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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The Dark Knight : Who ought to rule?

by 늙은소 2008. 9. 5.

다크 나이트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크리스찬 베일,히스 레저,아론 에크하트,마이클 케인,매기 질렌홀,게리 올드만,모...

개봉 2008.08.06 미국, 152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1. 고담시(Gotham City) : 뉴욕에서 시카고로

본래 고담(Gotham)은 '멍청이들의 도시'라는 의미를 지닌 속어로, 뉴욕을 부르는 명칭으로도 사용된다. DC 코믹스에서 베트맨 시리즈를 발표할 당시 그들이 배경으로 삼은 고담시는 뉴욕을 암시하는 한편, '소돔과 고모라'를 축약한 이중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만화에 종종 등장하는 고담시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1635년 처음 발견된 이후 영국령으로 지배되었다가 남북전쟁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뉴욕과 거의 유사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시리즈가 처음 영화화될 당시 감독이었던 팀 버튼은 아르데코 양식의 20세기 초 건축물로 이루어진 마천루에 표현주의적 색채를 가미해 자신만의 베트맨 시리즈를 창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은 [베트맨 비긴즈]에 이어 [다크나이트]를 촬영하며 주 로케이션 장소를 뉴욕이 아닌시카고로 결정한다. 시카고는 1930~40년대 갱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알 카포네가 마피아 조직을 결성해 활동한 것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알 카포네는 본래 뉴욕 출생이나 범죄의 도시로 불리던 시카고로 이주해 이곳에서 범죄조직을 장악하고 정부 관료와 경찰에게 뇌물을 공여하였으며, 밀주를 판매해 막대한 부와 권력을 획득한다. [다크 나이트]는 시카고의 이미지를 강하게 주입하며, 오랜 기간 동안 범죄조직에 의해 지배되어 온 도시의 지배적 정서를 고담시에 드리운다. 분열적 자아로 갈등하는 팀버튼의 고독한 영웅이뉴욕에 거주하는 도시인의 정서를 반영했다면, 이제 베트맨은 외부의 적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건조하고 바람이 많은 도시, 시카고를 고담시로 설정함으로써 외부와의 끝없는 싸움으로 내부를 돌아볼 여력조차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시카고가 범죄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 것은 몇 가지 배경에 의해서이다. 이민자의 유입이 활발하던 19세기 말, 시카고에는 이탈리아 이민자 유입이 많았으며 이들이 조직한 자경단이 이후 폭력조직으로 변질되었다는 것. 또한 19세기 말 시카고에 발생한 대형 화재가 건조하고 바람이 많은 지리적 요인과 결합하며 당시 시카고 인구의 1/3이 거주지를 잃을 정도의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고 경제공황과 1차 대전을 거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범죄조직이 활발히 활동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들은 경찰과 관료에게 뇌물을 공여해 자신의 범죄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사법권을 약화시켰고, 행정권에도 영향력을 끼칠 정도로 막강한 규모로 성장하였다. [다크 나이트]는 바로 이곳, 시카고의 역사을 덧입으며시작한다.



2. 권력론 : [다크나이트]의 정치학

과거 정치권력에 대한 정의는 '국가'나 '지배자'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이러한 형식주의에 반기를 든 정치학자들은 국가개념을 고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권력 투쟁 과정에서 생성되는 사회 집단의 하나로 보기 시작하며 ‘권력론’을 제기한다(Bentley 등). 권력론은 정치 현상을 권력 관계로 파악한다. Easten은 인간 사회에 권력투쟁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무한한 욕망과 유한한 가치의 배분문제가 대립을 유발하며, 공정한 분배 기준을 제도화하기 위해 권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폭력조직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들은 정당한 정치조직을 폭력조직과 구분하기 위해, '피지배자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한 조직'을 정당한 권력집단으로 한정시킨다.

그러나 영화 [다크나이트]에 등장하는 권력체 중 시민들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한 조직은 많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정부조직은 사법기관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삼권의 균형견제를 통해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던 미국의 정치제도는 고담시에서 만큼은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이들은 장기간에 걸친 부패의 만연과 비대해진 범죄조직과의 싸움으로 인해 사법권이 지나치게 강화되는 '경찰국가'의 모습을 취하게 되었다. 더불어 범죄소탕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경단의 출몰은 배트맨을 영웅시하는 시민들의 출현으로 더욱 확대되고 만다.

권력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공동목적이 합의를 이루었을 때, 한쪽은 강제에 의해 지배권을 획득하며 다른 한 쪽은 동의에 의해 피지배를 수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시민은 행정과 입법에 있어 투표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지배와 피지배가 역의 관계로 작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사법권을 시민이 지배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미비하며 시민은 사법기관에 의해 지배될 수는 있어도 사법기관을 지배할 수는 없는 구조를 취하게 된다. 안보와 사회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군대와 유사한 사법기관은 다른 조직(입법과 행정)에 비해 수직적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상명하복식 명령체계를 취한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는 범죄조직의 구조와 비슷하다. 결국 [다크나이트]는 시민을 지배하는 두 개의 권력이 충돌하는 영화이며, 그 두 조직이 각각 하나씩의 조커(베트맨 역시 돌발변수라는 측면에서 조커에 해당)패를 제시함으로써 게임의 모든 규칙을 스스로 허물고,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과정을 그린다.

