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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스파이더맨3 : 영웅도, 악당에게도 삶은 힘든 것임을

by 늙은소 2008. 5. 6.

스파이더맨 3
감독 샘 레이미 (2007 / 미국)
출연 토비 맥과이어, 커스틴 던스트, 제임스 프랭코, 토퍼 그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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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스파이더맨3]이 개봉했다. 영웅들 삶도 고달프겠구나 진작부터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처럼 딱한 영웅은 처음이다. 슈퍼맨은 외계 왕자 출신인데다 능력도 슈퍼헤비급이라 석탄으로 다이아를 만들어 팔아도 먹고 살았을 것이며, 배트맨은 타고난 게 재벌이었다. 그들과 비교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스파이더맨은 오히려 기존의 영웅들과 큰 차이를 이루며, 슈퍼 영웅의 필요조건에 ‘뒷바라지’가 포함되어 있음을 부각시킨다. 싸울 때마다 찢어지고 망가지는 장비들을 보관해 둘 비밀기지와, 여러 잡무를 처리해 줄 충직한 집사, 무기개발을 위해 필요한 자금 등.. 영웅은 ‘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마음 편히 환호하며 볼 수 없는 것은 스파이더맨의 부족한 환경이 못내 미안해서다. 절절한 사이라며 서로의 우정을 과시하는 해리가 미운 것 역시, 그가 아버지의 죽음을 파커의 탓으로만 여기기 때문도, 엠제이를 유혹해서도 아니다. 그렇게 잘 살면 궁전 같은 집에서 방 하나 내어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등록금에 쓰라며 무이자로 돈 좀 빌려주면 어떤가. 그런 친구 사귀어봤자 상대적 박탈감만 더할 뿐이라며 절교를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영화 [스파이더맨 3]에서는 영웅도, 심지어 악당도 삶의 너절함에 발목 잡혀 살아간다. 해리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에 굶주려있으며, 샌드맨은 죽어가는 딸의 수술비가 절박하다. 베놈은 사진기자 일자리 하나 꿰차는 것이 희망인 소시민에 불과하다. 각자 악당과 영웅이 되어 싸우지만, 악당은 그 꿈이 소박하고 영웅은 당장의 생계가 절박하다. 그렇기에 마냥 신나서 볼 수 없는 영화가 바로 [스파이더맨] 시리즈다. 

[스파이더맨 3]에서 파커는 그럼에도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도시는 평화롭고, 사람들은 스파이더맨을 사랑하였으며, 엠제이와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갈 꿈이 그의 내부에 가득하였다. 설상가상, 스파이더맨을 죽이겠다 덤벼들던 친구 해리(고블린 주니어)는 단기기억 상실에 걸려 예전의 절친한 친구로 돌아와 있었다. 가지지 않은 자 보다, 가졌다가 잃는 자가 더 큰 고통을 느낀다고 했던가. 파커는 소박한 행복이 하나 둘 파괴되어가는 상황에서 어둠에 물들기 시작한다. 고통 받는 자를 숙주로 삼는 심비오트에 감염된 파커는 자부심이 오만함으로, 자긍심이 자만으로 변질되며 본래의 심성을 잃게 된다.


물론 영화공식에 따라 파커는 다시 본래의 스파이더맨으로 돌아오고, 악당들을 물리친다. 그런데 나는 통쾌하지가 않다. 사는 것이 고달픈 파커가 우울해 했기로서니, 삼촌을 죽인 진범을 향해 복수심을 키웠기로서니, 기다렸다는 듯 블랙슈트가 등장해 ‘너는 착하게만 살아야 해’를 강요할 것 뭐 있는가. 행동 뿐 아니라 영혼과 생각까지 감시당하는 입장이라면 누가 슈퍼영웅을 할 것인가. 잠시 어두운 생각 좀 했다고 ‘한 눈 팔면 바로 너도 악당으로 변한다’라니, 협박이 아니고 뭐겠는가. 어려서도 영웅이 될 생각은 없던 소박한 나였지만, 이 쯤 되면 영웅이 되겠다 꿈을 키우는 동네 아이들까지 말리고 싶을 정도다.


‘큰 능력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가 [스파이더맨 1]의 주제였다면 [스파이더맨 3]은 ‘선택이 우리를 결정한다’며 선택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한다. 타임 스퀘어 광장에 서서 스파이더맨이 시민상을 수상하게 됐다는 기사를 보는 파커에게 한 노인(그는 스파이더맨의 창시자인 스탠 리 본인이다)이 다가와 이야기한다. 한 사람 만으로도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고.

우리가 모두 영웅이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영웅이 고독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것을 방관하지 않았으면 싶다. 받는 것에 익숙해져, 환호하는 것으로 역할을 다 했다 손쉽게 생각한다면 결국 영웅도 지치지 않겠는가.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기도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을 한 사람에게만 떠맡겨도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