, 역사는 새로 쓰여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240만 달러를 획득함과 동시에 부과될 책임과 그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보여주는 세계에서 미국은 자신이 치른 전쟁의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
이 작품은 여러 부분에서종교적 은유를 생각하게 한다.
유일하게 남은 생존자가 요구한 물의 이미지는 사마리아인에 대한 은유가 될 수 있으며, 다시 모스가 살기 위해 건너는 강과 국경을 넘으며 가방을 버리는 강과 연결된다. 사막과 물의 대비, 그림자와 빛의 대비 역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이다. 문 틈 아래 비치는 사람의 흔적과, 안톤 시거가 산소 탱그로 자물쇠를 제거하여 빛이 들어오게 된 원형의 빛 등.. 이 영화에는 은유의 변칙적 사용이 자주 눈에 뜨인다.

코엔형제가 원작을 영화화하며 각색하지 않고 '편집' 했다는 말에 동감할 만큼 소설과 영화는 상당히 많은 장면에서 흡사하게 전개된다. 그러나 삭제된 것들 역시 상당부분 있음에도 원작의 주제의식의 무게에 손상을 가하지 않고 오히려 스릴러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속도감을 유지하고 있어서 '역시 코엔 형제의 이름이 헛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앞서 이야기한 장면들과 몇 개의 상징적인 요소의 부각이 두드러지는데 이런 부분에서 '완성도의 차이'라고 부를 만한 경계가 세워지는 것 같다.

소설의 마지막에 벨의 아내는 '요한 계시록'을 읽고, 벨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약간의 돈을 모두 잃게 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시대의 단절, 역사와 가치의 계승이 자신의 시대에 마감했음을 직감한다.

혼자 살아남은 존재들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