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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비투스 : 과도한 천재 묘사에 따른 부작용

by 늙은소 2008. 5. 5.

비투스

감독 프레디 M. 무러

출연 브루노 간츠,Urs Jucker

개봉 2008.04.09 스위스, 121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영화 [비투스]를 둘러싼 호평 속에는 천재에 대한 환상 못지않게, ‘유럽 영화는 무조건 뛰어나다’는 잘못된 환상 역시 포함되어 있다. 스위스에서 도착한 이 비범한 어린아이는 지금까지 등장한 영화 속 천재들 중에서도 최상위급에 해당하는 능력으로, 그다지 어두울 것 없는 앞날과 딱히 비극이랄 것 없는 사소한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한다. 부모의 과도한 기대와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외로움, 자신을 시기하는 평범한 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내고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는 난관이 바로 ‘비투스’가 성장을 위해 겪어야 할 시련이다. 그러나 시시하다. 천재소년 비투스의 시련이라는 건 사실 평범한 아이들도 겪는 그런 어려움 아니었던가?


[비투스]는 국내 수입되는 외화 중 드물게 ‘스위스’ 국적을 달고 있다. 영화 포스터에는 자랑스러운 수상 경력이 나열되어 있어 작품성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이게 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수상경력은 대부분 ‘관객상’, ‘인기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이 영화는 국적만 스위스인, “상업 대중영화”이다. TV 프로그램 ‘스타킹’과 ‘진실게임’에 배꼽티를 입고 나와 섹시 댄스를 추는 아이들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는 어른들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모양이다. 실제로도 천재 피아니스트인 ‘테오 게오르규’를 주인공 비투스역으로 캐스팅 하여 그가 직접 연주하도록 한 이 영화는, 재주 많은 어린아이를 무대에 올려놓고는 그 묘기를 즐기는 어른들을 위한 영화의 패턴을 답습한다. 카메라는 수시로 비투스가 피아노 연주하는 장면을 삽입하며 자신들의 마케팅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우리는 진짜 천재를 주인공으로 캐스팅 했답니다’가 바로 그것이다.



보청기 개발자인 아버지와 출판사 직원인 어머니를 둔 비투스는 여섯 살에 이미 음악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하며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그러나 아이의 재능은 음악에 그치지 않아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각종 지식을 흡수하는 한편 비범한 수학실력은 물론, 시장 경제 원리를 터득하는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재능을 선보인다. 초등, 중등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고등학교에 진학한 비투스는 최상급의 음악교육을 받기 시작하지만 12살이 되자 삶이 지루해지고 만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들은 자신을 괴물 취급하고, 교사들은 수준이 낮아 공부할 맛이 나지 않는 것이다. 피아노를 치는 것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앞에서 연주를 펼쳐보여야 하는 것도 모두 지겨워진 비투스는 어느 날 사고를 위장하여 ‘평범한 아이’인 양 IQ 120짜리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때마침아버지는 회사에서 쫓겨나고, 천재 아들 둔 낙으로 살아온 어머니는 아들이 평범한 아이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감당하지 못해 우울증에시달리게 된다.

불행이 집안에 드리우자 비투스는 꾀를 내어 이를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평소 자신을 이해해주던 할아버지와 함께 주식시장에 뛰어 들어가 놀라운 능력으로 거액을 벌어들이기 시작한 것. 그렇게 번 돈으로 부모 몰래 자신만의 집을 사들인 비투스는 이곳에서홀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자신의 첫사랑을 찾아가 돈을 과시하며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도 한다. 주식으로 번 돈이 목표한 금액에 이르자 비투스는 아버지를해고한 회사를 사들여 보기 좋게 복수에 성공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꿈을 찾은 비투스는, ‘피아니스트’의 삶을 선택한다.



이 영화는 모순된 기대를 ‘비투스’에게 드리우고 있다. 천재인 비투스에게 아이다운 삶을선택할자유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동시에, 어떤 어른보다 더 뛰어난 능력과 판단능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어른들이 진정 바라는 아이의 모습 아닌가? 어른들은 아이가 천진난만하기 바라지만, 한편 거치적거리는 일 없도록 조숙하기를 바라기도 하니 말이다.


비투스는 어른들이 이상화하는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천재여서 괴롭거나, 천재여서 미쳐버릴 만큼 예민하지도 않으며, 부모의 경제적 걱정까지 한 번에 해결해 집안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평범한 아이’로 살고 싶다며 사고를 위장한 비투스이지만 막상 자유가 주어지니 어른처럼 양복을 차려입고는 여자를 찾아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는 등 결코 아이답지 않은 삶을 택하고 만다. 고급 주택에 고급 양복을 빼입고, 비싼 음식점에 여자를 데려가는 비투스의 모습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익히 보아온 상투적 패턴을 답습한다. 어른의 몸과 아이의 영혼이 뒤섞인 영화 [빅]의 아파트, 주체할 수 없는 부를 마음껏 과시하던 [리치 리치]의 맥컬리 컬킨은 어떠했던가.

천재란 남보다 뛰어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두뇌활동의 비정상적 발달이 불러 온 불일치의 결과물에 더 가깝다. 지나치게 뛰어난 음악적 재능은 예민한 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소음들로 늘 피곤하고, 빠른 지식 습득력은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불러오기 십상이다. 그들의 외로움은 수준에 맞는 이야기 상대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지나치게 이른 나이에 "우월감부터 익히게 된 아이의 폐쇄성"이 더욱 큰 자리를 차지한다. 상대가 그들의 수준에 맞지 않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서 배울 점을 찾으려는 노력 자체를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한 탓이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을 보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다. 놀이터에서 뛰어놀지 못한 그들의 어린시절이 불쌍한 게 아니라, 독선에 빠지기 쉬운 그들의 삶이 걱정스러운 탓이다. 천재로 태어난 아이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성장을 스스로 책임져야만 한다. 그들의 특수성을 파악해 올바르게 이끌어줄 어른이 없다면, 아이 스스로 자신을 성장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면에서 우월하지 않으며 완벽하게 어른스러울 수 없는 아이라는 한계를 짊어지고 있다. 결국 성장은 불균형을 잉태하고, 이러한 불일치가 사회와 사람들,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불화를 일으킨다.

‘외롭다’고 호소하는 것 말고는 별다를 게 없는 "천재 쇼"는 영화에서 그만 봤으면 싶다.

그들의 외로움은 적어도 이보다는 더욱 깊고 처절한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