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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고고70 : 우리가 누구? 소울 브라더스!

by 늙은소 2009. 1. 2.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1960년대 말 대구, 기지촌 클럽을 전전하며 미군들을 위해 컨츄리 음악을 연주하던 상규(조승우)는 자신이 부르는 노래에 이미 지쳐있는 상태다. 새로운 음악을 찾아 다른 클럽을 돌아보던 중 그는 만식(차승우)이 이끄는 밴드의 ‘소울’ 음악에 강한 영감을 얻고, 본격적인 소울 밴드로 활동하기 위해 두 밴드를 합칠 것을 만식에게 제안한다. 보컬이 강한 상규의 밴드와 기타 연주가 뛰어난 만식의 밴드는 6인조 밴드 ‘데블스’를 결성하고, 이들은 미국 본토의 ‘소울’을 연주하며 기지촌 내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데블스는 보다 큰 무대를 찾아 서울에서 열리는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상규를 따르는 가수 지망생 미미(신민아)와 함께 서울로 상경해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은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는데, 이것은 ‘소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 낯설음을 이해하는 과정이 당시의 한국사회에 존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사위원을 맡은 팝 칼럼니스트 이병욱(이성민)은 데블스의 음악에서 미국 음악계의 흐름을 읽었고, 이들의 음악이 한국에서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감지하며 ‘닐바나’ 클럽에 데블스의 무대를 마련해준다. 데블스는 끈적이듯 요동치는 상규의 보컬에 현란한 기타음이 가세하고, 여기에 미미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어우러지며 ‘닐바나’를 폭발하는 젊음의 공간으로 바꾸어냈고, 통금과 군부독재로 상징되는 70년대의 젊음은 이곳에서 분출할 자유를 얻게 된다. 데블스는 젊음의 절규와 분노, 환희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고 그와 함께 맴버들 간의 갈등 역시 증폭되며 그룹은 해체위기를 맞게 된다.

1972년, 비상조치가 발동되며 독재를 구축하기 위한 유신체제가 도입된다. 정치권과 언론에 대한 탄압에서 확대된 유신체제는 국민들의 문화생활과 표현의 자유, 사생활의 영역에까지 침입함으로써 개인의 행동뿐 아니라 생각에까지 권력을 행사하려 한다. 장발족을 단속해 강제로 머리를 자르고 옷차림을 규제하며, 들어선 안될 음악과 읽어선 안될 책의 목록이 제시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데블스의 음악 역시 퇴폐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금지곡의 목록에 오르고 이들이 활동하던 ‘닐바나’는 강제로 문을 닫게 된다. 데블스는 시대에 저항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음악을 위해 마지막 공연을 준비한다. 폭발할 곳을 빼앗긴 젊음을 위해.



[고고70]은 70년대 고고장(고고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장소)의 풍경과, 그곳에서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밴드 ‘데블스’를 재현한 영화이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것으로 잘 알려진 배우 조승우가 주인공 상규역을 맡아 직접 노래를 부르고, ‘노브레인’에서 활동한 차승우가 기타리스트로 등장하는 등 음악 연주가 가능한 맴버들을 배우로 기용하여 연주 장면의 사실감을 극대화한 ‘음악영화’라 할 수 있다. 118분의 러닝타임 중 공연장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며 그 완성도 또한 높아 실제로 공연을 보는 듯 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고고70]은 몰입도가 높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하였는데, 무엇보다 영화 제목과 포스터 선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영화 [고고70]에 대한 가장 큰 의문점은 이 영화가 70년대와 ‘데블스’라는 역사적 실존을 재현함에 있어, ‘사실성’을 확보하는 방법과 그 기준이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포스터 속의 조승우의 표정과 자세, ‘고고70’이라는 제목의 글씨체는 과거를 희화화함으로써 지나간 시대의 촌스러움을 비웃는 코미디 영화의 그것을 닮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과거를 촌스럽고 우스꽝스럽게 다루기는커녕 30년 전의 20대와 지금의 20대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이들이 교감할 수 있는 통로로 음악을 사용하는, 제법 세련된 음악영화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결국 이것은 과거와 교감하기를 바라는 젊은 영화 관객과 과거를 비웃기 원하는 젊은 세대 모두에게 어필하려는 전략이 빚어낸 오류일 것이다. 또 한가지 [고고70]에 대한 의문은 이들이 ‘데블스’라는 그룹을 주인공으로 하여 얻고자 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실제 영화에 데블스의 노래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속 데블스는 당시 많은 밴드와 가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의 팝과 락음악을 번안해 부르는 방식으로 공연을 이끈다. 바로 그 때문에 지금 듣기에 촌스러울 수도 있는 ‘한국적 소울’의 실체는 증발하고, 미국 본토의 소울과 락이 70년대의 한국에 그대로 이식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과연 그 시대에 ‘닐바나’에서 젊음을 폭발시켰던 세대가 이 영화를 본다면 ‘과거의 향수’에 젖을 수 있을 만큼 이 영화는 과거를 충실히 재현하고 있는가. 



[고고70]의 모순은 70년대를 복원하는 것과 70년대와 교감하는 것 사이에서 끝내 하나를 택하지 못한 우유부단함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아마도 과거를 회상하고 싶어하는 50대 이상 관객과,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비를 맞으며 머리를 흔들 수 있는 관객, 그리고 품행제로와 같은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까지 모두 흡수하기를 바란 ‘경영자적 마인드’가 빚은 결과일 것이다. 그 결과 [고고70]은 굳이 70년대가 배경이 아니어도, 데블스가 아니어도 상관 없는, 그러나 공연 장면 만큼은 확실하게 신나는 음악영화로 남게 되었다.