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읽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 모래가 감추고 있는 것은 우물 만이 아니다

by 늙은소 2008. 8. 17.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감독 김지운

출연 송강호,이병헌,정우성

개봉 2008.07.17 한국, 139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웨스턴 장르는 19세기 중반 서부 개척 시대를 주 배경으로 삼는다. 미지의 땅을 선점하기 위한 랜드러시(Land Rush)가 포장마차를 타고 서부를 향하는 가족단위의 이동을 다루었다면, 뒤이어 이곳은 황금광산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골드러시(Gold Rush)로 소란스러워진다. 석유를 향한 블랙러시(Black Rush)가 시작되며, 다시 한 번 서부는 개척과 투쟁의 공간으로 떠오르며 20세기를 맞이한다. 미국인들에게 있어 서부는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의 땅이자 동시에 중앙 권력이 미치지 않는 무법의 장소였다. 지켜야 할 법은 멀리 있고, 차지할 부는 가까이 있는 곳. 이곳에서는 누구나 손쉽게 총을 빼들었고, 그렇게 서부는 스스로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장소가 된다.



웨스턴 장르를 표방하며 등장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놈놈놈)에서 만주는 미국 서부와 반대의 의미로 존재한다. 보물지도와 열차강도가 등장하며 웨스턴 무비의 익숙한 장면이 연출되지만 이곳에 희망에 찬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세 명의 ‘놈’은 모두 나라를 잃은 조선인이다. 살인귀라 불리는 자도, 손가락 절단범이라 불리는 자도, 심지어 이들을 추격하는 보안관 같은 놈에게도 돌아갈 조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저마다 보물지도를 얻어 그것으로 부를 얻기를 희망하지만 그렇게 얻은 부로 어떤 꿈을 이루고 싶은지 대답하는 자는 많지 않다. 고향에 돌아가 땅을 사고 소를 키우겠다며 이상한 놈은 말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향과 땅이 국가에 의해 보호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보물찾기 모험은 막다른 길을 향해 달리는 기차처럼 속도는 있으되 마냥 흥겹지 못하다.

정통 웨스턴이 기회의 땅 위에서 펼쳐지는 모험극이었다면 [놈놈놈]의 만주벌판 웨스턴은 더 이상 내몰릴 곳이 없는 자들의 한판 난리굿에 가깝다. 여기서 김지운 감독의 오리엔탈 웨스턴은 전혀 다른 변종으로 탈바꿈한다. 정통 웨스턴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권력이 명확하지 않은 시기, 그 땅의 원주민들을 사냥하듯 제거하며 얻은 대가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김지운 감독의 만주벌판 웨스턴은 더 이상 빼앗길 게 없는 이들이 모두가 외면한 척박한 땅으로 내몰려, 몇 안 되는 이익을 놓고 벌이는 진흙 싸움에 가깝다. 만주는 기회의 땅이 아니라, 기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내버려진 땅이며 그렇기 때문에 귀시장(貴市長)은 각국에서 내몰린 무국적 하류인생의 집합소가 된다.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는 보물지도는 황금이 아닌 석유가 매장된 곳을 가리키는 지도였다. 만약 이들에게 국가가 있고, 평등한 권리가 보장된다면 석유는 막대한 부로 탈바꿈해 한 개인의 삶을 바꿔 줄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평등한 권리를 보장해 줄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석유 채굴권이 주어질 리 없고, 석유를 운송할 시스템도, 대등한 상대로 석유를 거래할 신분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의 한계치를 이미 경험한 자들의 싸움은 그래서 마냥 호쾌하지 않은 둔탁함이 배어있다.



김지운 감독은 식민지 시대의 만주와 일제치하의 독립운동이라는 애국주의적 모티브를 전제로 사용함에도 이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놈놈놈]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정통 웨스턴을 차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당 장르가 버나큘러(Vernacular)적 변형을 거치게 되었다는 점이다. 1930년대의 만주라는 공간이 지닌 상징과 조국을 상실한 범죄자들이라는 도구는 이 영화만의 고유 필터가 되어 독특한 웨스턴의 미감을 형성한다.

귀시장의 범죄자들과 세 명의 놈들은 이러한 버나큘러(풍토적, 토착의) 디자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정통 서부영화의 주인공에 가장 근접한 박도원(정우성)의 의상과 캐릭터에 비교한다면 박창이(이병헌)와 윤태구(송강호)의 모습에는 토착적인 변형이 가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양수리 주변에 들어선 라이브카페와 레스토랑들의 풍경과, 무수히 많은 웨딩홀들의 건축양식을 떠올려 보자. 전통적인 바로크 건축 양식을 가져온 것도 아니며 고딕 양식의 핵심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건축업자들이 만들어 놓은 엉터리 건축물들의 범람. 모든 문화의 양식과 장르, 스타일은 전성기를 맞이한 다음 확산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와 민족을 만나 변형을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어떤 것은 양수리 카페처럼 양식 불명의 엉터리 디자인이 되고, 어떤 것은 토착적인 요소와 결합해 원본과는 또 다른 그만의 새로운 장르로 자리를 잡게 되기도 한다. 귀시장 무리의 의상과 태구 등의 모습은 펑크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러운데, 사실 이것은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는 과정에서 토착적인 요소와의 결합하며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과도기의 모습을 다소 우스꽝스럽게반영한 것이다.

[놈놈놈]은 ‘오리엔탈 웨스턴’, 혹은 ‘수정주의 웨스턴’에서 더 나아가 ‘탈 웨스턴’적인 면을 갖추고 있다. 이 영화는 만주에서 웨스턴 영화를 촬영한 것도, 만주식 웨스턴 영화를 만든 것도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보다는 기회의 땅이었던 웨스턴을꿈꾸는 이들, 기회가 제공되지 않은 척박한 시대를 살아가며민족적 한계를 경험한 자들이 서구의 웨스턴을 동경하며 펼치는 일종의 역할극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자유연애와 '자유'를 구분하지 못하는 시대, 신문물로 치장한 외양과 서구적 사고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던 시대. 1930년대는 우리에게 그런 시대였다. 급격한 변화를 내부로부터가 아닌 외부로부터 먼저 받아들이게된 시대였으며,외양을 바꾸는 것이 정신을 바꾸는 것이라 착각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창이는 비적의 두목이지만 범죄집단의 두목을 흉내낼 뿐 이들을 이끌 만한 목적의식을 분명히 제시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부하들은 ‘비적단’이라는 환상을 안은 채 자신의 역할에 몰입한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가 무엇인가를 연기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는데, 그것은 연기력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 속 인물들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김지운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 연결되는 공통점이다. [달콤한 인생]의 역설적인 제목과 [장화 홍련]의 자아 분열처럼.

김지운 감독은 늘 영화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자신이 웨스턴 무비라 생각하며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려 애쓰는 영화이다. [장화 홍련]에서 수미가 스스로를 동생 수연이라 생각하며 그녀의 죽음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