브루스 웨인은 베트맨이 사라진 다음 고담시를 책임질 인물로 청렴하고 정의로운 검사 ‘하비 덴트’를 주목한다. 베트맨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고담시에 범죄가 발생하지 않거나, 적어도 체계 안에서 법 집행을 수행할 정의로운 인물이 필요했던 탓이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강한 폭력이 더욱 강한 폭력을 야기한다는 반성에도 불구하고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악당들이 베트맨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가 자신들보다 더 강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범법자임에도 불구하고 보호받아야 할 최소한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고든국장을 비롯한 사법기관과 행정부가 베트맨과 모종의 협력관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은 고담시의 시민 뿐 아니라 범죄조직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것은 분명 손쉬운 해결책이지만 동시에 권력의 정당성을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를 읊어주지 않는 이 어둠의 집행자는, 자신이 정한 정의 규율에만 복종할 뿐 법률로부터 자유롭다. 범죄자들은 베트맨이 자신의 정의기준을 바꾸어 부당한 처벌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조커가 베트맨으로 하여금 자신의 Identity를 드러낼 것을 요구하는 것은 베트맨이 가면으로 브루스 웨인의 삶을 보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Identity를 지니지 않은 인물에게 법의 한계는 적용되지 않으며 그 때문에 치외법권이 베트맨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맨은 형벌주의자이다. 그는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것이 정의의 실현으로 굳게 믿고 있으며, 범죄가 만연하게 된 배경에 대하여, 범죄를 예방하거나 범죄자를 계도하는 데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폭력이 폭력을 부른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도 폭력을 폭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은 떠올리지 못하는 영웅. 이처럼 베트맨 뿐 아니라 많은 슈퍼 히어로物이 경찰과 정부의 권력이 막강한 사회체계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3.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베트맨의 신화는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전 판사로 재직 중이던 솔로몬 웨인(Solomon은 Solo와 man으로 분리된다)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고담시를 재건한 인물로, 웨인가문은 이후 세대를 거듭하며 부와 명예를 계승해왔다. 팀 버튼 감독은 베트맨 1편에서 브루스 웨인의 부모가 악당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촬영하며'군주(Monarch)'라는 이름의 극장을 배경으로 비춤으로써 베트맨에게 '왕위 계승자'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또한브루스 웨인은 영국인 집사와 영국 귀족가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건축물에 둘러싸여 성장한다.

베트맨의 권력은 시민의 동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베트맨'이라는 가면과 상징성으로부터 비롯된다. 그의 가면은 왕관과 같다. 그리고 이제 그는 하비 덴트에게 '기사 작위'를 내리려 한다.

베트맨과 하비 덴트 진영의 연이은 패배는 왕과 귀족으로 태어난 자의 오만함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은 절대 다수의 시민으로부터 동의를 구해 권력을 획득한 경험이 없으며, 자신의 정의로움이 정당한 권력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하비 덴트는 양면이 있어야 할 동전을 앞면만 나오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절대정의를 과신하며, 결국 극단적인 양면성을 경험한 후 분열을 감당하지 못해 내파하다. 정당성을 획득하는 과정이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자는 그래서 위험하다.

조커는 정부와 경찰, 범죄조직은 물론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영웅들을 내부로부터 파괴하고, 시민들의 손에 '처벌권'을 쥐어줌으로써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기본 명제를 되묻게 한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것이 올바른가. 공공의 선을 위해 부당한 처벌을 가하는 것의 윤리학에 대하여.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체계과 법, 질서의 기본 원칙이 무엇이며 그것의 정당성은 어디에 기인하는지...

그로 인해 조커는 역설적인 캐릭터로 탄생한다. 무정부주의자인 양 행동하며 살인을 일삼지만 그의 행위에는 끝없이 되묻게 만드는 힘이 있다.

베트맨은 조커가 틀렸음을 입증하기 위해 스스로 왕의 자리에서 내려온다. 그러나 경찰과 개에게 쫓기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베트맨의 마지막은 영웅의 몰락이어서 슬픈 게 아니라, 고담시에 희망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그의 오만함 때문에 불편하다. 조커가 말하고자 한 진실은 성악설에 기반한 사회의 모습이다. 그는 홉스(Hobbes)의 주장처럼 삶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임을 강조한다.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이기적이며 비열하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희망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합의하는 정의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하고 거기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절망을 감내할 수 없으리라 예단하는 베트맨의 속단에 나는 자존심이 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