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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헬보이2 골든아미 : 지나친 자기 확신

by 늙은소 2009. 1. 2.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서는 오컬트의 힘을 빌어 전세를 역전하려는 세력이 등장한다. 이들은 흑마술사인 라스푸틴의 도움으로 악마 오그드루 자하드(Ogdru Jahad)를 불러내려하나 이 계획은 결국 실패하고, 그 과정에서 오그드루 자하드의 아들이자 지옥문의 열쇠인 ‘헬보이’가 지상에 남는다. 당시 현장에 있던 브룸 교수는 헬보이를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헬보이가 B.P.R.D.(Bureau of Paranormal Research & Defence)의 일원이 되어 인류를 위해 싸우는 전사가 되게끔 아버지의 역할을 책임진다. [헬보이 1]은 지옥문의 열쇠인 헬보이가 악마로서의 자신을 부정하고, 사랑하는 여인과 인류 전체를 악으로부터 구하는 내용을 다루었다.

4년 뒤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헬보이 2-골든아미]에서 헬보이는 더 이상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지 않는다. 전편에서 자신의 능력과 본질을 극복하지 못해 방황하던 주인공들은 2편에 이르러 오로지 새로운 적을 무찌르는 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악마의 아들이며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헬보이의 특성은 2편에도 등장하나 극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며, 단지 다음 편을 기약하는 복선으로 작용할 뿐이다. 



[헬보이 2]는 사실상 주제의식이 희박한 영화이다. [판의 미로]를 비롯해 감독 데뷔작인 [크로노스]에서 예술적 성취와 주제의식을 동시에 담아내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유독 [헬보이] 시리즈에서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러한 불균형은 2편에 이르러 더욱 과도해진다. 다크호스 코믹스에서 매니아 층을 형성하며 활동해온 마이크 미뇰라의 원작만화 헬보이를 영화화한 기예르모 델 토로는, 하워드 필립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Cthulhu)에 기반한 암흑의 세계관을 실사화 하는데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이 어두움의 신화를 관통하는 세계관과 감독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는 실패를 거두고 만다.



1955년 크리스마스, 소년 헬보이는 브룸 박사에게서 고대 신화시대에 발생한 인류와 엘프 간의 싸움에 대해 듣는다. 자연을 파괴하고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인간들에게 분노한 엘프의 왕은 고블린이 개발한 불사의 전사, 황금군대를 앞세워 인류를 처벌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싸움이 세상을 피로 얼룩지게 하자 왕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휴전을 선포하고, 약속의 징표로 황금군대를 다스리는 황금왕관 조각 중 하나를 인간에게 보낸다. 그러나 누아다 왕자는 왕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다시 깨어나 인간을 처벌할 것을 약속하며 사라진다.

1편에서 리즈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 헬보이는 BPRD 요원으로 활약하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인간세계에 보관되어 온 왕관 조각이 사라지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BPRD는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리즈와 헬보이, 싸피엔을 비롯해 새로운 추가 요원을 배속시키며 수사를 진행해나간다. 이들은 사건 수사 과정에서 전설 속의 트롤 마켓을 찾아내 잠입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마침 누아다 왕자를 피해 왕관의 다른 조각을 가지고 은신하던 누알라 공주를 만난다. 누아다 왕자와 누알라 공주는 쌍둥이로 이들은 서로 강한 교감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그 본성은 선과 악, 빛과 어두음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결국 누아다 왕자는 왕관의 모든 조각을 완성해 황금군대를 깨우려 하고, 헬보이 일행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일전을 벌이게 된다.



1편에서 헬보이는 악마로서의 자신과 인간으로 성장하며 형성된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였다. 그는 자신을 키운 양아버지 브룸 박사의 세계관과 자신을 창조한 생물학적 아버지 오그드루 자하드 사이에서 갈등하며 스스로의 의지로 본성을 거부하고 사랑의 감정을 인정함으로써 성장을 경험하였다. [헬보이 2]에서 ‘아버지’는 이제 그의 차례가 된다.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는 누아다 왕자와의 대립은,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헬보이와 아버지의 권위를 찬탈하는 아들의 싸움으로 상징화 하는 게 가능했다. 혹은 괴물이라는 이유로 인류에게 외면당하면서도 결국 그들을 구할 수밖에 없는 모순된 입장에 대한 해명을 통해 헬보이의 정체성을 조금 더 입체화하는 것도 가능했으며, 완전한 존재로 일컬어지는 엘프의 왕자가 왜 인류의 파멸만을 원하는지.. 쌍둥이가 서로 다른 본질을 나누어 가지게 된 신화적 상징을 보다 극대화하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헬보이2]는 익히 보아온 이야기 흐름 속에 우리가 친숙히 여기는 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 장면을 적용시키고 있다. 검의 사용이 능란한 누아다 왕자는 장예모 감독이 ‘영웅’에서 극대화하기 시작한 중국 무협의 예술적 촬영방식을 적용한 것이며, 맞물리며 회전하는 톱니바퀴사이에서 벌이는 대결 장면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루팡 3세-카스트리오 성’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거대한 씨앗이 괴물로 자라나 도시를 위협하다가 사라지는 장면은 ‘원령공주’의 마지막 부분을 떠올리기 충분하다. 임신한 리즈와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헬보이의 관계는 ‘슈렉 3’에서 이미 다루었었고, 선과 악으로 분리된 쌍둥이의 관계는 신화적인 모티브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또한 다양한 괴물이 등장하는 트롤 마켓의 이미지는 스타워즈의 ‘타투인 행성’을 연상시키며 뿌리 잃은 신화시대 괴물의 집합소로 형상화된다. 황금군대 역시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종종 등장하는 거신병의 이미지와 중첩되고 이는 다시 유대전설 속 골렘(Golem)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고 나면 이 영화에는 남는 것이 별로 많지 않게 된다. “인간의 자연 파괴행위에 대한 경고”라는 다소 익숙한 주제와, 특수효과 전문가이며 신화적 생명체를 상상력으로 복원해내는 감독의 예술적 감각이 부족한 주제의식과 스토리를 메워야 하는 것이다. 

영화사에는 형식의 실험성과 예술성이 모든 단점을 상쇄시키는 사례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헬보이 2-골든아미]의 형식적 실험성은 이미 감독이 자신의 전작을 통해 보여주었던 것의 반복이며, 예술성 역시 기존의 것에 새로운(중국 무협과 일본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한) 스타일을 적용하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판의 미로]에서 기예르모 델 토로는 가족사와 연관된 스페인 내란을 다루었었고, [악마의 등뼈] 역시 어린 시절 그가 경험한 것과 자신이 느낀 감성을 담아낸 영화였다. 그는 극히 개인적인 정서와 취향, 경험, 공포를 신화적 아이콘이라는 형식을 빌어 보편화하는 능력이 있는 감독이다. 그러나 [헬보이 2]는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지나친 야심이 오히려 이야기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스타일에 대한 확신이 너무 지나쳐버린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